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에 켜켜이 쌓인 '패배의 미학'

박철현 2021. 5. 21.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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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했으니 된 거다' '패배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따위의 사고방식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일본 사회. 상징적 캐치프레이즈인 줄 알았던 '잃어버린 10년'이 올해로 30년째다.
필자 회사의 페인트 및 방수 기술자가 도쿄의 2층 주택 도장 공사를 하고 있다. ⓒ박철현 제공

지금 우리 현장에는 매일 출근하는 고정 멤버가 13명 있다. 내장 목수가 4명, 에어컨 설비 1명, 전기 기사 1명, 수도 설비 1명, 페인트 및 방수 기술자 1명 등 모두 8명이 이른바 각 분야를 책임지는 십장급 인력이다. 그 밑에 ‘데모토(手元)’라 불리는 작업 조수가 5명 더 있다. 조수들은 전부 네팔 국적으로 현장 상황에 맞춰 투입된다. 십장들의 국적은 한국과 중국이다. 일본인은 한 명도 없다. 나도 한국인이니, 일본인들 처지에서 우리 회사는 ‘이방인’들의 기업이라 할 수 있다. 혹자는 ‘아무리 그래도 일본에서 만든 기업인데 왜 일본인이 없지?’라고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본인 현장 노동자들이 적게는 한둘, 많게는 서넛씩 꼭 있었다. 하지만 종종 문제가 터졌다.  코로나19 상황이 도래하면서 생계가 힘들다고 가불을 하더니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는다거나 쉬는 도중 갑자기 한국 법무부 이야기를 꺼내며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시절, 당시 일본의 낮 시간대 방송들이 매일같이 그와 관련된 상황을 비아냥조로 중계해 낮방송을 보는 일본인들이라면 당시 상황을 모를 수 없었다. 혹은 일하는 방식이 자기가 아는 것과 다르다며 우리 현장의 작업 스타일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데쓰야공무점은 국적과 관계없이 현장 목수 및 설비 기술자들과 두 종류의 업무계약을 맺는다. 업무청부계약서와 안전위생서약서다. 업무청부계약서는 일종의 ‘취업규칙’이다. 취업규칙에 어긋나는 언행을 할 때는 주의를 줄 수 있고, 횟수가 세 번을 넘어가면 계약을 해지한다는 항목이 들어 있다. 주의의 구체적 항목에 ‘현장의 분위기를 해치는 행위’가 명시돼 있다. 가불 후 연락 두절은 회사 측에서도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영역이지만 다른 항목들을 계속 위반하면 계약을 해지하는 수밖에 없다. 한국 비하는 그럴 수 있다고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방식이 맞다며 데쓰야공무점의 작업 스타일을 무시하는 경우는 함께 일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위반행위를 반복적으로 저지른 어떤 일본인 목수를 보며, 나는 일본 사회 저변에 흐르는 ‘체념’의 관성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아소 다로 일본 재무장관이 5월3일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젊은 층이 정치에 무관심한 건 평화롭다는 증거라고 발언해 지지를 받았다. ⓒKyodo News

먼저 그가 말한 스타일은 매우 단순했다. 예를 들어 건물 외벽을 칠하거나 방수할 때 반드시 ‘아시바(높은 곳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 가설물·비계)’를 놓아야 한다는 거다. 물론 안전하게 일하려면 비계가 필요하다. 그는 2층짜리 건물 외벽을 칠할 때도 비계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인트 작업에 필요한 롤러봉의 길이가 3m쯤 된다. 작업자가 팔을 들어 올리면 2m 정도다. 도배 및 도장용 발판 사다리 높이는 1.8m다. 롤러봉과 사람, 사다리의 높이를 합치면 6.8m. 그런데 2층짜리 건물의 높이는 6m에 불과하다. 즉 2층 건물의 외벽을 칠할 때는 비계를 설치할 이유가 없다.

