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色情'의 화신, 따오기

정지섭 기자 2021. 5. 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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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시도 13년만에 자연번식 성공
사랑은 열정적으로, 육아는 '암수평등' 실천
뛰어난 환경적응력으로 세계 곳곳에 분포
빨강, 흑백, 무지개..털빛깔 각양각색

윤여정 배우에게 아카데미 조연상을 안겨준 영화의 제목 미나리처럼 어디에서도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새의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경남 창녕 우포늪에 방사돼 생태 복원 중인 따오기가 처음으로 야생 번식에 성공한 겁니다.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이라는 노랫말의 동요로 친숙한 따오기는 1979년 비무장지대에서 발견된 것을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가 2008년 중국에서 한쌍을 들여와 우포늪에서 복원사업을 시작했는데, 숫자가 400마리 넘게 늘어났고 마침내 자연 번식까지 성공한 것입니다.

경남 창녕 우포늪에서 생태 복원중인 따오기. 검은 부리와 빨간 얼굴빛이 특징이다. /뉴시스

지방자치단체의 세심한 보호와 종 특유의 강인한 생명력이 함께 조화를 이뤄낸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오기는 황새·백로·왜가리·저어새 등 다른 물새들에 비해 덩치는 왜소하지만, 생존 능력만큼은 탁월합니다. 멸종 뒤 42년만에 다시 터잡은 한반도를 비롯해 남미의 밀림, 아프리카 사바나, 멀리 오세아니아까지 지구촌 곳곳에 퍼져있습니다. 그런데 사는 지역별로 따오기의 색깔이 정말 휘황찬란해서, 마치 물감을 입혀놓은 것만 같아요. ‘원더풀’ 미나리에 ‘컬러풀’ 따오기라고나 할까요.

선명한 핏빛 깃털이 인상적인 남미의 홍따오기. /ebird.org

◇ 드물게 ‘양성평등 육아’ 실현하는 새

오세아니아에 사는 호주따오기. 목부위의 짚같은 깃털과 다채로운 털빛깔이 특징이다. /ebird.org

처량하고 애잔한 동요 속 이미지와 달리 현실 속 따오기는 자유분방하고 열정 넘치는 새입니다. 짝짓기 철에는 해마다 파트너를 바꾸되, 일단 번식을 시작한 다음에는 양성평등 육아를 실현합니다. 따오기의 혼인 생활은 ‘계약 동거’ 형태입니다. 눈이 맞는 이성과 살림을 차리고 새끼를 치고, 키우고 나면 또 다른 파트너를 찾아 훨훨 날아가지요. 경남 창녕군 우포따오기과 소속 김성진 박사는 “이렇게 주기적으로 파트너를 바꿀수록 2세들의 유전자는 더욱 다양해지고, 결과적으로 종이 오래 번영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합니다.

온몸이 푸르스름한 빛을 하고 있는 플럼버스따오기. /ebird.org

새 중에는 암컷이 ‘독박육아’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때로는 다른 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는 뻐꾸기의 탁란처럼 극단적인 케이스도 있지요. 그런데 따오기의 육아 스타일은 암수 어떤 쪽에 치우치지 않고 부부가 동등하게 떠맡는 양성 평등 케이스입니다. 덩치도 수컷이 암컷보다 조금 큰 편이니, 어쩌면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양성평등육아의 모습이 바로 따오기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형광빛이 감도는 부리색깔이 눈에 띄는 녹색따오기. /ebird.org

◇ 핏빛 따오기, 잿빛 땅기, 일곱빛갈 무지개빛 따오기까지

온몸의 거의 대부분이 흰색인 흰따오기. 북미에 주로 서식한다. /미국립공원관리청

마치 대롱처럼 생겨서 아래로 휜 부리가 따오기의 트레이드마크죠. 부리 모양은 똑같은데 색깔만큼은 서식지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조물주가 만물을 창조하면서 온갖 색깔을 만들어 이를 관찰해볼 ‘피팅 모델’로 따오기가 선택됐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남미에는 섬뜩할 정도로 새빨간 깃털을 한 홍따오기, 초록빛이 감도는 녹색따오기, 푸르스름한 빛깔의 플럼버스따오기가 있습니다.

하얀 몸뚱아리에 검은 얼굴을 가진 아프리카검은따오기. /ebird.org

위쪽 북미에는 전신이 새하얀 흰따오기가 삽니다. 인도검은따오기는 짙은 몸에 푸른깃이 감도는 날개를 갖고 있는데, 머리부분에만 빨간 빛이 감돌아 마치 두루미의 별칭 단정학(丹頂鶴)을 연상케합니다. 아프리카 사바나에 주로 서식하는 아프리카검은따오기는 목 아래의 흰 깃털과 대비를 이루는 새까만 얼굴이 뚜렷한 흑백구도를 이룹니다. 이렇게 저마다 패션감각을 뽐내는 따오기 중에 굳이 패셔니스타를 뽑으라면 전 오세아니아의 호주따오기를 꼽겠습니다. 무지개 빛깔이 화사하게 깃든 날개에 짚풀처럼 흩날리는 목 깃털을과 까만 얼굴을 가진 새입니다.

미 오클라호마주 퐁카시티 지역신문인 퐁카시티뉴스 1면에 호수에서 쉬고 있는 따오기들을 찍은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려있다. /퐁카시티뉴스 홈페이지

◇ 황새家에서 펠리컨家로 소속 변경도

창녕군 우포따오기 복원센터에서 따오기 한쌍이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창녕군

따오기에 관한 재미난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원래 분류학상으로는 황새·백로·왜가리 등과 같은 황새목이었는데, 최근에 국제조류학계서 사다새무리와 더 가깝다고 결론을 내리고 사다새목으로 변경했습니다. 이 사다새목에 속하는 새들이 쟁쟁합니다. 물고기부터 비둘기까지 못먹는게 없는 먹성좋은 사다새(펠리컨)와 하늘 위의 폭군으로 통하는 군함새, 한강 생태계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가마우지 등이죠. 남다른 먹성과 뛰어난 생존력으로 무장한 무리들입니다. 모쪼록 이제 자연번식을 시작한 한국의 따오기들도 새로 소속된 집안 내력처럼 막강 생존력을 뽐내며 튼튼히 뿌리를 박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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