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평일 오전 11시 예술의전당은 '마티네 콘서트' 천국이었다

남정현 2021. 4. 24. 05: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KT와 함께하는 마음을 담은 콘서트'
[서울=뉴시스]23일 오전 11시에 열린 '마음클래식' 공연 현장. '마음콘서트'는 무대 뒤편 스크린을 적극 활용해 관객의 작품 이해를 돕는다.(사진=예술의전당 제공)2021.04.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남정현 기자 = '마티네(matinée)'는 프랑스어로 '낮 시간'을 가리키는데, 이와 동시에 '낮 공연'을 뜻한다. '저녁 시간'이라는 뜻과 함께 '저녁 공연'이라는 의미를 지닌 'soirée'(스와레)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한국에서는 '마티네'에 '콘서트'를 붙여 '마티네 콘서트'라고 부르는데, 저녁 공연이 보통 7시30분이나 8시에 열린다면 마티네 콘서트는 오전 11시나 낮 12시에 열린다.

마티네 콘서트는 관객이 덜 드는 시간대인 만큼 저녁 공연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으며, 대중적인 클래식 곡들의 연주 비중이 저녁 공연에 비해 높다는 점이 특징이다.

23일 오전 11시 예술의전당 '마음콘서트'를 관람했다. 국내 대표 마티네 콘서트다.

예술의전당이 2월부터 시작한 'KT와 함께하는 마음을 담은 콘서트'(마음콘서트)는 여성 관객이 압도적이다. 2·3월 구매자 기준 집계를 보면 연령별로는 50대(25%), 40대(23%), 60대(21%) 순으로 나타났다. 여성과 남성이 약 7 대 3의 비율을 보였다.

KT가 협찬하고, KT심포니오케스트라(이택주 음악감독 지휘)가 함께하는 '마음콘서트'는 클래식 애호가는 물론 클래식 입문자도 '지루하게만 보이는 클래식을 재밌게' 들을 수 있다. 김용배(67) 추계예대 명예교수(전 예술의전당 사장, 피아니스트)의 해설이 큰 몫을 한다는 평이다.

[서울=뉴시스]23일 오전 11시에 열린 '마음클래식' 공연장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로비 모습(사진=예술의전당 제공)2021.04.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2악장을 보면 나뭇잎이 살랑살랑 거리는 부분이 있어요. 들어보실까요 (해설자 김용배는 설명한 부분을 피아노 연주로 시연해 보인다.) 개가 멍멍 짖는 소리도 있어요. (피아노 연주 후, 관객의 웃음 터져 나온다.) 합치면 이런 소리가 납니다. (피아노 연주) 이 부분들이 연주될 때 뒤편의 스크린을 통해 자막을 넣어 드리니 확인하시며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큰 환호와 박수)" ('마음을 담은 클래식' 해설자, 김용배 추계예대 명예교수의 비발디 '사계' 설명 중 일부)

'마음콘서트' 해설은 흥미롭고 동시에 유익하다.

"음악이 몇 년도에 작곡됐는지는 전공자들에게나 중요한 지점이죠. 해설을 할 때는 관객이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낯선 음악도 좋아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해설의 유무, 어떤 해설을 하느냐에 따라서 어려운 곡도 쉽게 만들 수 있죠. 음악이 관객에게 쉽게 다가왔다면, 그 공연은 대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용배 교수의 해박한 클래식 지식과 간명하면서도 재밌게 짚어낸 해설은 매번 관객의 웃음소리와 박수로 보답받는다.

"관객은 새로운 것에 대해 아는 것을 좋아하지만, 교육받는 느낌은 싫어한다"는 것을 알기에 김 교수는 "해설할 때 그런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신경쓴다"고 했다.

공연 프로그램 선정과 연주도 해설과 궤를 같이한다. 그는 "관객은 자기가 모르는 곡을 새롭게 알았을 때 큰 즐거움을 느끼지만, 그들이 자기가 잘 아는 곡을 실연으로 들었을 때의 만족감도 크다고 생각한다. 그 비율을 잘 섞어서 프로그램을 짠다"며 프로그램 선정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은 클래식 대표곡 비발디의 '사계' 중 '봄'과 '장학퀴즈'를 포함해 TV 프로그램에서 자주 활용되는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E장조' 중 3악장을 들을 수 있었다.

익숙한 곡들이지만 공연장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연주로 클래식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곡이기도 하다.

지난해 6월부터 클래식 공연장을 찾기 시작했다는 김모(34)씨는 "비발디의 '사계'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곡이다. 하이든의 곡도 마찬가지다. 클래식 공연을 스무 번 정도 봤는데, 이번에 둘 다 처음 들었다. 앙코르곡으로 연주된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도 마찬가지다. 너무 반가웠고, 익숙한 만큼 몇 배로 즐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기연주회에서는 보통 어떤 곡을 프로그램으로 선정할 경우 전 악장을 모두 연주한다. 하지만 김 교수는 전 악장을 연주하는 대신 몇 악장만 선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이날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뿐만 아니라, 첫 곡이었던 비제의 교향곡 1번, 프랑크 교향곡 D단조는 일부 악장만 연주됐다.

