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10억 우스운 강남.. 40대 '집값 막차' 탔다 [이슈&탐사]
“그때 그러지 않았으면 못 들어갔겠죠.”
2019년 하반기 서울 강남구 아파트를 산 김모(45) 변호사는 안도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성북구 아파트의 전세보증금을 빼서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를 구입했다. 의사인 배우자와 함께 모은 돈에다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꽉 채워 받은 6억원을 보탰다. 그가 매입한 아파트 가격은 1년 반 만에 4억원이 올랐다. 김 변호사는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고 있다. 그는 “강남으로 이주한 것은 투자 목적도 있었지만 교육 목적이 더 컸다”고 말했다.
전문직 종사자인 박모(41)씨도 2019년 여름 마포구 아파트를 처분하고 강남구 대치동으로 이사했다. 자녀 교육 때문이었다고 했다. 가격이 오르던 터라 마포구 아파트는 전세 줄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대치동 아파트 가격이 이미 크게 오른 데다 대출이 제한돼 어쩔 수 없이 매도했다. 그는 아파트를 판 돈과 ‘영끌’ 대출을 받은 돈을 합쳐 가까스로 대치동 아파트를 매입했다고 한다.
대치동의 대장 아파트격인 ‘래미안대치팰리스’ 인근에는 부동산 중개업소가 우후죽순 들어서 있다. 이 지역의 한 공인중개사는 “‘늦어도 초등학교 4학년 전에는 들어와야 한다’는 게 이곳 사람들의 말”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40대가 (이 동네로) 몰려오는 게 사실”이라며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를 내면서도 기를 쓰고 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2017~2020년 강남 집값의 꾸준한 상승을 이끈 주인공은 40대였다. ‘부동산 불패’ 타이틀을 가진 강남구의 아파트 시장은 이들의 이동 타이밍과 맞물려 요동쳤다. 2017~2018년 강남구 인구는 다소 줄었다. 아파트 매매·전세 가격이 급등한 여파로 분석된다. 자가를 보유한 장년층은 아파트를 매도한 뒤 보다 한적한 경기도 성남·용인시, 서울 성동구로 빠졌다. 전세 가격을 감당 못한 20·30대는 보다 저렴한 송파구로 몰렸다. 하지만 그런 흐름 속에서 2019년 강남구 인구가 갑자기 늘어나는 반전이 나타났다. 2019년 상반기 강남 아파트 가격이 주춤하자 이를 ‘강남 막차’의 계기로 삼은 40대가 쏟아져 들어왔다. 아파트 가격이 오를수록 추격 매수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아파트 가격이 오를 때 거래량이 늘고, 전입 인구도 동반 상승했다. ‘패닉 바잉’이었다.
이런 현상은 국민일보가 분석한 통계청의 2017~2020년 국내인구이동통계 자료를 통해 확인됐다. 강남구의 순이동 인구는 2017년 -1만2893명, 2018년 -1만5191명에서 2019년 1841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순이동은 전입 인구에서 전출 인구를 뺀 수치다. +면 인구 증가, -면 인구 감소가 일어난 것이다.
2019년 강남구 인구 증가는 40대가 주도했다. 40대의 순이동 인구는 2017년 -832명, 2018년 -985명에서 2019년 +1418명으로 바뀌었다. 전 연령대를 놓고 봐도 순이동 인구는 40대가 가장 높았다. 또 강남구는 2019년 서울 25개 자치구 중 40대 인구가 가장 많이 늘어난 곳으로 나타났다. 40대 ‘쏠림’ 현상이 강남구의 인구 증가를 견인했다는 얘기다. 강동구(+1051명), 성북구(+306명), 송파구(+292명)를 제외한 나머지 자치구는 모두 40대 인구가 오히려 줄었다.
2019년 강남구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7년 이후 최근까지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매년 상승했다. 다만 2019년 상반기는 2018년 9·13대책의 여파로 부동산 시장이 다소 얼어붙었다. 9·13대책은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인상, 대출 제한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이 같은 일시적 냉각기는 10개월을 넘지 못했다. KB부동산 자료에 따르면 강남구의 1㎡당 아파트 평균매매가격은 대책 발표 직후인 2018년 11~12월 1830만원에서 2019년 5월 1758만원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6월부터는 1770만원으로 상승 전환했다. ‘V자’ 반등이 시작된 것이다. 정책 발표 9개월 만이었다. 2020년 12월에는 2215만원으로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국민평수’인 전용면적 84㎡로 환산하면 2019년 5월 14억7672만원에서 2020년 12월 18억6060만원으로 3억8388만원이 뛰었다. 지난 4월 기준으로는 1㎡당 2300만원, 84㎡ 기준 19억3200만원까지 상승했다.
