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하다 사망한 아빠가 범죄자로 낙인 찍혔다

2021. 4. 1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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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바퀴 배달 인생의 죽음] ② 불법 차선 변경하면 산재가 아니다?

[허환주 기자(kakiru@pressian.com)]
2018년 6월 20일, 성남에서 오토바이 배달을 하던 50대 배달원이 사망했다. 무리하게 차선변경을 하다 차량과 부딪혔다. 통상 배달하다, 즉 일하다 사망할 경우 산업재해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 50대 배달원은 그러지 못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프레시안>에서는 '두 바퀴 배달 인생의 죽음'이라는 기획을 통해 배달 플랫폼 구조 속에서 속절없이 죽어 나가는 배달원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두 바퀴 배달 인생의 죽음] ① 배달원 남편의 사망, 비극은 멀고 현실은 가까웠다

한낮임에도 사방이 깜깜하다. 3평 남짓 방에는 창문이 있으나, 단한 줄의 빛도 떨어지지 않는다. 천장에 매달린 전구가 유일한 빛이다. 창문 뒤 세워진 차가운 회색 시멘트벽이 계절도, 시간도 분간하지 못하게 한다. 방문을 열고 나와도 마찬가지다. 복도 천정에 붙은 전등불에 의지해야 출입구로 나갈 수 있다.

방은 조립식 패널로 지어졌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울 수밖에 없는 노릇. 장판만 깔린 바닥 위에서 겨울을 버티는 수단은 전기장판과 온풍기 한 대뿐이다. 바람도 통하지 않고, 빛도 들어오지 않는 지하 1층에 지어진 조립식 패널로 약 10개의 방이 만들어져 있었다.

방에는 침대 하나, 간단한 설거지를 할 수 있는 싱크대만이 설치돼 있다. 화장실은 지하 1층 입구 쪽에 설치돼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공동으로 이 화장실을 이용한다. 용변기가 남자 1개, 여자 1개이다 보니 아침 시간에는 붐빌 수밖에 없다.

샤워실과 세탁실도 따로 배치돼 있다. 마찬가지로 여기 '원룸'에 사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한다. 타일이 깨지고, 물이 닿는 벽면은 곰팡이가 산적하다.

이곳의 한 달 월세는 13만~17만 원. 보증금도 없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저소득층이다. 우편함에는 동 복지센터에서 사회재난지원금 받아가라는 편지가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 이주성(가명, 53) 씨가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었다.

▲ 고인이 생전 살던 원룸 복도. ⓒ프레시안(허환주)

일하러 나간 가장이 범죄자로 죽었다

이주성 씨는 '그날'도 오전 11시부터 배달 일을 시작했다. 전날에도 새벽 2시까지 오토바이 배달을 했다. 지역 배달앱에 가입돼 있는지라 건당 수수료를 받는 시스템이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배달하는 데 쏟아 부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파트 배달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서울 방향으로 편도 6차로를 따라가다가 진로변경을 위해 5차로, 4차로로 차례로 차선변경을 했다. 좌회전 차로인 3차로에 진입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3차로까지 들어가려던 찰나에 마침 3차로에서 직진 중인 차량의 오른쪽 부분과 부딪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병원으로 응급 이송됐으나 그날 저녁 이 씨는 세상을 떠났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유가족은 고인이 배달 일을 하다 사망했기에 산업재해라고 판단했다.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으나 공단 측에서는 불승인, 즉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고의에 의한 도로교통법 위반'이 사망 원인이기에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고인이 진입하려 했던 3차선에는 '백색실선'과 '시선유도봉'이 설치돼 있었다. 이를 무시하고 진입했기에 도로교통법 위반이 적용됐다.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은 가족으로서는 황당할 따름이다. 가장이 사라지면서 하루하루 살 길도 막막해졌다.

일하러 나간 가장이 범죄를 저질러 죽었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불법으로 차선 변경을 했지만, 이는 좌회전을 하기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배달업 특성상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당시 사고 현장에서 고인이 가려 했던 좌회전 방향은 음식점 등이 모여 있는 상업지역이 있었다.

게다가 고인의 불법 차선 변경은 중한 범죄도 아니었다. 범칙금 2만 원만 내면 끝인, 말 그대로 경범죄였다.

재해조사의견서가 없는 배달 사망 사고

고인 사망의 직접적 원인은 도로법 위반이라고 볼 수 있으나, 구조적으로 살펴보면 조금 다르다. 촉박한 배달 시간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운전을 하다 사망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근거는 사실상 거의 없었다. 고인 생전에 하루 할당 배달 콜 압박이 있었는지, 배달 시간 관련해서 일정 시간 내에 배달할 것을 종용받았는지 등은 거의 조사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고인이 왜 무리하게 좌회전을 하려 했는가'에 대해서도 조사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일하다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산업안전보건공단과 함께 재해조사의견서(사고성)를 작성한다. 사업주가 산업안전법과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지켰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왜 사고가 발생했는지, 업종 내지는 사업장에서의 문제는 무엇이었는지 등을 구조적으로 들여다본다.