"전 악장을 구태여 고집하지 않는 이유는 첫 번째로 가능한 한 오시는 관객이 좀 더 좋은 곡을 여러 곡 접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지루하지 않게 곡의 정수 부분을 보여주기 위함이죠."

[서울=뉴시스]23일 오전 11시에 열린 '마음클래식' 공연 현장. 케텔비의 '페르시아의 시장에서' 연주 중, 지휘자인 이택주 KT심포니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 벙거지 모자를 쓰고 관객석을 향해 돌아 구걸하는 시늉을 하고 있다.(사진=예술의전당 제공)2021.04.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날 공연에서 김 교수는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공연장의 스크린을 적극 활용했다. 그는 작곡가가 악보에 남긴 메모에 대해 설명하고, 그 부분이 연주될 때 스크린에 이 메모들을 띄우며 관객의 이해를 도왔다.

한 관객이 "모든 곡이 15분 이내라 지루하지 않았던 것 같다"는 반응에 김 명예교수는 "스크린 덕분에 짧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곡 프랑크의 곡은 연주 시간이 20분을 훌쩍 넘어요. 3악장만 10분이 넘는데요. 3악장에 스크린 자막을 많이 넣었죠. 자막이 많으면 곡이 짧아지는 느낌을 주죠. 스크린은 클래식곡이 너무 길거나 지루하다는 편견을 벗기기 위한 도구죠. 그렇다고 스크린을 너무 많이 활용하진 않아요. 너무 많을 경우 음악의 감상, 이해를 외려 방해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많은 관객이 '마음콘서트'의 특장점으로 적절한 스크린 자막의 활용을 꼽았다. 프리랜서 디자이너인 성지현(37)씨는 이날 8살, 10살 두 자녀와 공연장을 찾았다. 성지현씨는 "자막이 있어 더 재밌게 들었다. 케텔비의 '페르시아의 시장에서'를 예로 들면 자막에 나오는 공주와 시녀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들으니 훨씬 재밌게 느껴졌다. 아이들도 좋아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전형성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도 돋보인다. 케텔비의 '페르시아의 시장에서'는 케텔비가 직접 적어 놓은 에피소드가 있다. 앞서 성지현씨가 언급한 '시종을 거느린 공주의 행렬' 부분을 포함해 '물건을 구걸하는 거지들의 울부짖음', '뱀 놀이' 등의 일종의 시놉시스가 적혀 있다.

거지를 묘사하는 연주에서 지휘자인 이택주 KT심포니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은 벙거지를 쓴 후 관객석을 향해 돌아 구걸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뱀 놀이'를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관악기 연주자 두 명이 일어나 춤을 추며 연주를 선보였다. 보통의 클래식 공연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서울=뉴시스]23일 오전 11시에 열린 '마음클래식' 공연 현장. 연주 전 해설과 함께 이해를 위해 곡의 짧은 부분을 피아노 시연하고 있는 김용배 교수(사진=예술의전당 제공)2021.04.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 곡이 그렇다고? 빨리 들어보고 싶네'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게끔 해설을 하려고 노력해요. 사람들이 쉽다고 느끼면 너무 좋아요. '마음콘서트'는 음악에 대해서 잘 모르시거나 음악을 막연히 좋아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회라고 생각해요. 관객이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고 느끼는 곡을 어렵지 않게 듣게 하고 싶어요. 이를 위해 항상 고민하죠"(김용배 교수)

마티네 콘서트장에서 만난 정모(63)씨는 "작년에 퇴직을 했다. 라디오를 듣다가 클래식 공연에 관심이 생겨 처음으로 클래식 공연을 보러 왔다. '마음클래식'의 공연 설명을 보는데, 처음 클래식을 접하기에 적절한 공연처럼 보이더라. 이걸 보러 천안에서 왔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37)씨는 "휴가 중이다. 공연을 보고 싶어 찾았는데, 우연히 이 공연을 찾았다. 이 시간에 볼 수 있는 클래식 공연이 이것밖에 없더라. 낮에 공연을 더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 예술의전당은 총 세 개의 마티네 콘서트를 운영하고 있다. 김용배 명예교수는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있던 2004년 '11시 콘서트'(목요일)을 한국에서 최초로 선보였다. '11시 콘서트'의 흥행에 힘입어 2010년부터는 '토요콘서트'도 운영되기 시작했다.

'마음콘서트'의 다음 공연은 5월28일 금요일 오전 11시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피아니스트 강지은과 테너 구태환이 함께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nam_jh@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