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의 밤' 지나는 약자들의 이야기..제7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 채영신 소설가 [인터뷰]

선명수 기자 2021. 5. 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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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논산시·은행나무출판사가 공동주최하는 제7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에 채영신의 장편소설 <개 다섯 마리의 밤>이 선정됐다. 심사위원단(소설가 박범신·김인숙·천운영, 문학평론가 류보선·김미현)은 “ ‘이미’ 충분한 고통이 ‘아직’ 오지 않은 구원을 어떻게 소환해야할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 이 소설만의 값진 개성”이라며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이 소설의 통각에 통감했다”고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수상작 결정 이유를 밝혔다. 141편의 응모작 가운데 본심에는 <개 다섯 마리의 밤>을 포함해 이경란의 <강남으로 간 집사들>, 유기성의 <그라운드 제로> 등 세 작품이 올랐다. 황산벌청년문학상은 한국 문학을 풍요롭게 할 새로운 문학작품과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신인·기성 작가 모두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장편소설 <개 다섯 마리의 밤>으로 제7회 황산벌청년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채영신이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정동에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아주 추운 밤이면 개를 끌어안아 체온을 유지했다고 한다. 개 다섯 마리를 끌어안아야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추운 밤, 소설 제목이기도 한 ‘개 다섯 마리의 밤’은 그런 혹한의 시간을 의미한다.

소설의 인물들도 그런 혹한기 속에 놓여 있는 듯하다. 제7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인 채영신의 장편 <개 다섯 마리의 밤>은 초등학생 아들과 엄마, 서로에게 살갑고 애틋한 모자를 중심으로 더없이 차갑고 서늘한 이야기를 펼쳐보인다.

“그건 그러니까, 알비노 사자는 같은 사자들한테 왕따를 당해서, 그래서 죽었을 거야.” 초등학생인 아들 ‘세민’은 ‘알비노 사자’가 어딨냐는 엄마의 말에 이렇게 답한다. 세민은 똑똑하고 생각이 깊은 아이다. 학업 성적을 비롯해 다방면에서 또래 아이들보다 뛰어나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들로부터도 질투를 사는데, 백색증이 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심한 집단따돌림을 당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벌어지는 상처가 있는 것을 깨달을 만큼 나이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때로 어른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집요”했고, 세민은 그럴수록 예민하고 자존심 강한 아이로 자란다.

동네 아파트 단지 인근에 방치된 한 폐가에서 초등학생들이 잇따라 살해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남자아이 둘을 차례로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사람은 동네 태권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권 사범’이었는데, 살해된 아이들 모두 세민을 지독하게 괴롭혔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건 이후 세민은 이따금 권 사범 얘기를 꺼내지만, 세민의 엄마 ‘박혜정’은 두려움 때문에 아들에게 권 사범에 대해 더 묻지 않는다. 소설은 언뜻 평범해 보이는 도시의 아파트 단지, 인근 초등학교와 학부모들의 커뮤니티를 주무대로 개 다섯 마리로도 견디기 어려워 보이는, 모자의 혹독한 시절을 펼쳐 보인다.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정동에서 만난 소설가 채영신(52)은 10여년 전 살던 동네 한구석에 방치된 빈집을 보고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때 떠오른 이야기로 ‘토요일’이란 제목의 단편소설을 썼어요. 대학원 수업 합평 때 냈던 소설인데, 그때 한 선배가 장편으로 쓰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줬어요. 오랜 시간 마음속에 담아만 두고 있었던 이야기를 지난해 욕심을 내 다시 쓰게 됐습니다.”

소설은 일상적인 삶, 보통의 풍경에서 출발해 비극을 향해 내달린다. 그 과정에서 마주치게 되는 것은 인간과 사회의 가장 잔인하고 어두운 면모들이다. 채 작가는 “예전에 황현산 선생님 책에서 읽은 문장을 계속 떠올리며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 ‘잔인함은 약한 자들에게서 나올 때가 많다. 세상에는 울면서 강하게 사는 자가 많다’라는 구절이었어요. 원래 모질고 악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 역시 약하기 때문에 잔인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고 싶었어요.”

채영신 작가는 2010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여보세요’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10년째인 지난해 장편소설 <필래요>와 소설집 <소풍>을 연이어 펴냈다. 전작들을 통해 무간지옥과 같은 현실, 인간의 근원적인 어둠에 대해 써온 작가는 이 소설에서도 인물들이 겪는 수난을 입체적으로 펼쳐보인다. 극중 세민이 겪는 학교폭력과 비극적인 가족사, 멸망을 앞둔 세상을 구원할 ‘성별자’를 찾는 종교집단의 내력이 차례로 드러나며 소설은 기묘한 서스펜스를 이끌어낸다. 채 작가는 “딸이랑 소설 얘기를 자주하는데, 딸이 ‘엄마와 소설이 너무 다르다’는 얘기를 종종 한다”며 웃었다. “어둡고 비극적인 이야기인지라 사실 수상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수상작으로 뽑혔다는 전화를 받고 정말 놀랐어요. 제가 어두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이야기에는 많이 끌리는 편이에요. 그간 써온 소설들도 세상의 어두운 부분에 현미경을 들이대서, 세상이 이럴 수 있느냐고 말하는 얘기들이 많았습니다.”

오랜 시간 도전한 끝에 2010년 등단했지만, 채 작가는 막상 등단한 이후 7년간 소설 쓰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몇 번이나 최종심까지 오르고 거기서 낙선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정말 안 되는구나, 글쓰기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는데, 그렇게 지친 상태에서 등단을 하게 되니 목표한 걸 다 이뤘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렇게 글을 쓰지 못하고 세월만 보냈는데, 마음에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다시 찾게 된 게 소설 쓰는 일이었어요.” 채 작가는 “지난 3년간 몸도 마음도 바쁘고 힘들 때 다시 글을 쓰게 됐다는 게 역설적인데, 그만큼 글쓰기가 저에게 위로가 되고 좋았던 시간”이라며 웃었다. 채 작가의 두 번째 장편 <개 다섯 마리의 밤>은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한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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