‘이미 완성된 매뉴얼’의 특별한 지위

이렇게 설명해도 그 목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변 가옥 등에 페인트가 묻을 위험이 있다’ ‘도로 사용허가서를 내야 한다’ 같은 이유를 댔다. 주변 가옥의 피해를 막기 위해 ‘메시 시트’라는 막을 설치할 것이고, 작업 현장이 도로 쪽으로 60㎝ 이상 나가지 않기 때문에 도로 사용허가서를 낼 필요가 없다고 설명해도 그는 무조건 안 된다고 했다. 자신이 익숙한 룰에 관성적으로 속박된 듯, 이후에도 사사건건 작업에 태클을 걸었는데 다른 목수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결국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청부계약을 해지하기에 이르렀다.

누구 스타일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본인이 계속 그렇게 해왔다는 이유로 자신의 스타일만을 고집하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나는 일본 사회가 현재 처해 있는 딜레마를 이런 경험 속에서 발견하곤 했다.

바로 ‘체념’이다. 연재글 첫 번째 이야기에서 일본 사회 저변에 흐르는 체념의 습속을 언급한 바 있다(〈시사IN〉 제710호 “일본 사회의 ‘체념’이 초보 외국인에게 준 기회” 기사 참조). 일본은 섬이라는 지리적 환경 속에서 영주제 및 신분제, 그 정점에 있는 천황제를 불가침의 정치영역으로 강고하게 유지해왔다. 사회영역엔 ‘와(和, 輪)’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부정적 의미로서의) 공동체 사회가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일본인들은 ‘사회경제적으로 이미 완성되어 있는 매뉴얼’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다. 오랜 시간을 거쳐 누군가, 혹은 누군가들의 공동체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는 사회·문화적 규범들을 깨는 것 자체를 상상하기 힘들다. 종종 그런 도전들이 수행되지만 상당수가 실패로 돌아갔거나 현재 실패하고 있다. 한때 일본 경제계에 혜성같이 등장했던 몇몇 괴인들, 이를테면 라이브도어의 호리에 다카후미(벤처 사업가), 무라카미 요시아키(유명한 주주 운동가)는 몰락했다. 정치계에선 각각 정반대 사상을 가진 하시모토 도루(극우 성향의 전 오사카 시장)와 야마모토 다로(배우 출신 정치인)가 괴짜로 낙인찍혀 전자는 정치 일선에서 은퇴했고, 후자는 눈에 띄는 확장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 실패들은 때때로 드라마틱한 서사로 묘사되면서 ‘패배의 미학’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일본 전통극 가부키를 비롯해 노, 교겐, 고단, 단가 등을 보면 패배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루어지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즉 승리한 혁명보다 실패한 반란들이 감동적으로 묘사되는 셈이다. 에도막부 말기의 막부 옹호파 조직인 신센구미(新選組)의 파멸적이며 비극적인 스토리는 이들의 단골 레퍼토리다. 오늘날의 현실 세계도 마찬가지다. 매년 열리는 고시엔 야구대회를 보면, 승리한 팀보다 패배한 팀 선수들이 눈물을 흘리며 고시엔 구장의 흙을 손수건에 곱게 담는 모습에 포커스를 더 많이 맞춘다. 신년에 진행되는 대학 에키덴(릴레이 마라톤)도 비슷하다. 여유로운 승자보다는 비틀거리며 끝끝내 완주하는 이들의 서사를 카메라가 더 많이 담는다. 이러한 풍조를 흔히 ‘호간비이키(判官贔屓)’라고 한다. 강자보다는 약자의 편을 드는 심리적 편향을 의미하는데, 문제는 이 같은 패배의 아름다운 묘사가 크게 보자면 ‘체념’의 습속을 정착 및 강화하는 데 일조한다는 점이다.

