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분 사회, 헌법 정신에 길을 묻다>제헌헌법부터 '性차별' 금지.. 女權, 거창한 이슈 아닌 상식

박준희 기자 2021. 5. 2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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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전승훈 기자

프랑스 혁명도 女權은 비껴가

英도 1928년에야 女 참정권

여전히 고용·임금 등서 차별

여성 할당제는 ‘역차별’ 반발

대한민국 제헌 헌법 8조에서

‘성별에 의한 차별 금지’ 명시

1987년 개정 헌법 34조에는

‘여권 향상 노력’ 적극적 규정

양성·고용평등·여성기업지원

다양한 법률통해 성평등 노력

“여성권리 보호는 자유의 가치”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남녀 성별의 다름에 따른 차별은 인류 문명사와 함께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뿌리 깊다. 민주정 하에서도 여성을 차별하고 소외시킨 것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와 같이 까마득히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18세기 시민혁명의 찬란한 성과도 여성을 비껴갔고, 그 결과 여성들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조차 20세기 초반까지 참정권 쟁취 투쟁을 벌여야 했다.

현대 자유민주주의 종주국인 미국에서도 1908년 여성 노동자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생존권을 의미하는 ‘빵’과 참정권을 의미하는 ‘장미’로 은유된 구호를 외쳐야 했다. 특히 유교적 관념이 깊었던 한국에서 여전히 성별은 계층, 세대와 함께 3대 갈등 요인으로 꼽힌다.

역설적이게도 여권(女權)이 신장되면서 젠더 갈등은 갈수록 첨예화·격화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공존의 룰’인 우리 헌법에는 진작부터 성 평등 정신이 내포돼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성차별 없는 사회로 나가야 한다는 대전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 현대적 여권의 확립 = 18세기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인간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의식이 확산됐지만, 20세기 초반까지도 여성의 각종 권리는 제한적이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발표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은 제1조에서 ‘인간은 권리에 있어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 생존한다’고 밝혔지만, 이 조항도 인권에 대한 원칙론적 선언일 뿐 곧바로 구체적인 여권 확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게 학계의 평가다.

본격적인 여권 운동은 영국의 여성 작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를 시초로 본다. 1792년 ‘여성의 권리 옹호’라는 저서를 낸 울스턴크래프트는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꼽힌다. 그는 여성도 온전한 인격체로서 평등한 교육과 정치 참여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울스턴크래프트의 주장이 여성의 참정권 획득 등으로 현실화하기까지 한 세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다.

실제로 울스턴크래프트를 낳은 영국에서 본격적인 여성 참정권 논의가 시작된 것은 1865년 런던에서 ‘여성참정권위원회’가 결성된 이후다. 그러고도 시간이 한참 흘러 1918년 국민대표법에 의해 30세 이상의 일정 조건 여성에게 선거권·피선거권이 인정됐고, 1928년이 돼서야 모든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이 부여됐다.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없었다면, 여성의 참정권 쟁취는 더 지체됐을지 모른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프랑스의 경우 1848년 ‘2월 혁명’ 결과, 과거 일부 상류층 남성에게만 한정됐던 참정권이 성인 남성 전체로 확대됐지만,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것은 1944년이었다. 미국에서 여성의 참정권은 주별로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점진적으로 실현되다 1920년 여성도 포함한 보통선거제가 실시되면서 보장됐다. 유럽이나 북미 지역보다 여성 참정권 보장이 앞선 나라는 뉴질랜드였다. 뉴질랜드는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선거법으로 보장했다. 그러나 이 역시 울스턴크래프트의 첫 외침 후 100여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한국은 1948년 제헌헌법에서 남녀 차별 없는 선거권과 피선거권 등 참정권을 인정한 이후 변동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됐다고 해서 여권이 획기적으로 신장됐다거나 성차별이 극적으로 해소됐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여성은 여전히 고용·노동·임금 등에서 남성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 가정 내에서 여성 분담률이 높은 가사·육아 등의 노동은 사회·경제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경제난과 양질의 일자리 감소 추세는 여성들에게 또 다른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성차별 해소를 위한 여성 할당제 등에 대해 일부 남성이 ‘역차별’이라고 반발하면서 젠더 갈등이 격해지고 있는 것이다.

