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 '동네 플랫폼'을 띄웠다 

조유빈 기자 2021. 4. 2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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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자 2000만' 당근마켓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로컬 기반으로 중고 거래·지역 SNS·커머스·페이로 서비스 진화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당신 근처'에서 가능하다. 슬리퍼를 신고 갈 수 있는 근거리 생활권, 일명 '슬세권'에서 중고 거래를 할 수 있다. 공원을 함께 산책하거나 조깅을 할 동네 친구를 물색할 수도 있다. 일자리를 구하고, 일할 사람을 찾기도 한다. 반려동물 사진을 올려 자랑도 한다. 지역 소상공인들은 가게를 홍보한다. 바로 당근마켓을 통해서다. '당신 근처의 마켓'이라는 슬로건을 들고나온 당근마켓이 이제 지역주민을 잇는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비대면 시대를 역행하며 새로운 오프라인 문화를 정립하고 있는 것이다. 당근이 열어놓은 '로컬 커머스'의 문으로 대형 포털과 스타트업들이 들어온다.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이미 당근마켓을 쓴다. 당근마켓은 어떻게 '전에 없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을까.

"혹시 당근이세요?" 오프라인으로의 역행

최대 6km. 당근마켓이 설정한 '우리 동네'의 범위다. GPS 인증 위치에서 2~6km 반경 안의 이웃끼리만 거래할 수 있다. 주거래 방식은 직거래다. 모든 오프라인 서비스가 온라인으로 흡수되는 시대에 오프라인 중고 거래를 내세운 당근마켓이 이용자들의 호응을 받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중고 거래 플랫폼 1인자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는 중고나라가 있었고, MZ세대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번개장터가 있었다. 많은 중고 거래 시장이 열려 있는 상황. 당근마켓이 추구한 차별점은 '거리'였다.

기존의 중고 거래 시장에서는 전국적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그렇기에 직접 물건을 확인하고 거래하길 원하는 이용자들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택배로 받은 제품 상태가 사진과 다르거나, 입금 후 판매자가 잠적하는 피해 사례도 빈번했다. 당근마켓은 직거래가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직거래는 택배를 보내고 송금을 하는 번거로움 없이 거래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직거래가 가능한 거리를 만들기 위해 당근마켓은 서비스 지역을 쪼갰다.

"혹시 당근이세요?"로 시작되는 직거래가 이제 대표적인 중고 거래 현장의 모습이 됐다. 당근마켓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1주일 이용자 수(WAU)는 1000만 명. 누적 가입자 수는 2000만 명이다. 가입자 중 절반 이상이 주 1회 이상 서비스를 이용하는 셈이다. 물품을 구매하는 동시에 판매하는 회원이 93.3%다. 대다수 이용자가 물건을 사고팔면서 당근마켓이라는 플랫폼에 락인된다. 동네 인증과 연락처만으로 가입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번거로운 아이디 기반 가입 과정을 없애 디지털 진입장벽을 낮췄다. MZ세대가 주 기반이 되는 다른 플랫폼과 달리, 당근마켓은 35~54세가 전체 이용자의 45%를 차지한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이용자들이 당근마켓에 존재한다.

거래에 신뢰를 더하기 위한 제도도 있다. 사람의 평균 체온인 36.5도에서 시작하는 매너온도는, 다른 사용자들에게서 받은 매너 평가를 통해 올라가거나 내려간다. 사용자 프로필에 동네 인증 횟수를 표시해 동네에 거주하는 이웃인지를 판별할 수 있게 했고, 이용자가 특정 조건을 만족시켰을 때 발급하는 '배지'는 구매자가 판매자의 거래 성향을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됐다.

모바일과 오프라인을 연결해 '동네'에서 '거래'한다는 점은, 생활 반경이 좁아진 코로나19 시국에 특히 먹혀들었다. 지역 발전 연구자인 모종린 연세대 교수는 저서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를 통해 "코로나19 시대에 사회적 거리 두기는 역설적으로 오프라인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을 키웠다"고 분석했다. "사람들이 위생과 쾌적성, 디지털 전환, 동네 경제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에 익숙해지면서 코로나 이후에도 공간의 안전성과 온라인·오프라인 융합을 요구하게 된다. 또 생활반경이 좁아지며 동네 소비도 일상의 부분이 됐다"는 것이다. 중고 거래는 당근마켓을 통하면서 날개를 달았다. 지난해 국내 중고 거래 시장 규모는 20조원을 돌파했다. 올해는 이보다 20% 증가해 24조원에 달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지역 SNS로 활성화된 당근마켓

당근마켓에는 마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마치 메신저 같은 요소들이 곳곳에 있다. 이것은 당근마켓이 지역 SNS로 기능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당근마켓에서는 이용자들의 채팅을 통해 거래가 이뤄진다. 당근마켓은 토끼 캐릭터 이모티콘을 무료로 제공한다. 감사를 전한다거나 인사를 나누는 간단한 대화 내용을 이모티콘으로 표현할 수 있게 했다.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라인의 이모티콘처럼, 당근마켓의 토끼 이모티콘은 하나의 상징이 됐다.

카톡에 있는 '선물하기' 기능도 있다. 중고 거래를 하거나 나눔을 받은 이후 감사를 표시할 수 있도록 기프티콘을 구매해 보낼 수 있는 기능이다. 댓글이나 쪽지를 통해 연락처를 주고받고, 그 연락처를 기반으로 거래하는 기존 중고 거래와 달리 앱 내에서 채팅만으로 거래가 가능하다. 위치를 정해 직거래를 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연락처나 계좌번호 등 개인정보를 알릴 필요가 없다는 점도 이용자들이 당근마켓을 선호하는 이유가 됐다.

