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왜 文學을?.. 단답형을 넘어서는 人間 신비가 그 안에 있다

김남주 번역가 2021. 4. 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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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리스트] [14] 번역가 김남주가 본 이시구로 - 노벨 문학상 작가가 추구해온 주제 3

문화는 선별과 여과의 오랜 역사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리스트를 제출하느냐는 것. 건축, 철학, 패션, 역사 등등을 거쳐 문학 분야 첫 리스트는 번역가 김남주가 작성했습니다. ‘특이점의 시대, 노벨상 작가 이시구로가 던지는 질문 3’.

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이시구로는 일본 출생이지만 영국에서 성장했고 특정 국가나 지역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인간 보편의 문학을 영어로 제출해 왔습니다. 프랑스와 영미문학 전문 번역가인 김남주는 국내에 출간된 이시구로의 소설 8편 가운데 5편을 번역했고, 최근작 ‘클라라와 태양’(번역 홍한별)과 함께 나온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집 ‘나의 20세기 저녁과 작은 전환점들’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우리는 왜 영화나 드라마나 연극이 아니라 문학을 읽는가? 문학의 영토에는 한 줄 한 줄, 한 단락 한 단락을 거치지 않고서는 포착할 수 없는, 글쓴이의 언어와 독자의 상상력이 만나는 자리가 있다. 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이시구로를 선정하면서 스웨덴 한림원도 그가 “위대한 정서적 힘을 지닌 소설을 통해 세계와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환상에 불과한 의식의 심연을 밝혀내 왔다”고 했다. 이시구로 식으로 말하자면 조용한 방에서 글을 쓰는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 연결되는 “사소하고 은밀한 자리”다.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이시구로는 “사회가 엄청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감성의 층을 더하고 전망을 제공할 무엇인가”를 남기기 위한 문학의 역할을 강조한다. “나는 여전히 문학이 중요하다고, 우리가 이 험난한 지대를 횡단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특히 더 중요해지리라고 믿는다”고 했다. 급변하는 시대에 혼자 책을 읽고 질문을 곱씹으며 전환점 앞에 선다. 책을 읽는 우리에게 떠오르는 질문들은 문학이 왜 설교나 주장이 아닌지, 왜 단답형의 대답 이상의 것인지, 그 대답을 하는 주체가 왜 작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어야 하는지까지를 포괄한다. 이시구로가 작품을 통해 던져 온 구체적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1. 복제 인간과 인공지능은 인류를 대체할 수 있을까

‘나를 보내지 마’ ‘클라라와 태양’

마크 로마넥 감독의 '나를 보내지마'의 한장면. 주인공 루스, 캐시, 토미(왼쪽부터)는 인간에게 장기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클론(복제인간)이지만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며 유년 시절을 보낸다.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이시구로는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가까운 미래는 과학, 기술, 의학의 경이로운 전환점들에 의해 제기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했다. ‘나를 보내지 마’(2005)에는 클론(복제 인간)이 등장한다. 질병과 노화에 맞서 삶을 연장하기 위한 교체용 장기(臟器)를 인간 복제를 통해 조달한다는 게 과연 가능하기나 한 전제인가? 클론들을 좀 더 인간적인 환경에서 사육한다면 그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인가? 아니면 클론들에게 눈가리기식 ‘유년’을 선물할 게 아니라 사태의 진상을 제대로 알려줘야 하는가?

모든 장기를 적출당하고 ‘완결’될 운명인데도 클론들은 ‘내적 자아’를 드러낼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면서 유년을 보낸다. 주인공인 클론 캐시와 토미는 순하게 눈을 깜빡이면서 묻는다. “그런데 우리한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있나요?”

