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진맥진 여름 철새 쉬어가는 어청도는 ‘족제비 천국’

한겨레 2021. 5. 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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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애니멀피플] 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
번식지 이동 철새 정거장…마을 앞마당서 태연히 대낮 사냥
족제비의 귀엽지만 암팡진 얼굴. 쥐와 작은 새들을 노리는 무서운 사냥꾼이기도 하다.

1960년대에는 시골 동네에서 족제비를 흔하게 봤다. 닭장을 털어가서 미움도 많이 샀지만 사람들은 뜰 안에 들어온 족제비를 ‘복 족제비’라 부르며 해치지 않았고 족제비도 인가 근처에서 함께 살았다. 족제비가 있으면 집 주변의 쥐들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어청도 마을. 어청도는 서해 고군산군도의 63개 섬 가운데 가장 서쪽에 있는 외딴 섬으로 전북 군산에서 약 70㎞ 떨어져 있다.
집 울타리와 밭을 돌담으로 쌓아 족제비가 서식하기 적합하고 밭에는 새들이 많이 찾아온다.

족제비는 시골의 돌담이나 인가 근처 농작물 경작지, 냇가의 큰 돌 밑 같은 곳에 구멍을 파고 서식했지만 1970년대 새마을 사업 등으로 서식 환경이 변하면서 농촌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리는 바다로 둘러싸인 섬, 마을 뒤로 자리 잡은 야산, 돌담으로 쌓아둔 집 울타리와 밭의 경계 등 족제비가 서식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특히 어청도는 동남아와 중국 남부에서 겨울을 보내고 4~5월에 한반도를 거쳐 번식지를 향하는 다양한 철새들이 잠시 머물고 가는 최고의 정거장이다.

족제비는 잰걸음으로 뛰어다니다 잠시 멈추고 주변을 살피는 습성이 있다. 어청도에서 만난 족제비 중 가장 큰 개체다.
벌떡 일어나서 더 멀리 살펴보는 족제비.
먼 길을 이동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지쳐버린 딱새(왼쪽)와 큰유리새(오른쪽)의 깃털이 부스스하다. 족제비의 사냥감이다.

족제비는 2∼3월에 교미하여 약 37일 정도의 임신 기간을 거치고 3∼5월에 한배에 1∼7마리, 보통 4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는다. 철새들의 이동 시기와 족제비의 새끼를 기르는 시기가 맞물린 이때 족제비가 좋은 사냥감을 그냥 내버려 둘 리 없다.

희귀한 나그네새 진홍가슴(왼쪽)과 붉은가슴울새(오른쪽)도 족제비의 표적이 된다.

일반적으로 야행성인 족제비는 밤에 홀로 사냥하지만 이곳 어청도에서는 예외다. 먼 거리를 날아와 지친 새들이 땅에 앉아 있을 때가 족제비에게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에 낮에도 사냥한다. 족제비가 대낮에 흔히 목격되는 이유다.

바위를 타고 소리 없이 대륙검은지빠지 곁으로 다가서는 족제비.
희귀 새인 대륙검은지빠귀가 족제비가 다가오는 것을 알아채고 소리를 낸다.
흔하지 않은 흰눈썹붉은지빠귀가 경고 소리에 몸을 움츠리고 바로 경계 태세에 들어간다.

족제비는 어청도에서 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다. 어청도의 하늘을 매가 지배한다면 족제비는 땅을 지배한다. 족제비는 영리하고 용맹하기도 하다. 숲 속을 은밀히 숨어다니며 몰래 숨어 있다가 사냥감을 급습하기도 한다. 사람과 마주치면 잠시 빤히 쳐다보고 살피는 습성이 있다. 사람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눈빛이다. 사냥감 새를 노려보다 새들이 눈치를 채면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하게 물러서는 약아빠진 행동을 한다. 다음 공격을 위한 족제비의 영리한 전략이다.

새를 사냥한 족제비.
잡은 새를 야무지게 입에 물고 빠르게 은신처로 향한다.
하늘의 포식자인 매도 새를 사냥했다.

재빠른 발걸음으로 빠르게 질주하고 바위나 물체의 곡선에 따라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족제비의 걸음걸이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풀숲에서 움직이면 마른풀 밟는 소리가 사냥에 방해되기 때문에 주로 숲 가장자리와 돌담 아래에 몸을 숨기고 발소리가 나지 않는 물체를 선택해 움직이며 은폐할 수 있는 주변 환경을 이용하여 사냥과 이동을 한다.

이동은 발소리가 나지 않는 곳을 고른다. 족제비의 치밀함이 보인다.

바닷가 모래밭을 배회하다 정박한 배에 올라타 제집처럼 들락거리며 탐색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사냥감은 지천으로 널려 있고 족제비를 상대할 천적도 없으니 족제비의 천국이나 다름없다. 사냥 잔치가 벌어진다.

날쌔게 움직이는 족제비의 짧은 다리와 긴 허리가 이채롭다.
유연한 허리를 이용해 더 빨리 달릴 수 있다.
어청도 마을 길은 족제비의 앞마당이다.

족제비의 몸길이는 수컷 28∼40㎝, 암컷 16∼32㎝이고, 꼬리 길이는 수컷 12∼22㎝, 암컷 8∼20㎝이다. 암컷보다 수컷이 더 크다. 족제비는 귀여운 얼굴이지만 야무지고 굳세며 동시에 사납고 잔인한 야생성도 지닌다. 족제비의 이빨은 매우 날카롭다. 한 번 물면 사냥감은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 작지만 탐욕스러운 포식자로서 활동적이고 주식인 들쥐, 집쥐를 비롯해 어류, 갑각류, 파충류, 곤충, 새, 새 알뿐만 아니라 열매 등을 먹고사는 잡식성 동물이다.

심기가 불편한 족제비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이빨을 드러낸다.

검은 눈동자가 아주 영특하게 보인다. 작은 귀는 둥근 쪽박 모양으로 위로 서 있어 소리를 듣기에 제격이다. 주위를 살필 때는 두 발로 일어서 사방을 살펴보고 경계도 한다.

눈 주위는 검은색, 코는 밤색이고 주둥이의 위아래 입술과 턱의 흰색이 귀여움을 더한다. 족제비는 이제 환경변화로 인해 우리 곁에서 멀어지고 있다.

새들이 족제비에게 수난을 당하는 어청도의 봄, 그런데도 어청도에 머물렀던 새들은 역경을 헤치고 번식지로 날아가 후대를 이어갈 것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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