중고 거래를 기반으로 신뢰를 쌓아온 당근마켓은 동네생활 플랫폼으로 영역을 넓혔다. 중고 거래 플랫폼이 새로운 커뮤니티와 인맥을 구성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당근마켓은 일명 '혼족'들의 커뮤니티 역할도 한다. 집 근처에서 같이 조깅할 사람을 찾거나, 취미 생활을 함께 할 친구를 찾는다. 사용하는 가전의 문제점을 문의하는 글, 대신 벌레를 잡아줄 사람을 구하는 글까지 올라온다.

기존의 지역 커뮤니티나 맘 카페에서 볼 수 있는 소통 방식이지만 조금 다르다. 등업 제도나 가입 인사 등 추가적인 소통이 필요한 지역 커뮤니티와 달리, 동네만 인증하면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고, 누구나 댓글을 달아준다. 그렇게 중고 거래로 발을 들인 이용자들은 당근마켓의 '동네생활' 카테고리를 소셜 앱처럼 사용하게 됐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처럼, 리액션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슬퍼요' '화나요'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동네소식, 우리동네사진전 등 다양한 카테고리는 소셜의 해시태그 기능과 비슷하다.

사실 이 같은 진화는 당근마켓의 큰 그림이었다. 김재현 당근마켓 대표는 2017년 "당근마켓의 경쟁 상대는 기존 중고 거래 플랫폼이 아닌 각 지역 '맘 카페'"라고 했다. 거래보다 지역주민의 커뮤니티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이웃끼리 직접 만나 교류할 수 있는 모바일 장이 되는 게 목표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당근마켓은 한 단계 더 진화한다. 이용자가 확보되고 소통이 가능해지자 '묻고 답하는' 지역주민들의 모습에 착안해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았다. 지난겨울 당근마켓이 운영한 '겨울 간식 지도' 서비스가 그 예다. 이용자들이 호떡·붕어빵 등 겨울 간식을 판매하는 노점 위치를 직접 등록할 수 있게 했다. 이용자 참여가 기반이 돼야만 운영되는 서비스를 당근마켓이 내놓은 것은, 그만큼 당근마켓의 활성 이용자가 늘어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랑방' '벼룩시장'의 새로운 진화

동네의 영역을 지키되, 그 안에서 동네의 역할을 확장시킨다. 당근마켓이 지난해 하반기 도입한 또 하나의 서비스인 '내 근처' 서비스다. 이사, 동네 구인구직, 과외, 부동산, 중고차, 지역 광고 등으로 세분화돼 있다. 구인구직 코너에는 어린아이의 등·하원 도우미를 구하는 글과 동네 가게 알바를 구하는 글이 게재된다. 과외·클래스 코너에는 동네에서 진행하는 피아노 레슨과 과외 홍보 글이 올라온다. 과거를 생각해 보자. '벼룩시장'이나 '사랑방' 등 지역 정보지나 광고 전단지의 타깃이 지역주민들이었다. 동네에서 일할 사람들을 동네에서 구하고, 동네에서 열리는 '아나바다' 시장에서 중고 물품이 오갔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확산되면서 자취를 감췄던 '동네 기반'의 커뮤니티가 당근마켓을 통해 다시 돌아온 셈이다. 같은 동네나 가까이 거주하는 사람을 구하는 구인 공고나 지역 광고는 동네를 겨냥한 서비스를 표방해 온 당근마켓의 방향성과도 부합한다. 다른 매칭 플랫폼과 달리 수수료 없이 구인 글을 올릴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작용한다. 소상공인이 동네 주민에게 가게를 알리고 소통할 수 있는 '비즈프로필' 서비스도 시작했다. 당근마켓에 주민을 대상으로 한 행사 정보를 올리는 지방자치단체들도 있다.

이제 당근마켓은 하나의 '당근 플랫폼'을 만들며 합종연횡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동네 지역 기반 서비스 활성화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스타트업과도 손을 잡았다. 세탁 스타트업인 세탁특공대, 이사 스타트업 미소, 반려동물 케어 스타트업 펫트너와 서비스 제휴를 맺은 것도 그 일환이다. '내 근처' 카테고리에서 이 서비스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일종의 '예약 플랫폼' 역할에도 나섰다. 대기업과도 협업한다. GS리테일과 업무협약을 맺고 편의점과 슈퍼마켓의 유통기한 임박 세일 상품을 당근마켓 이용자들에게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당신의 근처'에 있겠다는 당근마켓의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당근마켓은 국내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전 세계로 서비스를 확장 중이다. 현재 영국, 캐나다, 미국, 일본 등 총 4개국 내 52개 지역에서 당근마켓의 글로벌 서비스 '캐롯(Karrot)'을 운영 중이다. 현지화된 전략을 바탕으로 동네생활 커뮤니티로 입지를 갖춰나가며 '당근의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제 당근마켓은 또 다른 서비스를 준비한다. 이번에는 '페이'다. 이미 지역의 상권과 이용자들은 갖췄다. '당근페이(가칭)'라는 간편결제 서비스가 하반기 출격을 대기하고 있다. '선물하기' 등 기존 당근마켓 내 서비스 뿐 아니라 세탁대행·이사대행 등 생활 밀착형 서비스 전반에도 당근페이를 적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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