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떠난 자리에 키위 심을까..기후위기 시대의 과수업

주영재 기자 2021. 5. 16.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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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조윤섭 전남 농업기술원 과수연구소 소장이 5월 12일 해남의 키위 시험 재배하우스에서 자체 개발한 골드키위 품종인 ‘해금’을 설명하고 있다. 주영재 기자


연노란색의 키위 꽃에서 은은하게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사람이 붓으로 인공수분을 한 암술은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다. 연구용으로 재배할 땐 대조군과 비교할 수 있도록 똑같이 수정하고 관리해야 해서 인공수분이 원칙이다. 꽃이 피는 일주일 동안 키위의 인공수분을 마쳐야 해 요즘 바쁘다. 지난 5월 12일 해남에서 만난 전남 농업기술원 과수연구소의 조윤섭 소장은 “모내기며 양파 조생종 수확 등 오만가지 일이 같이 일어나는 봄철에는 사람 구하는 게 전쟁”이라고 했다.

일반 농민들이 노지에서 키위를 재배할 땐 노동력이 많이 드는 인공수분을 택하긴 어렵다. 벌 수분을 해야 하는데 최근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불확실성이 커졌다. 지난해처럼 장기간 비가 오거나 꽃이 필 때 저온이 오면 벌의 활동이 위축되면서 수분이 잘 안 된다. 그래서 저온 현상이 나타날 땐 인공수분을 보조적으로 반드시 해야 한다. 온도가 낮으면 꽃가루가 수분됐을 때 정핵이 밑씨에 도달할 수 있도록 통로 역할을 하는 화분관의 성장 속도도 느려진다. 미세한 온도 변화도 식물과 꿀벌 같은 수분 매개 곤충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기후변화는 농업의 큰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다.

올해만 해도 2월에 날이 갑자기 따뜻해졌다가 4월에 느닷없는 한파가 찾아왔다. 한점화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연구관은 “이상기상에 의한 피해가 커지면서 농가의 경영 안정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재해 피해 경감 기술을 개발하고, 농작물 재해보험의 확대와 개선, 기상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겨울철 동해(凍害), 봄철 냉해(冷害) 피해

조 소장의 설명에 따르면 전남 지역의 경우 지난해 봄 영암지역에서 배가 서리 피해를 입었는데 올해 고흥에선 유자가 겨울철 동해 피해를 입었다. 고흥 쪽에선 겨울철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는데 지난겨울의 경우 영하 17도까지 떨어졌다. 조 소장은 “지역 농민들이 농사 50년을 지어도 이렇게 추운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한겨울 영하 10도 정도로 내려가면 남쪽의 아열대성 노지 과수는 피해를 크게 본다”고 말했다.

전남지역에서도 대략 남해안 고속도로 아래로는 아열대성 기후가 강해 키위, 무화과, 유자와 석류 등 아열대 상록 과수를 노지에서 키운다. 실제 완도의 소안도와 청산도, 여수에서는 노지에서 밀감을 무가온(무난방)으로 재배한다. 이런 지역에서 봄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순이 얼어죽고, 어린 열매도 같이 피해를 입는다.

기상이변으로 개화기가 빨라지면 그만큼 생육기간이 길어져 과일의 당도가 높아지고 과실이 커질 수 있지만, 이런 이득보다는 봄철 서리로 인한 피해가 더 크다. 조 소장은 “날씨가 추우면 꽃이 늦게 나와 영향을 받지 않는데 2월에 온도가 높아져 꽃이 일찍 핀 상황에서 4월에 이상저온 현상이 오면 꽃과 새순이 발달하다 타격을 더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장마가 길어지고 태풍과 홍수 피해가 커지는 것도 문제다. 토양에 물이 너무 많이 공급되면 뿌리가 물에 잠겨 죽는 습해를 입을 수 있다. 과일 맛도 안 좋아진다. 지난해 경우 비가 많이 와 과일 맛이 떨어진 탓에 화순은 복숭아 축제를 취소할 정도였다. 조 소장은 “복숭아가 전부 물맛이라 그걸로 축제했다가는 지역 얼굴에 완전 먹칠을 할 판이었다”면서 “키위도 마찬가지고 하우스에서 재배한 과일이 아니면 지난해 노지에서 나온 과일은 다 맛이 없었다”고 말했다.

