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아동센터 '쌤' 한 달..아이들은 펭귄처럼 서로에게 기댔다

채윤태 2021. 5. 1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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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33살 프로젝트
지역아동센터 한 달 르포
취약계층 아이들의 '울타리'
평범한 일상 지켜주는 곳
엄마·아빠 있는지, 국적 다른지 등
센터도 아이도 전혀 따지지 않고
상처주지 않고 지내
초등학교 5학년 민서의 하루. 일러스트 장선환

5학년 민서는 학교에서 혼자다. 주의력결핍과잉운동장애(ADHD)가 있는 민서는 행동이 늦고 또래 아이들과 재빨리 대화하지 못한다. 그래서 같은 반 친구들이 민서에게 말을 잘 걸지 않는다. 민서는 집에서도 혼자다. 아침 7시30분, 아빠는 아침을 차려놓고 민서를 깨운 뒤 곧바로 집을 나선다. 강남의 한 대형 건물 시설관리인인 아빠는 주말에도 저녁 8시가 돼야 집에 온다. 코로나19로 방역업무가 늘어 지난해부터 퇴근이 더 늦어졌다. 학교와 집에서, 민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지역아동센터에서 만난 민서는 수다쟁이다. 민서가 센터에서 혼자가 아닌 건 네일아티스트, 아이돌, 유튜브 크리에이터 등 수시로 바뀌는 꿈 이야기를 신나게 떠들어도 귀 기울이는 ‘쌤’들과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행동이나 말이 느려도, 집중을 못 해도, 엄마와 함께 살지 않아도, 이곳에선 괜찮다. 민서의 옷매무새를 수시로 잡아주는 같은 학년 선영이는 엄마, 동생과 셋이 살고, 민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또래 친구 주호의 엄마는 베트남 출신이다. 코로나19를 포함해 바깥세상의 ‘비바람’을 피해 아이들은 이곳 울타리 안에서 숨을 고른다. 센터가 없으면 가까스로 유지하던 평범한 일상은 곧 위태로워진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해 5~6월 센터가 제한적으로 운영됐을 때, 민서는 집에서 사실상 방치됐다. 텔레비전과 휴대전화에만 매달려 시간을 보냈고, 활동량이 줄어드니 몸무게도 늘었다.

센터 선생님들과 부모들은 이 공간에서 아이들이 ‘평범한 사람’으로만 자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지역아동센터 ‘쌤’으로 보낸 한달 내내, ‘평범’이라는 말이 가진 무게가 줄곧 어깨를 짓눌렀다.

3월8일: ‘쿵쿵쿵’ 발소리가 들리면

“월요일부터 센터에 나오셔서 즐겁게 아이들과 만남을 가져봐요.ˆˆ” 센터장의 문자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3월8일 정오, 기자는 서울의 한 교회 부속건물 2층에 자리 잡은 ㄱ지역아동센터의 현관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5명의 선생님과 인사한 뒤 활동실에 앉아 아이들을 기다렸다. 66㎡(20평)짜리 방 한쪽 책장에는 아이들의 소지품과 책이 담긴 파일 꽂이가 사이좋게 나란히 놓여 있었다. 민서, 선영이, 주호…, 파일 꽂이에 붙은 19명의 이름을 하나씩 살피는 동안 ‘쿵쿵쿵’ 아이들이 계단으로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수업이 일찍 끝나 건물 지하 교회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올라오는 저학년 아이들이다.

갈색 ‘브롤스타즈(온라인게임)’ 캐릭터 후드티를 입은 병현이(1학년), 파란색 고양이 티셔츠를 입은 영수(1학년) 등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아이들이 “선생님이에요? 누구예요?” 앞다퉈 말을 건넸다. 성연이(1학년)는 어느새 기자의 등에 올라타려다 떨어져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괜찮니? 응, 오늘 새로 온 선생님이야. 이름이 뭐니?” “선생님은 뭐 잘해요?” “여자친구 있어요?” 정신을 쏙 빼놓는 환영식이 끝났다. 오후 1시30분 공부 시간, 오후 3시30분 악기를 배우는 특별활동 시간, 촘촘히 짜인 시간표가 휙휙 지나갔다. 오후 5시30분, 아이들은 다시 지하 식당으로 몰려가 저녁밥을 먹은 뒤 끼리끼리 뭉쳐 집으로 간다.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아, 그럭저럭 무사히 보낸 센터에서의 첫날을 복기했다.

