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강의실 6곳 중 5곳은 비어".. 코로나로 대치동 상권도 '흔들'

고성민 기자 2021. 4. 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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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에서 학원을 2007년부터 운영했는데, 이런 적은 처음입니다. 코로나 이전엔 수강생이 100명 정도 있었는데, 작년 봄부터 수강생이 반 토막이 나더니 10명까지 줄었어요. 임대료와 운영비를 내면 손에 쥐는 게 없습니다. 매달 마이너스에요. 고용했던 선생님들 모두 보내고 저 혼자 버티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일대.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상가에서 수학학원을 운영하는 김경철(50) 원장은 지난 15일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이 학원에는 강의실이 총 6개 있는데, 그중 강의실 5개는 작년 봄부터 개점휴업이다. 김 원장은 "인근 학원들은 강의실을 과외선생님에게 임대해가며 겨우 임대료를 메꾸고 있다"면서 "월세를 내지 못해 보증금을 까먹고 건물주로부터 내용증명까지 받은 원장님도 있다"고 했다.

◇집합 금지 이후 돌아오지 않는 원생… 조용해진 사교육 1번지

이날 찾은 대치동 학원가는 코로나 영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모습이었다. ‘사교육 1번지’로 불경기도 피해간다는 대치동 학원가마저 코로나 불황에선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정부가 지난해 8월과 12월 두 차례 수도권 학원에 집합금지 명령을 내리며 수개월 영업을 중단한 게 직격탄이었다. 집합금지로 영업이 중단된 시기에 많은 학부모들이 과외로 전환했고, 집합금지가 풀린 이후에 과외를 받는 학생들이 학원으로 돌아오지 않아서다.

임성호 종로하늘교육 대표는 "웬만한 학원들은 작년에 영업 기간이 5개월쯤 날아갔다고 보면 된다"면서 "그간 고정비용은 그대로 들어서 모든 학원들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코로나 불황은 중소규모 학원에 더 크게 들이닥쳤다. 사실 대치동 학원가에선 대형 학원의 공격적 사세 확장도 일부 감지된다. 강대마이맥이 지난해 11월 옛 대치동 베스티안병원 자리에 통임대로 전세 계약을 맺으며 영토 확장에 나선 것이 대표 사례다.

실제 통계에서도 대치동 학원가의 폐업과 매출 감소는 뚜렷하다. 서울시 우리마을가게 상권분석을 통해 은마아파트입구 사거리 일대 반경 300m 범위의 대치동 학원가 상권을 분석하니, 일반교습학원은 작년 한 해 3곳이 개업했으나 총 27곳이 폐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은 작년 1월 대비 작년 12월 약 25% 감소했다. 또 교육부와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 규모는 9조3000억원으로 2019년(10조5000억원)보다 11.8% 줄었다.

◇무권리금 상가도 등장… 대치동 상권 ‘흔들’

지난 15일 찾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일대 한 상가에 영업 종료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학원이 휘청하며 인근 상가도 시름하고 있다. 거리에 원생들이 줄며 유동인구가 감소한 영향을 고스란히 받아서다. 수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수도권 ‘밤 10시 영업 제한’ 여파도 크다.

이날 대치동 학원가에선 ‘영업 종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임대 내놓습니다’, ‘더 좋은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는 등 폐업을 알리는 안내문을 붙인 점포들이 많이 보였다. 1층 점포도 ‘임대’ 공고가 붙은 공실이 있었다.

이날 만난 카페 사장 A(39)씨는 "학원 강사들과 학생들이 주고객으로, 커피가 맛있다며 단골이 생길 만큼 장사가 잘됐는데 코로나 이후론 그분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안 보인다"면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고도 순이익이 월 200만원은 나왔는데, 지금은 내보내고 혼자 장사하는데도 순이익이 없다. 번 만큼 다 나가 수입 없이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B씨는 "요새는 피로회복제밖에 안 나간다"고 했다. 그는 "학부모들이 ‘공부하는 애들 힘들어한다’며 약국에서 영양제를 많이 사다 줘 영양제와 홍삼이 잘 팔렸는데, 학생들이 안 보이며 가끔 직장인들이 피로회복제 한 병만 사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작년 봄부터 월매출이 반 토막이 났다"고 말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의 얘기를 종합하면, 대치동 상가에선 무(無)권리금 매물도 나오고 있다. 학원으로 쓰이던 50평대 방 7~8개짜리 사무실이 권리금 없이 매물로 나오는 추세다. 대치동 C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코로나 이전에는 권리금이 2000만~3000만원 했던 매물인데 요즘엔 권리금도 없이 나오고 있다"면서 "상가를 새로 계약하려는 문의는 별로 없는데, 사무실 규모를 보다 줄이려고 매물을 찾는 ‘다운사이징’ 문의만 가끔 있다"고 말했다.

은마아파트상가에서 음악학원을 15년여 운영 중인 조미희 한국학원총연합회 서울시지회장은 "대치동은 다른 지역보다 임대료가 비싸다"면서 "임대료를 몇십만원 내려줘도 관리비와 공공요금까지 내다 보면 이자 감당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방마다 피아노가 있어 원래 거리두기가 가능하도록 운영하는데, 일률적으로 집합금지 명령을 내린 게 아쉽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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