소설과 현실의 평행 세계, 권력자와 지식인을 풍자하다 [김유익의 광저우 책갈피]
[경향신문]
솽쉐타오(雙雪濤)
<비행가飛行家 - 소설가를 암살하라刺殺小說家, 2017>
순전히 중국판 무협 판타지라는 쉔환(玄幻)과 5억명의 독자를 확보했다는 중국 웹소설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영화 <소설가를 암살하라>를 보러 갔다. 트레일러만 보고 성공한 웹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한 유명 출판사가 영화 원작이 된 중편소설집 <비행가>와 작가 솽쉐타오를 띄우는 것을 보고 중국 웹소설의 수준이 궁금해졌다.
진짜 디스토피아가 돼버린홍콩 대신 대륙의 영화 촬영지로 입지를 굳힌 충칭과 그 액자 버전인 징청의 몽환적이고 화려한 배경, 게임 같은 화면이 압도적이었다. 마윈으로 여겨지는 인물이 신이 된 빌런으로 등장해 세일러문 전사에게 응징당한다거나 소설가를 노린 엑스맨들의 격투신으로 표현된 중국식 망가문화도 신선했다. 소설가와 암살자 모두 작가의 분신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자본가를 처단하겠다는 뻔한 결기가 극의 주제?
나중에 원작이 웹소설과 무관한 둥베이 문예부흥의 대표주자 소설가의 순문학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작가는 등단 후 중화권 문학상을 차례로 휩쓸어왔다. 둥베이는 흔히 조선족이 사는 지역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과 달리, 1950~1970년대 만주국이 남겨둔 공업 기반과 소련 지원에 힘입어 갓 건국한 ‘공화국의 장자’ 노릇을 톡톡히 해낸 곳이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주의 노동자문화도 꽃피워 민중이 노동자 신분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거짓말 같은 시절이 있었다.
개혁·개방이 한때 농촌과 지역의 경제적 부흥을 가져왔다. 하지만 1990년대 연안지역 위주로 글로벌 경제에 편입되면서 둥베이의 공장들은 구조조정으로 문을 닫고 조각조각 팔려나갔다. 작가의 고향인 선양을 연상시키는 징청의 경우처럼. 공공의 자산을 보호하려던 이들은 암살됐다. 그렇게 둥베이는 텅 비어 갔다. 둥베이 문학과 영상예술은 비루하면서 아름답고, 비장하면서 익살스러운 이 시기의 만인보를 그려나간 작품들이다. 문제가 가볍지 않다고 본 중국 정부는 둥베이 부흥을 외치며 지역경제와 기반이 되는 대형 국영기업을 살리기 위해 뒤늦게 돈을 쏟아부었다. 문예부흥도 뒤따랐다.
“마윈을 물러나게 한 건 글로 현실을 바꾼다는 소설가가 아니라 극중에서 이미 죽어버린 황제잖아? 지금 중국의 대자본 비판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어? 판타지로 탈바꿈한 영화를 극찬하던 평론가들은 포스트모던 타령이나 하며 무력감을 삭이는 건가?” 내 촌평에 중국인 친구가 답한다. “이 소설은 왕샤오보 <만수사>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어.” 중국의 카프카로 불리는 왕샤오보는 글 좀 쓴다는 중국 젊은이들이 성장통처럼 빠져드는 지식인이다. 솽쉐타오도 예외가 아니다. 액자소설 형식의 이 소설은 안록산의 난에 가담했다가 황제에게 투항해 부귀영화를 누린 무장 설숭의 설화를 비틀어 수많은 서사로 리셋하며 권력자와 지식인을 통렬히 풍자한다.
정부의 노력은 백약이 무효였고 지난 10년간 지역 인구의 30%가 감소했다. 저들의 구호인 오족의 협력 및 화합과 달리 모두를 고통에 빠뜨린 일제의 만행도 여전한 트라우마이다. 남북한과 일본·러시아·중국이 ‘신오국협화’를 이룬다면 둥베이에 다시 공화국의 봄이 올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한 라디오 방송에서 중국대사가 이 지역에 대한 한국의 관심과 투자를 환영한다고 한 말이 예사롭지 않다.
김유익 재중문화교류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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