장기간의 기후변화를 생각하면 작물의 품질이 변하는 것이 문제다. 사과나 감, 감귤 같은 붉은색 계열 과수의 착색이 나빠지는 문제가 대표적이다. 온도차가 커야 단풍이 들듯 이런 과일들도 온도차가 커야 색깔이 먹음직하게 잘 드는데 기후 온난화로 색깔이 잘 안 드는 것이다. 재배지가 변하는 문제도 있다. 국립기상연구소에 따르면 2050년이 되면 전국이 아열대권에 진입하게 된다. 아열대 기후의 기준선은 현재 해남, 고흥, 부산 등 남해안에 면해 있는데 2050년이 되면 서울, 대전, 남원, 구미, 안동, 포항까지 북상한다. 농촌진흥청은 그때가 되면 백두대간 등 고산지대에서만 품질 좋은 사과 농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배 재배면적은 이미 감소세를 보여 지난해 재배면적이 9091㏊로 전년 대비 5.4% 줄었고, 생산량도 21.8% 줄었다.

키위 등 아열대 품종 개발로 선제 대응

기후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도 있다. 아열대 기후 확대가 어느정도 불가피하다면 농민들이 배나 사과 대신 키울 대체작물을 보급할 필요가 있다. 지리적 특성상 전남 농업기술원의 과수연구소는 키위, 무화과, 유자 등 아열대 과수에 특화해 연구한 경험이 풍부한데 이런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연구소는 지금까지 키위, 비파, 석류 등 우량 신품종 22종을 자체 개발해 500여 농가 226㏊에 보급했는데 연간 113억원의 농가 소득 창출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바나나, 파인애플, 올리브, 애플망고, 패션프루트 등 열대과일의 시설재배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고흥은 석류 브랜드화를 추진하면서 품종 표준화에 힘쓰고 있다.

조 소장이 30년 가까이 연구한 끝에 개발한 골드키위 ‘해금’과 그린키위 ‘해원’은 품종 개량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일부러 키위 궤양병이 많이 발생하는 토양에 심어 그곳에서 생존한 나무 중에서 좋은 열매를 맺는 걸 품종화한 것이다. 키위 궤양병에 강하고, 열매도 풍성히 열리고 맛도 기존보다 낫다. 이런 점을 높이 평가받아 최근 프랑스 키위회사와 유럽 27개국에서 전용실시할 수 있는 계약을 체결했다. 향후 10년간 약 30억원의 로열티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묘목 한그루를 팔 때마다 일정 수수료를 받고, 과일의 판매량에 따라서도 일정 수수료를 받는 구조이다.

조 소장은 “우리 농업 연구기관에서 품종을 만들어 유럽에 수출하면서 종자와 생산된 과일에 수수료를 매기면서 계약한 것은 최초의 사례”라고 설명했다. 국내 키위 산업 규모는 연간 4만2000t 규모로 국내에서 생산된 양은 1만t 안팎이다. 우리나라 내부에서 생산할 여지가 아직 크다는 점에서 해금·해원 보급을 확대하면 제스프리 같은 회사에 내는 로열티를 줄일 수도 있다.

기후변화로 과일 수급이 불안정하면 국민 불만도 커진다. 비용이 들더라도 정부가 나서서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조 소장은 “농촌진흥청이 기상재해 조기경보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우리 연구소는 이 지역에서 유자를 중심으로 이 시스템을 시범 구축하고 이후 키위까지 확장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그는 “비가림 하우스나 저온 피해를 막을 열풍 팬과 같은 시설, 영하로 내려가면 따뜻한 지하수를 뽑아 뿌려주는 시설 등을 노지에 설치해야 한다”면서 “과습 피해를 막으려면 배수 유공관을 집어넣어 지하수로 빠지게 하는 지원사업도 필요하다. 정부가 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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