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곡자 몰래 편곡 무단유통, 이대로 괜찮을까 [줄소송 악보저작권]

김지환 2021. 5. 2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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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소송 앞둔 악보저작권1]
무단 변경·훼손 악보, 버젓이 유통
저작권 침해사안, 업계 관행으로
"경종 울릴 것" 음악계 법적대응

[파이낸셜뉴스] 작곡가 ‘모르게’ 훼손·편곡된 악보가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무분별하게 유통되고 있다. 서점과 피아노학원 등지에서 팔리는 악보집이나 블로그에 올라온 악보 상당수도 원곡과 다른 형태다. ‘초보자용’ ‘00악기용’이라고 편곡하거나 가사를 붙여 공유하는 식인데, 저작권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

네이버 스토어에서 개당 2000~3000원으로 팔매되는 악보. 편곡된 곡으로 악보엔 편곡자의 이름만 나와 있다. 원작자 이름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온라인 갈무리.

■무단 변경에 수익까지··· 작곡가는 ‘모른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악보가 포털사이트 블로그와 스토어 등에서 무단으로 판매 및 공유되고 있다. 저작권자인 작곡가가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작곡가 의사에 반해 무단으로 편곡돼 팔리는 것이 대다수다.

온라인 악보판매는 한 장짜리 악보 사진을 올려둔 뒤, 구입하는 이들에게 이메일로 전체 악보를 보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원작자 이름 없이 편곡자 이름만 적혀 있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편곡 정도가 큰 건 원곡과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판매자는 “구매하는 사람들이 악보를 편히 배울 수 있도록 쉽게 편곡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업계 A급 작곡가로 통하는 B씨의 악보는 2021년 기준 포털사이트에 불법 등재된 것만 1만2600여건에 달한다. 월 평균 150건(블로그 70건·카페 30건·지식인 50건)씩, 연간으로 환산하면 1800여건의 악보가 원곡자 동의 없이 불법으로 올라오고 있다.

B씨 외 작곡가들의 악보까지 포함하면 연간 수십만건의 저작권 침해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일반 서점에서 유통되는 악보집도 마찬가지다. ‘초급용’ ‘중급용’ ‘고급용’ 등으로 곡을 편곡하는데, 난이도별로 멜로디를 이루는 음표 수와 화음을 넣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편곡자가 연주자 난이도별로 곡을 바꾸고 책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식이다.

저작인격권은 프로야구 응원단 등이 원작자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곡을 편곡해 사용한 것과 관련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해당 사건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fnDB.

■저작인격권 침해, 관행이란 업계

문제는 원작자의 동의 없이 편곡과 유통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원작자에겐 △곡을 발표하는 공표권 △곡이 원작자의 것임을 밝히는 성명표시권 △원곡이 훼손되지 않고 유통될 수 있도록 하는 동일성유지권 등이 보장되는데, 현행법은 이를 저작인격권으로 묶어 보호한다. 현재 온·오프라인에서 편곡된 악보가 유통되는 과정은 이중 성명표시권과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한다.

저작권을 관리하는 협회의 관리 소홀도 불법이 만연한 배경이다. 통상 출판사는 악보집을 만들기에 앞서 협회에 ‘이용’ 또는 ‘복제허락’을 신청해 승인을 받는다. 원작자들이 협회와 저작물 관리를 위탁하는 신탁계약을 맺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판사가 승인을 받은 것과 다른 출판물에 증지를 붙여 책을 유통하거나, 아예 저작권 증지를 붙이지 않고 유통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작곡가들은 침해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복제하는 사람들이 우리(작곡가)한테 확인을 구하지 않는다”며 “시중에서 팔리는 악보집을 우연히 보면 왜 ‘내 곡이 여기 들어가 있지?’ 이렇게 알게 되는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악보집 판매 대가를 받지 못하는 건 당연하기까지 하다.

아예 대응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음악계 한 관계자는 “침해당하는 사람들 중에 학생이거나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며 “소송을 해서 이긴들 실익이 없고, 인디밴드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엔 소송조차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네이버 스토어에서 '동영상 악보'로 판매되는 악보의 모습. 초록색 선이 멜로디에 맞춰 연주해야 할 음표를 가리키고 있다. 판매자는 리뷰를 남겨주면 무료로 해당 악보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김지환 기자

■“경각심 깨울 것” 음악계 본격 문제제기
무단 편곡한 악보를 활용하는 이들은 이 같은 영업행태가 일종의 관행이란 항변도 나온다. 명백한 저작권 침해가 있더라도 그간 아무런 문제제기가 없으니 ‘묵시적 동의’가 있지 않았느냐는 주장이다.

한 출판업체는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는 음악가 측에 “저작물을 적극적으로 개작하는 게 아닌 이용목적에 맞춰 편곡하는 것에 대해 KOMCA가 허락했다고 봐야 한다”며 “길게는 8년이 지났음에도 어떤 문제제기 없이 인지세를 받아왔고, 이는 묵시적 동의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답을 보내오기도 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거나 영세한 규모로 침해행위를 벌이는 이들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실용음악학원 원장은 “이건 제가 해당 노래를 듣고 코드를 따서 학원 홍보를 위해 올려둔 것”이라며 “(해당 악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될 소지가 없고 000(가수이름)를 홍보해주는 효과도 있어서 더 좋다”고 주장했다.

포털사이트에서 편곡 악보를 판매하는 판매자는 “저작권 협회에 다 승인을 받은 내용이기 때문에 (원곡자 동의가 없더라도 법적으로) 문제될 소지는 없다”며 “동영상 악보(멜로디에 맞춰 음표를 표시해주는 형태)도 이메일로 보내드리고 있고 고객들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음악계에선 이제 막 저작인격권과 2차적저작물 작성권 침해에 대응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해 7월 한 업체가 다수 출판사를 상대로 법적대응에 나선 게 대표적이다. 해당 업체는 국내 유명 작곡가들의 악보 사용 권리를 위탁받은 업체로, 작곡가들의 악보가 무단으로 편곡돼 출판되는 관행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다수 검찰청과 경찰서가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저작권 #작곡가
jihwan@fnnews.com 김지환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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