지난 3월16일 ㄱ지역아동센터 저녁 급식으로 나온 부대찌개. 채윤태 기자

3월10일: ‘부모님’이라는 말을 쓰지 말 것

“너는 엄마 닮았냐, 아빠 닮았냐.” 3월10일, 3학년 성훈이가 같은 학년 형수에게 대뜸 물었다. 어머니가 중국인인 형수가 우물쭈물한다. “야~, 엄마도 닮고, 아빠도 닮는 거지. 그게 뭐가 중요하냐.” 한살 형인 4학년 영준이가 말을 돌렸다. 이곳에서 엄마 아빠가 있는지, 국적이 다른지를 따지면 지낼 수 없다. 아이들은 센터에서 시간을 보내며 천천히 이런 점을 깨달아간다. 저마다 다른 사정과 고민이 있다는 사실을.

6학년 연희는 부모님이 오래전에 헤어졌다. 연희는 센터에 처음 온 7살 때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엄마 없다”고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했다. 센터의 한 선생님은 “연희가 자신이 불행하고 이걸 알아달라고,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것 같았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연희는 이후 센터에서 친구들을 만나며 모두에게 아픈 기억이나 상처가 있고, 다양한 가족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어느 날 자신의 ‘호소’를 멈췄다. 이제 연희는 다른 아이들이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거나 서로 싸우면 이를 중재하는 ‘큰언니’가 됐다.

5학년 주호의 엄마는 베트남인이다. 그래서 엄마 따라 베트남에 두세번 가봤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아이들은 ‘엄마가 베트남인’이라는 점보다 “베트남에 가봤다”는 걸 부러워한다. “부럽다.” “나도 비행기 타보고 싶어.”

5학년 선영이를 홀로 키우는 선영이 엄마의 말이다. “아빠가 없다는 걸 부끄러워했어요. 근데 선영이가 센터에 다니면서 ‘엄마, 누구누구 아빠가 안 계시대’, ‘누구누구는 할머니랑 산대’라고 자주 이야기해요. 어느 순간 익숙해졌는지, 그게 이상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는지, 이젠 아빠가 없다는 걸 굳이 숨기지 않아요.”

지역아동센터에는 다양한 배경과 사연이 있는 아이들이 온다. 센터를 이용하는 다문화가정 아동은 2012년 6992명에서 2019년 2만609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보건복지부 통계(2019년)를 보면, 센터를 이용하는 아이들 가운데 한부모가정 아이들이 28.3%(3만783명)를 차지한다.

그래서 ㄱ센터에선 엄마, 아빠가 같이 산다는 것을 전제하는 ‘부모님’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 ‘돌봐주는 분’이라고 한다. 다양한 아이들이 모이는 이곳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다.

“아이들이 처음 센터에 오면 한달 정도 사전 교육을 해요. 가장 강조하는 게 ‘다양한 가족과 다양한 아이가 있다는 점과 친구에게 상처 주지 않기’입니다. 실수라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반대로 다른 친구가 너를 놀리면 기분이 어떨까?’ 하며 이해를 시키죠.” ㄱ센터장의 말이다.

3월15일: 보드게임판은 공평하다

“할리갈리 할 사람!” “쌤, 부루마블 할래요?” 10분만 쉬는 시간이 생겨도 아이들은 보드게임판을 펼친다. 집에서 텔레비전과 휴대전화에 매달려 사는 아이들이라 센터에서는 휴대전화 사용 금지다. 관심사와 대화 주제가 다른 아이들이 놀기엔 보드게임이 최고다. 센터 초등부는 1학년 4명, 2학년 1명, 3학년 4명, 4학년 4명, 5학년 5명, 6학년 1명인데, 보드게임은 이들을 한데 묶는다.

