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 골프소설-6] 세인트 앤드루스의 거장의 무덤

2021. 4. 17.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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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앤드루스의 골프 아버지 톰 모리스와 앨런 로버트슨.

박물관 안팎으로 방송카메라며 기자들로 북적인다. 브리티시 박물관이 내부 공사를 마치고 1년 여 만에 재개장을 한 때문이다. 디오픈을 계기로 언론들이 새로 만들어진 박물관과 안젤라 관장을 소개하느라 어수선한 분위기다. 박물관을 나와 오른쪽으로 향하면 1백 미터도 못가서 백사장이 나온다. 북해의 파도가 미역 등 여러 해초류를 밀어넣어 백사장은 지저분하지만,

이 곳은 범접할 수 있는 백사장이 아니다. 6백 여년의 긴 세월 동안 어부들이 만선의 기쁨으로 이 곳에 배를 묶은 뒤 곧바로 골프채를 휘두르며 나온 곳이다. 50미터 정도 되는 좁은 폭의 백사장 뒤가 바로 초원이 시작되는 구릉 지대였다. 중세의 아낙들이 올드코스 한 가운데의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하숫물을 흘려보내던 곳이 여기 아니던가. 1번과 18번 홀을 가로지르는 스월컨 다리와 하수 시설이 바로 그 것이다.

바닷가에 접한 올드코스의 아웃코스 오른쪽에는 관목들이 띄엄띄엄 눈에 띈다. 올드코스에 나무가 전혀 없이 풀과 갈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관목은 아시아 지역에서 자라는 종류가 아닌 낮으면서도 기괴한 형태의 구불구불한 가지가 수없이 생겨난 아름드리 나무들이다.

2번 홀과 구릉 사이에서 바닷가를 등지고 앞을 바라보면 세인트 앤드루스시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골프 앤틱 그림에 등장하는 수백년 전 올드코스와 세인트 앤드루스 시가지의 모습이 바로 이 것임 을 느끼게 해준다. 세월만 흐르고 주민들과 골퍼들의 복장만 바뀌었을 뿐, 모습들은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인 전경이다.

부메랑 모양의 코스를 모두 돌아보기에도 한 두 시간은 소요될 듯하다. 내친걸음이니 가장 궁금했던 10번 홀의 끝을 가봐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돌아서 백나인을 돌아오는지가 가장 궁금한 대목이다. 왜냐하면 18홀이 한 라운딩으로 만들어지기 전까지 이 곳은 12홀이 전부였다. 수백 년 전의 골퍼들은 12번 홀을 건너뛰면서 백 나인을 돌아왔고 올드 코스의 마지막 홀은 9번 홀이 아닌 10번 홀이었기 때문이었다.

새로 만들어진 21세기의 18홀 코스는 하늘에서 보면 마치 해마가 옆으로 누워 있는 듯한 형태를 하고 있다. 두 홀이 공유하는 더블 그린이며 11번 홀과 7번 홀이 크로스 되는 모양 등 여러가지 궁금했던 사실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1번 홀로 되돌아오는 데만 족히 2시간은 넘은 듯 하다.

선수들이 모여서 퍼팅 연습을 하고 있는 곳은 영국왕립골프협회(R&A) 건물 앞에 위치해 있다. 필 미컬슨이며 더스틴 존슨 등 선수들이 퍼팅 연습을 하고 있고 조던 스피스가 연습 라운드를 위해 1번 티에 서있다. 제임스의 안중에는 누가 우승을 할까라는 궁금증은 그닥 있지 않다. 이번 여정의 목적은 그야말로 리서치였다.

오후4 시가 다 되서야 다시금 박물관에 도착했는데도 아직까지 방송 카메라들은 내부를 들락거리느라 분주하다. 박물관 2층에 마련된 식당에서 커피라도 한잔 하려고 계단을 오르던 차에 마주친 영국인. 서로 사진을 본 적도 없고 마주친 적도 없었다. 시선이 마주하면서 동시에 안젤라와 제임스는 서로를 알아 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확신에 찬 인사를 주고받은 두사람. 제임스는 안젤라를 옆 테이블로 끌었고 악수를 청했다. 집필 차 3년 전 들렀어야 했던 여정이 이제 이루어졌다는 말로 미안함을 대신했고 안젤라는 손사래를 쳤다. 짧은 조우, 빡빡한 인터뷰 스케줄로 인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지만 내일 오전 중에 잠시 시간을 내겠노라고 했다. 그리고는 우선 새로 지은 박물관을 안내할 직원 한 명을 그에게 특별히 붙여줬다.

새로 만들어진 박물관 내부는 제임스의 가슴을 뛰게 하기에 충분했다. 미국 뉴저지의 USGA박물관처럼 넓고 큰 공간은 아닌 어둡고 좁은 데다 천장도 낮아 답답한 내부였지만 진열장 안에 장식된 골동품들은 어느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책에서 만 보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롱노우즈하며 실버컵, 왕들과 선조 골퍼들의 오리지널 초상화 등등 구할 수도 없는 희귀한 골프의 보물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인류 마지막 페더리 볼을 만드는 장인이자 골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앨런 로버트슨의 실물 크기 밀랍 인형과 공방 내부의 재현은 압권이었다. 클라렛 저그 진품과 브리티시아마추어 오리지널 트로피, 여러 점의 유럽 우승 라이더 컵 등등 진귀한 골동품들을 보느라 문을 곧 닫을 것이라는 안내 방송도 듣지 못할 정도로 눈길을 뺏긴 것이다.