강남구의 아파트 가격이 반등한 시기, 강남구의 40대 인구는 급증한다. 2019년 5월부터 2020년 2월까지 강남구는 40대 전입 인구가 전출 인구보다 1864명 더 많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40대의 강남구 아파트 매입은 2019년 상반기 50건 전후에 머물다가 6월 140건으로 훌쩍 늘어난 뒤 8월에는 287건, 12월은 331건까지 치솟았다. 아파트 매입은 곧 전입을 의미한다. 2018년 9·13대책은 투기지역 고가주택(공시가격 9억원 이상)을 구입할 경우 실거주를 전제로 대출을 허가했기 때문이다.
2019년 강남구로 몰려간 40대는 어디서 왔을까. 순이동 기준 1위는 양천구(169명)였다. 그 뒤는 경기도 성남시(164명), 성동구(153명), 동작구(102명), 성북구(97명) 순이다. 강남구 내부와 강남3구에 포함되는 서초·송파구의 이동은 제외한 수치다. 특히 2019년 양천구에서 강남구로 향한 순이동 인구는 2018년(86명)의 2배 가량 뛰었다. 2017~2020년 ‘비강남권’에서 온 순이동 인구는 양천·성북·마포구 순으로 높았다.
2019년 강남구로 들어온 40대가 주로 자리 잡은 곳은 대치동(1035가구)이다. 이어 역삼동(949가구), 개포동(592가구) 순이었다. 실제 대치·역삼동은 강남구 아파트 가격 상승을 이끈 주요 지역이다. 2019~2020년에 걸쳐 많게는 10억원 이상 올랐다. 아파트 가격 급등이 시작된 2019년 6월에는 불과 한 달 동안 실거래가가 1억원 넘게 오른 동네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역삼래미안의 80.87㎡형은 2019년 6월 17억4000만원에서 18억4500만원으로 1억원 넘게 가격이 치솟았다.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84.43㎡형이 2019년 6월 18억500만원에서 19억9000만원까지 거래됐다. 도곡렉슬 114.99㎡형은 2019년 6월 22억5000만원에서 2020년 6월 31억원으로 올랐다. 1년 만에 8억원 넘게 오른 것이다.
2019년 40대가 몰려온 곳 1위 양천구, 몰려간 곳 1위 대치동. 이 두 가지 단서가 가리키는 건 결국 교육이다. 강남구의 10대 이하 순이동 인구는 2017년(-208명), 2018년(+118명)까지 소폭 증가 흐름이었다가 2019년(+2766명) 급증한다. 2020년(+1664명)에도 다소 하락했으나 증가 추세가 이어졌다. 40대가 강남구로 밀려 들면서 10대 이하 전입도 동반 상승한 결과다.
40대가 2019년 유독 강남구에 몰린 배경에는 서울시교육청이 자율형사립고 폐지를 추진한 영향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시교육청은 2019년 7월 자사고 13곳 중 8곳의 지정을 취소했고, 교육부는 같은 해 11월 2025년부터 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 방침을 정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16일 “자녀를 자사고에 보내려던 40대에게 학군이 좋은 강남구가 대안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40대가 높은 집값에 ‘곡소리’를 내면서도 2019년 강남구로 몰려든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책 불신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곧 떨어진다’는 정부의 경고를 ‘지금이라도 사야 한다’는 위기감이 무너뜨린 결과라는 것이다. 심 교수는 “현 정부 3년 차가 되면서 2019년 학습 효과가 생겼다”며 “40대 이동은 실수요 측면의 인구이동”이라고 말했다. 서원석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2019년에는 오히려 40대 전입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시장의 인식도 비슷했다. 개포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더 기다리다가 강남에 영영 못 들어간다는 심리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그는 취재 도중 상담 전화를 받고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오르니까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사 놓는 것 아니겠어요? 강남 집값이 제일 싼 날은 오늘입니다.”
김경택 문동성 구자창 박세원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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