“쌤, 달무티 할 줄 알아요?” 5학년 선영이가 기자의 팔을 아이들 사이로 끌었다. 보드게임은 센터 아이들이 낯선 이에게 건네는 ‘인사’이자 ‘초대’이기도 하다. “너도 할래?” 3월 중순 새로 센터에 온 정윤이(1학년)에게 또래 영수가 보드게임 ‘할리갈리’를 내밀었다. 카드를 돌리며 1학년 영수와 5학년 진수가 귓속말을 나눈다. ‘쟤 이름이 뭐지?’ 센터에선 이름은 몰라도 보드게임판에 둘러앉으면 친구다. 3월18일, 형수와 성훈이가 뿅망치를 두고 몸싸움을 벌였다. 선생님들이 둘을 떼어놨지만 분을 참지 못해 둘 다 눈물을 터뜨렸다. 이튿날 출근하니 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할리갈리를 한다. “둘이 화해했어?” 성훈이는 대답 대신 ‘땡’ 하고 할리갈리 종을 울렸다.

아이들이 즐겨 하는 달무티는 흔히 “인생은 불공평합니다”로 요약되는 게임이다. 처음 뽑는 카드에 따라 왕부터 총리대신, 소작농, 농노까지 계급이 정해지는 게임 방식 탓이다. 높은 계급은 낮은 계급에게 카드를 섞게 하거나, 서서 게임을 하게 하는 등 ‘갑질’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불공평한 규칙에 개의치 않고 자신들만의 규칙으로 게임을 한다. 적어도 여기에선 계급이 높은 카드를 가져도 낮은 계급에게 갑질하지 않는다.

3월19일, 광명·시흥 새도시 투기 의혹으로 빼곡한 뉴스를 살피며 센터를 향했다. 센터는 서울에 있지만 아파트를 찾기 어려운 오래된 동네에 있다. 지하철역에서 센터까지 가는 좁은 골목엔 33㎡(10평) 남짓한 조그만 빌라들이 빼곡하다. 골목 부동산 업소 유리창에 붙은 종이를 보면 ‘보증금 200만원, 월세 25만~30만원’이 주류다.

문제집을 풀다 하품을 하던 3학년 형수가 기습을 해왔다. “쌤은 어디 살아요?”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다시 답이 날아왔다. “저는 빌라 살아요. 성훈이는 반지하에요.” ‘반지하’라는 말에 성훈이 기분이 상했을까 당황했는데, 둘의 웃음보가 터졌다. “반지하라 계단 높이 안 올라가도 돼요!”(성훈) “우리 집은 3층이라 계단 올라가기 힘들어요~.”(형수) 둘 다 키득거리다 금세 보드게임판에 둘러앉았다.

색칠놀이를 하고 있는 ㄱ지역아동센터 초등부 아동들. 채윤태 기자

3월22일: ‘평범해지기 위한’ 공부

아이들은 매일 오후 1시30분이 되면 보드게임을 정리한다. 학년별, 진도별로 4~6명씩 두평 남짓한 3개의 공부방으로 흩어져 2시간 정도 ‘공부’를 한다. 사회복지사,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옆에서 돕는다. 기자는 초등학교 3학년 보조 ‘쌤’이 됐다. 아이들은 국어와 수학 문제집, 학습지를 하루에 3~5장씩 푼다.

센터에서 학년은 의미가 없다. 수학 문제집 앞에 쓰여 있는 학년을 보고 “형수는 2학년이구나?” 물었더니, “3학년이에요”라고 답했다. 주호는 5학년이지만 1학년 국어 문제집을 푼다. 받아쓰기를 특히 어려워한다. 아이들은 학년과 상관없이 자신의 학업 수준에 맞는 교재로 공부한다. 대부분 자신의 학년보다 낮은 단계의 문제집을 푼다. 3학년 성훈이는 자신의 꿈인 ‘과학자’를 쓸 줄 몰라 쩔쩔매고, 5학년인 진수는 자신의 꿈을 ‘프로게임어’라고 썼다.