◇ 헌법에 담긴 성 평등 정신 =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를 비롯해 성별이나 사회적 신분 등에 의한 모든 차별을 금지한 현행 헌법은 1948년 제헌 당시부터 성 평등과 여권 증진의 정신을 담고 있다. 제헌헌법도 8조에서 성별에 의한 차별 금지를 규정한 것을 비롯해 ‘여자와 소년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17조 3항) 및 ‘혼인은 남녀동권을 기본으로 한다’(20조) 등의 조항을 포함했다.

현행 헌법은 이 같은 정신을 더욱 확장했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 34조 3항은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보다 적극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제36조 1항은 제헌헌법의 혼인 관련 조문을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이라고 바꿨다. 같은 조 2항은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도 적시하고 있다.

이 같은 조항들은 기본권에 있어 성차별 금지나 가정·직장·사회 등 국가 생활 속에서 성 평등을 구현하고자 하는 헌법 정신이 강조된 것으로 풀이된다. 더군다나 이 같은 정신은 대한민국 헌법의 효시인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한민국임시헌장에서도 일부 엿보인다. 유교적 남존여비(男尊女卑) 인식에 대한 근대적 각성, 자유와 권리 의식의 신장이 합쳐진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 성 평등 구현을 위한 법률들 = 서구에 비해 여권 확립과 신장이 늦기는 했지만, 현행 국내법 체계는 이러한 성 평등의 헌법 정신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법률을 제정, 시행하고 있다. 헌법상 성 평등, 여자의 복지·권익 향상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양성평등기본법’을 비롯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법’ 등 각종 법률이 제정돼 있다. 양성평등기본법은 사회 전 분야에서 성별 구분 없는 동등한 권리와 책임, 참여 기회 보장 등 실질적인 성 평등 사회를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난 1995년에 제정된 이 법은 2014년 5월 개정 후 2015년 7월부터 현행법이 시행됐다. 국가인권위원회법도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를 정의하며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고용과 노동 등에서도 성 평등 구현을 위한 법적 장치들이 마련돼 있다. 우선 헌법이 제시한 ‘여자의 근로에 대한 특별한 보호’라는 정신은 동일한 조건이라고 해도 특정 성별에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간접 차별’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근로기준법은 근로자 중에서 여성에 대해 야간 근로 조건, 임산부에 대한 위험·유해 근로 제한 등을 규정하고 있다. 같은 조건의 남성 근로자보다 더 엄격한 보호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종래의 ‘남녀고용평등법’을 지난 2007년 지금의 명칭으로 확대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법’은 헌법의 평등 정신을 바탕으로 고용에 관한 남녀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하고, 모성 보호 및 여성 고용 촉진 등으로 성 평등과 일·가정 양립을 지원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법은 대표적으로 성별 구분 없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정년·퇴직 및 해고에 있어 남녀 차별 금지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근로뿐 아니라 기업 활동 측면에서도 여권을 강조한 법률이 있다. 1999년 제정된 ‘여성기업지원법’은 여성 기업의 활동과 여성의 창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여성의 경제활동을 제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에서 여성 기업을 우대해야 하며, 중소기업청장은 여성 경제인과 여성 기업 근로자에 대해 경영 능력과 기술 수준 향상을 위한 연수 및 지도사업 등을 실시할 수 있다.

또 모성 보호는 현행 헌법에서 신설된 조항으로, 여성의 신체적·생리적 특성을 감안해 근로 장소에서 여성을 특별히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조치다. 이는 사회공동체의 최소 단위인 가정 안에서 자식에 대해 지니는 본능적 성격인 모성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정신에서 출발한다. 단지 결혼과 출산을 전제로 한 모성뿐 아니라 미혼모 혹은 비혼모, 입양모의 모성 보호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최근에는 임신·출산·육아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남편에게도 육아 휴직을 인정하는 개념으로 확장되기도 했다.

국제 협약을 통한 성 평등 정신 실현 노력도 있어 왔다. 유엔 총회는 지난 1979년 12월 18일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을 채택했고, 이 협약은 1981년 9월부터 발효됐다. 한국은 1984년 12월 세계에서 89번째로 협약에 서명했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27일 “자유주의화의 핵심은 다원성·존엄성·개인성이고,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여성의 권리, 여성의 신체에 대한 보호 등이 리버럴(자유)의 가치들”이라며 “(차별 금지 같은 이슈는) 페미니즘만의 거창한 이슈가 아니라 상식”이라고 강조했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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