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아지로소이다] 중성화 수술,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인텔리 강아지의 삶은 괴롭구나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2021. 5. 8. 0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아범이 컴퓨터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내 앞에 와서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어 뭐라고 혼잣말을 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다음 주에 토동이 중성화 수술 예약했는데요, 그날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취소하고 다음에 다시 전화 드릴게요.

개아범, 너마저.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엄마와 두 달간 함께 살면서 들었던 무수한 이야기 중에 가장 끔찍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주인에 따라 예외는 있지만 한국의 거의 모든 애완견들은 중성화 수술을 받게 된다고 했다. 병원 가서 자고 일어나면 아랫도리가 뻐근하고 목에는 깔때기 같은 걸 두르고 있을 텐데 수술 부위를 핥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엄마는 그 수술을 받지 않았다. 대신 새끼를 낳을 때마다 강제로 생이별당해야 했다. 그러니 반려(伴侶) 운운하는 인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엄마는 말했다. 반려는 짝이란 뜻인데, 친구를 내시로 만드는 마초가 어떻게 인생의 짝이란 말인가.

그런데 개아범은 왜 수술 예약을 취소했을까. 나는 앞발로 마우스를 눌러 개아범이 보던 유튜브를 재생시켰다. ‘중성화, 누굴 위한 일인가’ ‘중성화에 관한 진실’ 같은 영상들은 하나같이 중성화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게 아니며 오히려 위험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인간에게 개의 생식 기능을 강제로 없앨 권리가 있느냐 하는 문제도 제기하고 있었다.

중성화는 미국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영어로도 Neutering이다. 그 이름부터 음모론의 냄새를 풍긴다. 어차피 중성이란 성은 없다. 수컷을 거세하고 암컷 난소를 적출하는 게 어떻게 중성화인가. 중성화라는 교묘한 단어로 마치 폭력이 아닌 적절한 행위인 것처럼 포장했다. 중성화는 미국 애완견 번식업계와 수의사회의 로비 때문에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음모론의 골자다. 유럽에는 중성화가 불법인 나라가 많다고 한다.

인간들은 중성화 수술을 무슨 예방주사 맞히는 일처럼 생각한다. 뚜렷한 근거도 없이 중성화 수술을 하면 오래 살고 병에 덜 걸린다고 말한다. 특히 수컷은 고환암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젠장! 고환이 없는데 어떻게 고환암에 걸리냐 인간들아. 그럼 슬개골 탈구 안 되게 다리도 자르면 되겠네. 나는 갑자기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가고 싶어졌다. 아, 인텔리 강아지의 삶이 이다지도 피로한 것이란 말이냐.

중성화는 미국에서 유기견이 창궐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거리를 떠돌다 죽게 놔두느니 중성화로 유기견을 줄여야 한다는 논리다. 개는 피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중성화는 일종의 영구 피임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차피 개를 집에 가둬 키우고 목줄을 매는 것부터 인간이 개를 도구로 쓰는 것인데, 중성화에만 엄격한 잣대를 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중성화를 하지 않으면 개아범이 나의 번식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까. 그 욕구를 견디지 못해 받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면 깔때기 쓰고 ‘나 수술했음’ 하고 다니는 창피함 정도는 견뎌야 하는 것 아닌가. 엎드려서 기다려야만 간식을 주는 것 역시 그런 면에서 동물 학대로 볼 수도 있다. 내가 낳은 새끼들이 주인을 찾지 못해 유기견으로 생을 마치게 된다면 그 비극은 또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나는 여차하면 찢으려고 물고 있던 개아범의 빨간 티셔츠를 슬며시 내려놓았다.

비 오는 저녁, 개아범이 산책 못 하니까 애견카페 가 볼까, 하더니 나를 차에 태웠다. 다른 개들과 놀 생각에 나도 신이 났다. 애견카페 문 앞에 이렇게 씌어 있었다. ‘중성화 수술 안 한 남아 절대 입장 불가.’ 아, 어쩌란 말이냐. <다음 주에 계속>

토동이 말하고 한현우 기자 적다

페이스북 todong.ee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