그래도 괜찮다. 센터는 아이들이 주어진 할당량을 끝내면 간섭하지 않는다. 발달장애가 있어 학업 진도가 느린 주호나 주의력결핍장애로 매번 과제를 늦게 끝내는 민서도 능력에 맞게 주어진 과제만 마치면 친구들과 놀 수 있다.

아이들의 양육자들은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 걸 꿈꾸지 않는다. 센터의 과제도 실은 아이들이 ‘공부의 끈’을 놓지 않도록 돕는 차원이다. 선영이 엄마는 “공부보다 친구들이랑 잘 지내기만 했으면 좋겠다. 센터에 바라는 것은 그뿐”이라고 말한다. 퇴근하면 파김치가 되는 양육자들은 아이들 공부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센터는 아이들에게 ‘남들 하는 만큼’의 경험을 하게 해주려 노력한다. 비교적 사정이 좋은 ㄱ센터는 몇년 전까지 희망자에 한해 검도, 피아노를 배울 수 있게 했고, 현재는 월·수 오후 3시30분~5시 사이 저학년은 수영 강습을 받는다. 화·목·토에는 모든 아이가 각자 맡은 악기를 배우고 연습한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전에는 야외 견학수업, 여행도 자주 다녔다.

3월24일, 아이들은 공부하다 말고 모여 2년 전 워터파크 갔던 기억을 어제 일처럼 이야기했다. “사람이 무지 많았는데 물에 들어가고, 파도 타고, 엄청 신났어요.” “구슬 아이스크림, 엄청 맛있었어.”

초등학교 5학년 민서의 일주일. 일러스트 장선환

3월24일: 누군가를 바꿀 수도 있다

3월24일 오후 3시, 수지(3학년)가 바이올린을 꺼내자 다른 아이들도 악기를 꺼냈다. 바이올린은 원희(3학년)·연희, 비올라는 민서, 첼로는 태훈(4학년)·성훈이…. 지난주(3월17일)까지만 해도 미뉴에트 2번 악보를 펴던 수지가 이날은 드디어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선생님 오늘은 미뉴에트 3번 연주해요.” 가끔 틀리기도 하지만 악기를 든 아이들의 자세가 그럴듯하다. 주의력장애가 있는 민서도 악기연습 시간만큼은 한참을 집중한다. 센터 살림 탓에 바이올린에 비올라 줄을 끼워 연습해도 아이들은 즐겁다.

아이들에게 악기는 한때의 경험일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삶을 바꾸기도 한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연정(고1)이는 언어장애가 따라오는 구개열(입천장 갈림증)로 친구들에게 오랜 따돌림을 당했다. 연정이는 ‘지옥’에서 살았다. 그러다 중1 때 센터에서 처음 트롬본을 만났다. “음악 때문에 지금은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연정이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위해 음악치료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며 음대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2019년에 센터 아이들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세종꿈나무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에 참여했다. 아이들을 본 피아니스트 백건우 선생이 ㄱ센터 아이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서 호소하고, 자백하고, 사랑을 표하지요. 나 역시 힘든 시기를 거쳐 지금까지 왔어요. 배고프고 외롭고 희망이 없다고 할 때도 음악은 저를 버리지 않았어요. 음악은 영원한 친구이며 늘 저를 격려해줬기에 참고 견딜 수 있었어요.”

5월6일: 서로 등을 대는 펭귄처럼

지난 6일, 센터를 오랜만에 다시 찾았다. 한달 만에 만난 주호가 기자를 반겼다. “학교에서는 별일 없었어? 혹시 괴롭히는 친구는 없고?” 주호는 또 말을 빙빙 돌리더니 한마디를 꺼냈다. “한명 있어요. 욕하고 그래요.” 주호는 아이들 무리로 돌아갔다. 금세 주호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모습이, 서로 등을 대고 체온을 지켜주는 펭귄들처럼 보였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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