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100주년 맞은 ‘샤넬 No. 5’

심우찬 패션 칼럼니스트 2021. 5. 1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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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향수이며, 가장 많이 팔린 향수라는 ‘샤넬 넘버 5’가 지난 5일 탄생 백 주년을 맞았다. 일찍이 ‘향기가 없는 여자는 미래가 없는 여자’라고 단언했던 가브리엘 샤넬의 어록을 기억해보면 1921년 그녀가 이 황금알을 낳는 사업인 향수 사업에 뛰어든 것은 필연으로 느껴진다.

일사일언 삽입

패션업계에서는 흔히 향수를 “30달러의 호사”라고 한다. 수천만·수억원에 달하는 고급 의상은 못 사도 향은 몸에 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샤넬의 전성기보다 앞선, 벨 에포크 시대에 향수는 이미 대량생산을 시작했다. 여러 향수가 한꺼번에 진열돼 팔리는 백화점 매장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했다. 냉철한 사업가이기도 했던 샤넬은 당시 유행했던 장미나 재스민 향처럼 한 식물만 담은 고상한(?) 향을 선택하지 않았다. 옷을 만들듯, 다양한 꽃들이 뒤섞인 꽃다발처럼 독창적인 향을 원했다.

향수병에서 그녀의 취향은 빛을 발했다. 당시 대세였던 요란한 장식이나 복잡한 구조보다 단순하고 투명한 것을 선택했다. 꿈 희망, 매혹 같은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이름보다는 누구나 쉽게 기억하는 ‘No. 5’를 선택했다. 시향을 위해 조향사가 붙여 놓은 ‘다섯 번째 향수’, 그 이름 그대로였다. 샤넬의 발상이 정점을 찍은 것은 유통에서였다. 샤넬 향수는 샤넬 매장에서만 팔겠다는 것이다. 결과는 우리가 잘 아는 그대로. 통념을 깬 이 제품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향수 중 하나가 됐다.

넘버 5로 시작된 그 명성은 패션과 액세서리로 이어졌다. 1980년대 후반 국내에 진출한 샤넬 코리아는 백화점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며 럭셔리의 표본이 됐다. 가끔 노사 문제나, 인색한 사회 공헌 문제로 눈총을 받아왔지만 전 세계에서도 그 유례가 드문 ‘샤넬 (오픈) 런’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평소에도 매장에 들어가려면 긴 줄을 서야 하는데, 자주 가격을 올리는 샤넬 제품을 인상 전에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사기 위해 백화점 개장 전부터 줄을 선다는 것이다. ‘럭셔리의 반대말은 가난함이 아니라 천박함’이라고 신랄한 독설을 날렸던 샤넬 여사. 이런 ‘샤넬 런’ 현상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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