저녁 6시만 되면 골프장의 모든 일정들이 끝나고 선수들은 저녁을 위해 숙소로 향한다. 그러나 제임스는 아직 할 일이 많다. 코스를 뒤로하고 언덕 위로 올라가면서 그의 저녁 일거리는 다시 시작된다. 인근에 위치한 골프샾과 골동품점, 무엇보다 20여분 도보 거리에 떨어진 공동묘지를 찾는 것도 중요한 일과이다. 불세출의 골프 영웅으로 24세에 요절한 아들과 영국 골프의 아버지라 불리는 탐 모리스 부자의 무덤과 골프의 신이라 불리는 앨런 로버트슨의 묘소를 찾는 일이 남아 있다.

세월이 흐른 탓에 세인트 앤드루스 시내에도 골프 골동품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무수히 많았던 가게들은 하나둘씩 없어지고 두 곳에서 만 명맥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전통 스코틀랜드 체크무늬 치마 복장을 한 파이프 연주자의 노래를 뒤로하며 울퉁불퉁한 중세의 도로를 걷는다는 것은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지나던 길에 웅장하게 다가온 천년 대학의 때 묻은 돌담은 또한 어떤 즐거움인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됐다는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은 중세 도시의 또 다른 느낌을 전해주기에 충분하다.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공동묘지는 부슬거리며 흩날리는 작은 빗방울로 인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묘지 내의 오래된 무너진 교회탑이며 방치된 듯한 화장터는 중세의 냄새를 그대로 머금고 있다. 입구에서 가장 끝에 위치한 벽을 향해 이 곳을 찾은 여러 명의 골프 순례자들이 모여 있는 모습은 그 곳이 모리스의 무덤임을 금방 알려주고 있다.

벽 속에 하얀 색으로 영 모리스의 골프치는 모습을 양각으로 새겨 넣은 모습은 다른 비석들과 차별화된다. 아버지 올드 모리스는 그 앞 바닥에 고이 모셔져 있다. 골프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만이 세인트 앤드루스를 방문하면 한 번씩은 이 곳을 둘러보고 간다고 한다.

모리스 부자 보다 더 중요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방문하는 순례자조차도 그대로 지나치기 일쑤인 묘지, 골프의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모리스 부자보다도 더 중요한 골퍼, 앨런 로버트슨의 무덤이다. 모리스의 비석에서 40여 미터 떨어진 지점에 일반인들과 다를바 없이 빗바랜 시커먼 돌 기둥같은 비석을 찾는 데는 10여분이 소요되야 했다. 앨런의 무덤은 영의 그 것처럼 화려하지도, 결코 크지도 않다.

골프 역사를 깊이 알아야만 떠올리게 되는 인물. 앨런 로버트슨은 그런 존재였다. 그러나 앨런의 묘비명에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에 의해 ‘그는 남들과 구분되는 골퍼로 특별함을 지닌 스코틀랜드 골프의 영원한 챔프’라고 적혀져 있다. 비석의 앞면에는 그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고 뒷면에는 골프채를 엇갈리게 장식한 145년의 이끼낀 돌 묘비명이 그를 지키고 있다.

디 오픈이 열리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 올드 모리스가 1859년에 사망한 그의 스승이자 경쟁자였던 앨런을 추모하기 위해 1860년 제1회 디 오픈을 개최하지 않았던가. 40미터의 거리를 두고 마주한 로버트슨과 모리스 두 사람은 2백 여년을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함께하는 끈질긴 연연을 지니고 있다. 세인트 앤드루스를 방문해야만 만날 수 있는 골프에 관한한 전설적인 인물들은 땅속에 잠들어 있지만 그들을 향한 경배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제임스는 첫 날 들렸던 세인트 앤드루스의 공동묘지를 떠올렸다. 톰 모리스와 앨런 로버트슨은 50여 미터의 거리를 두고 같은 묘지에 묻혀있다. 두 사람은 살아생전 사제지간이면서도 경쟁자였다. 올드코스 공방에서 앨런은 스승이었고 톰은 견습공 제자였다. 하지만 볼에 관해서는 앨런이 페더리볼을 만드는 장인이었지만 톰은 구타 페르카볼에 더 관심이 있었다.

결국 결별을 한 채 살아서는 더 이상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지만 죽어서는 같은 묘지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함께 묻혀있었다. 향후 골프에서 공으로 인한 대변혁이 일어날 것임을 톰은 간파한 격이었고 앨런은 현재에 만족한 장인이었다. 여기서 대변혁이란 고무공 때문에 골프채의 형태가 바뀌는 것을 의미했다.

* 필자 이인세 씨는 미주 중앙일보 출신의 골프 역사학자로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 우승을 현장 취재하는 등 오랜 세월 미국 골프 대회를 경험했고 수많은 골프 기사를 썼고, 미국 앤틱골프협회 회원으로 남양주에 골프박물관을 세우기도 했다. 저서로는 <그린에서 세계를 품다> <골프 600년의 비밀>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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