‘2층 건물 아시바(비계) 미설치’ 등의 이유로 회사를 떠난 전 직원이 작업하던 공사 현장. 비계가 없다. ⓒ박철현 제공

일본 역사상 일어났던 갖가지 반란들은 모조리 실패로 돌아갔다. 근현대사에서도 상황이 비슷하다. 전공투 세대의 변혁운동은 연합적군파의 아사마 산장 인질 사건과 전례를 찾기 힘든 일본식 고도성장으로 종언을 고했다. 진정한 정권교체를 이룬 것으로 여겨졌던 민주당 정권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끝났다. 자연재해가 ‘체념’의 상수로서 항상 존재한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되겠다. 20년 동안 일본에 살면서 경험한 자연재해의 횟수는 세기조차 힘들다(이 글을 쓰고 있는 5월2일에도 규모 5의 지진이 도호쿠 지역에서 발생했다. 도쿄는 규모 3으로 컴퓨터 모니터가 약간 흔들렸다).

“젊은이의 정치 무관심은 평화롭다는 증거”

물론 이러한 일본 사회에 대해 ‘옳다, 그르다’ 가치판단을 내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본 사회에 특유한 ‘체념’의 정서를 강조하고 싶다. 이런 정서에서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열심히 했으니 된 거다’ ‘패배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따위의 사고방식들이 일상적으로 통용된다. ‘이런 사고방식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사회는 어떠할까’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상징적 캐치프레이즈인 줄 알았던 ‘잃어버린 10년’이, 20년이 되었고, 올해로 만 30년째가 된다. 그리고 자민당 정권의 2인자, 아니 어떤 의미에선 1인자라 해도 무방한 아소 다로 재무장관은 지난해 9월 가도카와 드완고 학원의 온라인 수업에 등장해 다음과 같은 발언을 태연하게 내뱉었다. “젊은 친구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게 뭐가 문제냐? 그만큼 일본이 문제없고 또 평화롭다는 증거잖아. 결코 나쁜 게 아니다.” 이 발언은 ‘아소 어록’으로 등재돼 꽤 많은 젊은 층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정치인이 젊은 층의 체념 정서를 악용한 대표적 사례로 보이지만, 글쎄 모르겠다. 당사자들이 좋다고 하니 그걸로 된 건가 싶기도 하고.

현장 일로 다시 돌아가자. 앞에 등장한, 작업 스타일의 차이로 우리 현장을 떠났던 일본인 목수를 1년여 뒤에 다시 만났다. 아사쿠사의 공사 현장으로 가던 어느 날 아침, 단독주택 도장 일을 하던 그를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서로 눈이 마주쳐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어차피 현장 일이란 모두 거기서 거기다. 지역 공무점은 대부분 규모가 비슷하기 때문에 우리 현장을 관뒀던 사람들을 다른 일터에서 종종 만난다. 미래의 일은 모르는 법이니 두루두루 친해놓아야 나중에 일손이 부족할 때 일당 목수 부탁이라도 할 수 있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일이 없을 때, 손가락만 빨 수는 없는 노릇이니 예전에 관뒀던 현장에 슬그머니 연락하기도 한다. 현장 ‘노가다’의 세계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다를 바 없다. 그가 나에게 인사하고 내가 잘 지냈느냐고 웃으며 물어보는 상황도 이런 사정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공사 현장을 둘러보니 비계가 없다. 2층도 아니고 3층짜리 단독주택이다. 그 목수의 평소 지론대로라면 무조건 비계를 설치해야 했다. 공사 주택과 그를 번갈아가며 멀뚱멀뚱 쳐다보니 그가 겸연쩍게 웃으며 말한다.

“아,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굳이 돈 들여서 비계를 설치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2, 3층 페인트칠하는 건데 집주인도 돈 아껴서 좋다고 하고 저희도 그만큼 좀 남겨먹어서 좋더군요.”

‘야, 이 녀석아! 그랬던 놈이 왜?’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지만 허허허 웃으며 “봐, 내 말이 맞지? 얼마나 좋냐”라며 어깨를 툭 쳐줬다. 기존 습속과 매뉴얼에서 탈피한 그는 앞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뒤에는 얼굴에 페인트를 묻힌 네팔 혹은 베트남 사람으로 보이는 조수 두어 명이 활짝 웃고 있었다.

박철현 (일본 데쓰야공무점 대표·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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