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에서 온 편지] [7] 영국 王家에 독일인의 피가 흐른다

장일현 기자 2021. 4. 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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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王家에 독일인의 피가 흐른다

“정말 대단히 걱정된다.”

지난달 16일(현지시각)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공이 한 달간 입원해 있던 킹 에드워드 7세 병원에서 퇴원한다는 외신이 전해졌습니다. 이튿날 조선일보 국제면에 전용차를 타고 병원을 떠나는 필립공 사진이 크게 실렸습니다. 당시 저희 국제부 기자들은 놀랍도록 수척해진 필립공 모습을 보며 “이 분이 오래 살지 못할 수 있다”고 직감했습니다. 그로부터 24일 후인 지난 9일 필립공이 별세했다는 부고(訃告)를 접했습니다.

필립공은 지난 2월 16일 몸에 이상을 느껴 킹 에드워드 7세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버킹엄궁은 일주일 후 필립공이 차도를 보인다고 하면서도 그가 어떤 문제 때문에 입원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코로나와 관련된 증세는 아니라고 했지요. 2주일 후인 3월 1일 필립공은 차로 약 20분 거리인 성 바돌로매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심장 전문 병원으로 유명한 곳인데, 필립공은 이 곳에서 심장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후 그의 몸 상태는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YONHAP PHOTO-4086> 심장수술 뒤 퇴원하는 영국 여왕 남편 필립공 (런던 AFP=연합뉴스) 심장 수술을 받았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남편 필립공(오른쪽)이 16일(현지시간) 차를 타고 런던의 킹 에드워드 7세 병원을 나서고 있다. 올해로 99세인 필립공은 지난 3일 심장 수술을 받은 뒤 이 병원에서 요양해왔다. sungok@yna.co.kr/2021-03-16 20:16:27/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아들 찰스 왕세자는 수시로 아버지께 전화도 하고 병문안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필립공은 집으로 돌아가길 원했다고 합니다. 생명의 불꽃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느낀 그는 런던 근교 윈저성에 있는 자신의 침대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어했다는 겁니다. 1947년 이후 자신이 곁을 지켰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옆에서 말이죠.

# 윈저 왕가(王家)

윈저 왕가는 74년간 여왕을 지켰던 집안의 큰 어른을 잃게 됐습니다. 1917년 등장한 윈저 왕가는 역사가 104년 밖에 안되는 젊은 왕가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이자,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할아버지 조지 5세(재위 1910~1936)가 왕가 이름을 ‘작센·코부르크·고타’에서 ‘윈저’로 바꾸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개명(改名)에는 1차 대전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대영제국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무려 64년간 왕위에 있었던 빅토리아(재위 1837~1901) 여왕을 끝으로 하노버 왕조가 막을 내립니다. 이후 영국 왕조는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앨버트공의 가문 즉, 작센·코부르크·고타 이름을 따서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로 불립니다. 이 왕조는 햇수로 불과 14년만 존속합니다. 참고로 배우 윤여정씨가 11일(현지시각) 영화 ‘미나리’로 아시아 배우로는 최초로 영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는데, 그 시상식이 열린 ‘로열앨버트홀’은 빅토리아 여왕이 남편을 기리며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1차 대전이 터지면서 독일이 중립국인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를 침공, 전장이 크게 확장됩니다. 독일이 프랑스로 진격하자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게 됩니다. 당시 독일 제국의 황제 빌헬름 2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자였습니다. 빌헬름 2세와 조지 5세는 사촌지간이었던 셈이죠. 독일이 유럽에 전쟁의 광풍을 일으키자 조지 5세는 영국 왕조가 독일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되도록 지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이름을 고민한 끝에 왕실의 별궁인 윈저성 이름을 땄고, ‘윈조 왕조’가 막을 올리게 됩니다.

가문 이름이 윈저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인 필립공의 가문 이름으로 바뀔 여지는 없었을까요. 실제로 필립공은 1952년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때 가문의 이름을 자신의 성인 ‘마운트배튼’으로 바꾸자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요. 이 때문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공의 사이가 한동안 서먹서먹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6일(현지시간) 영국의 에든버러 공작이 설계 한 윈저성의 정원이 40년만에 처음으로 대중에 공개됐다. 윈저성의 정원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어린시절 일부를 채소밭으로 바꾸어 경작하기도 했다. 1971년 필립 왕자가 정원을 재 설계를 주도하며 많은 화단을 재배치하고 중앙에 새로운 분수를 설계했다.

윈저성은 1000년에 가까운 세월 영국 역사와 함께 한 고성(古城) 입니다. 등장은 정복왕 윌리엄(재위 1066~1087)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윌리엄은 영국을 침략하고 정복한 뒤 런던 서쪽 템스강변에 성을 세웠습니다. 처음부터 왕궁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고 윌리엄의 셋째 아들인 헨리 1세(재위 1100~1135) 때부터 왕궁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영국 청교도 혁명과 내전 때 의회파 군대의 사령부로 사용되면서 많이 파괴되고 훼손됐지만, 왕정이 복고된 이후 복원과 확장 공사 등을 거쳐 다시 웅장한 모습을 회복했습니다. 윈저성은 런던의 버킹엄 궁전, 에든버러의 홀리우드하우스 궁전과 함께 왕실의 공식 주거지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주말을 주로 이곳에서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독일 혈통

왕조의 이름은 윈저로 바뀌었지만 지금 왕가의 뿌리는 하노버 왕조에 연결돼 있습니다. 하노버 왕조는 1714년 시작합니다. 튜더 왕조와 스튜어트 왕조에 이어 영국에선 하노버 왕조가 닻을 올립니다. 스튜어트 왕조가 앤(재위 1702~1714) 여왕을 끝으로 막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독일 하노버 공국의 절대 군주이자 9인의 선제후 중 한 명이었던 조지 1세는 스튜어트 왕가의 초대 왕이었던 제임스 1세(1603~1625)의 후손입니다. 제임스 1세의 딸 엘리자베스가 팔츠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와 결혼해 낳은 딸이 소피아이고, 소피아가 하노버의 선제후인 어니스트 오거스터스와 사이에 낳은 아들이 바로 조지 1세입니다. 그런 관계로 조지 1세가 졸지에 영국 왕으로 오게 된 것이지요.

1714년 가을에 런던에 도착한 조지 1세는 영국인들의 환영을 받지만 그는 영국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영어는 말할 줄도 읽을 줄도 몰랐다고 하네요. 이렇게 시작한 하노버 왕조는 조지 1세→조지2세→조지3세→조지4세→윌리엄4세→빅토리아 여왕로 이어져 내려갑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와서 영국 왕실과 하노버 왕국과의 동군연합(同君聯合), 즉 같은 왕을 섬기는 관계는 끊어집니다. 하노버 왕국은 남성 계승자만 인정했기 때문에 빅토리아 여왕을 왕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빅토리아 여왕은 영국의 왕위만 계승하게 됩니다.

하지만 독일 혈통 관계는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빅토리아 여왕이 독일인과 결혼을 했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윈저 이야기 : 영국 왕실의 비밀’에도 이런 스토리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빅토리아 여왕은 독일인 만큼이나 독일적이었다고 합니다. 독일어 실력이 영어 못지 않았다고 합니다. 독일 사람과 결혼했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들 에드워드 7세(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증조 할아버지)는 ‘완벽한 독일인(completely German)’이었다고 합니다. 그 아들 조지 5세는 절반은 독일인, 절반은 덴마크인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덴마크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조지 5세의 부인도 독일의 방계 왕가인 뷔르템부르크 출신입니다.

이 정도면 영국 왕가에 독일인의 피가 흐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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