주목할 점은 이 배달 사망 사고의 경우, 노동부에서 작성하는 재해조사의견서가 없다는 점이다. 자연히 고인 사망의 배경이 되는 구조적 문제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 사건 담당지청인 노동부 성남지청 산재예방지도과 관계자는 "이 사건의 경우, 사업주가 노동부에 사망 사건을 고지하지 않았기에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사업주는 자기 사업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다치거나 사망할 경우, 이를 노동부에 알려야 하는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그러지 않았던 셈이다. 고인은 전속성을 가지고 배달 일을 했지만,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이었다. 배달앱 사업주와 계약을 맺고 일하는 '사장'인 셈이었다. 고인이 속한 배달앱 사업주가 고인의 사망을 노동부에 알리지 않은 이유다.

만약 고인이 배달앱에서 일하지 않고 치킨집이나 피자집 같은 곳에서 근로계약을 맺고 배달 일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래서 노동부가 사건을 인지하고 조사를 진행했다면, 지금의 결과는 달라졌을까.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고인보다 3개월 전 배달 사고로 사망한 사건을 살펴보자. 성남에서 치킨집 배달원으로 일하던 김아무개 씨는 배달을 마치고 사업장으로 복귀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당시 빨간불이었지만 멈추지 않고 중앙선을 침범해 신호대기 중이었던 차들을 추월한 뒤, 그대로 직진해서 사거리를 넘어갔다. 그러던 중, 좌회전 신호에 따라 반대편 사거리에서 진입하던 버스와 충돌해 사망했다.

당시 작성된 재해조서의견서를 보면, 재해발생 과정, 재해자 업무, 재해발생원인, 재해당일 재해자의 근로여건, 재해 재발방지 대책 등이 자세히 적혀 있다. 그래서일까. 이주성 씨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3개월 전 사고였고, 중앙선 침범 등 과하게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고인이었지만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프레시안(허환주)

'퍽' 소리 내며 사라지는 사람들

사실 고용노동부에서는 오토바이 배달 사망 사고의 경우, 사업주가 사건을 고지한다 해도 거의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단순 교통사고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제3장 제26조)에는 '교통사고 등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에 기인하지 않은 산재 사고의 경우 근로감독관이 재해조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돼 있다. 모든 교통사고가 사업주의 잘못 때문에 벌어지는 게 아닌 만큼 모두 조사할 필요는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 조항은 '교통사고의 경우 산재 조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해석됐고 오토바이 배달 사망 사고를 조사하지 않는데 근거가 됐다.

그나마 노동부에서는 배달 사고가 늘어나면서 일선 근로감독관들에게 오토바이 배달 사고도 조사할 것을 독려했다. 2017년 3월 고용노동부는 지방 노동청에 '교통사고 등 재해형태만으로 재해조사 생략 여부를 판단하지 않도록 유의하여 주시기 바라며, 배달근로자의 교통사고에 따른 중대재해 관련해서 사업주의 안전상의 조치 위반여부에 대해 반드시 조사하여 그 결과를 본부(산업안전과)로 보고 바람'이라는 지침을 내린다.

급기야 2020년 1월 고용노동부는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제3장 제26조)에서 산재사고 조사 지침 중 '교통사고는 생략할 수 있다'는 규정을 삭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선에서는 마찬가지로 오토바이 배달 사망 사고 관련해서 재해조사의견서는 거의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의원실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을 통해 받은 자료를 보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 동안 작성된 재해조사보고서(사고성)는 단 두 건뿐이었다.

문제는 앞으로다. 사업주와 근로계약을 맺고 일하는 배달원은 줄어들고 배달앱에 종속된 노동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사고 건수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김주영 의원실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사업주가 존재하는 음식점 등에서 배달하다 사고를 당한 산업재해 인정 건수는 2017년 836건, 2018년 757건, 2019년 662건, 2020년 523건을 기록했다. 매년 100건 정도씩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반면, 배달앱에서 일하는 배달원의 경우, 2017년 210건(사망 2건), 2018년 310건(6건), 2019년 512건(6건), 2020년 917건(11건)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관련해서는 아무런 사후 조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부 산업안전과 관계자는 "(배달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기에 재해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상으로 배달앱 소속 노동자는 특수고용노동라는 이야기다.

하루 12시간 넘게 두 다리 대신 두 바퀴로 아스팔트를 꼬박 달려서 받는 돈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 그렇게 일하다 잠깐의 신호위반, 불법 차선변경, 운전미숙 등으로 차에 들이받혀, 가로수에 부딪쳐, 연석에 고꾸라져 '퍽' 소리를 내며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런 존재가 지금의 배달앱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죽음을 우리는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 셈이다.

[허환주 기자(kakiru@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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