영화화된 ‘나를 보내지 마’의 복제인간 캐시는 묻는다. “우리에게 영혼이 없다는 사람이 있나요?”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우아함과 미묘함이 스민 문장으로 우리는 이런 처절한 이야기를 읽는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 작품을 두고 “어려운 주제를 눈부시게 벼려낸 이 책을 덮으며 독자는 어두운 유리를 통해 바라본 우리 자신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노벨상 수상 이후 처음 발표한 ‘클라라와 태양’(2021)은 멀지 않은 미래를 시간적 배경으로 한다. ‘나를 보내지 마’의 자매편처럼 읽히는 이 소설은 인공지능 로봇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태양에서 에너지를 취하는 로봇은 비포장 도로를 ‘비공식 오솔길’이라 말하는 기계다운 표현력을 갖고 있다. 사람들이 유전자 편집을 통해 우수한 아이를 얻는 ‘향상’이 일상화되고, 그 부작용으로 아픈 아이들이 많아지자 기능적·정서적 친구 역할을 할 로봇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이야기는 SF소설보다는 일종의 우화 형식으로 펼쳐진다. 자율주행차 대신 사람이 모는 자동차가 거리를 오가고, 시골 헛간에 밀짚이 날리는 가운데 새로운 질문들이 펼쳐진다.

인간이 ‘향상’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인공지능이 인간을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는가? 로봇이 한 인간의 욕구와 충동에 포괄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설계된다면 내면에까지 가닿을 수 있는가? 스스로 느끼고 판단하는 로봇이 인간의 손을 벗어날 경우 어떤 재앙이 닥치는가? 그리고 인간다움과 사랑은 이 모든 것 안에서 어떻게 기능하는가? 요컨대 클라라처럼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인간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인공지능 로봇을 야적장의 쓰레기로 버리는 게 과연 타당한가?

2. 기억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전승되고 극복되는가

‘남아있는 나날’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파묻힌 거인’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남아있는 나날'. 완벽한 직업인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악에 봉사한 집사 스티븐스를 통해 부끄러운 기억과 자기 합리화의 문제를 다룬다. /컬럼비아 픽처스

1999년 나치의 비르케나우 수용소를 방문했던 이시구로는 가스실 잔해인 돌무더기 앞에서 하나의 질문을 떠올린다. 그것에 아크릴 돔을 씌워 악의 증거를 보호할 것인가, 아니면 천천히 부서져 무(無)로 돌아가도록 둘 것인가. ‘기억’은 이시구로가 천착해온 주제 중 하나다.

이시구로의 작품들은 대개 일인칭 화자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특히 그는 ‘남아있는 나날’(1989),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1986), ‘창백한 언덕 풍경’(1982)에 대해선 “같은 책을 세 번 썼다”(파리 리뷰 인터뷰)고까지 말하면서, 한 개인이 불편한 기억과 타협하는 방식과 직업적으로 소모적인 삶을 산 인간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바 있다. 회고적 서술이라는 장치로 인해 독자는 화자에게 설득당하다가 이윽고 진실이 그 너머에 있음을 알게 된다.

‘남아있는 나날’의 집사 스티븐스와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오노는 직업적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나 결과적으로 악(惡)에 봉사했다. 한낮의 빛이 사그라든 저녁에 그 낮의 잔재를 돌아보며 두 사람은 끈질기게 변명한다. 애매한 부분에 대해서는 청문회 때 흔히 보듯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넘어간다.

이렇게 완성된 두 장의 태피스트리 뒷면에는 변명과 합리화의 매듭이 주렁거린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도, 심지어 증거가 사라진다 해도 사실에서 도망칠 방법은 없다는 걸 화자 자신도 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기억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그냥 통절하게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이시구로는 역설적으로 화자 자신의 입을 통해 확인한다.

‘파묻힌 거인’(2015)은 안개로 뒤덮인 어느 마을에서 서로 사랑하며 평온하게 살아가는 브리튼족 노부부가 아들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윽고 환상 소설의 한복판인 양 전설 속 아서 왕의 조카로 알려진 가웨인 경이 늙은 기사의 모습으로 나오는가 하면, 비밀에 싸인 수도원과 도깨비와 용까지 등장한다. 독자는 차츰 마을을 감싸고 있던 안개가 사실은 ‘망각’의 안개이며 평화로워 보이는 그들의 삶이 사실은 “함께 나눈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결과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다.

“기억과 죄책감, 우리가 집단 차원에서 과거의 트라우마를 회상하는 방식을 깊이 있게 파헤친다”(가디언)는 이 작품에서 던지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처럼 우리 몫으로 남는다. 우리를 지금 여기에서 필요한 질문 앞에 서게 하는 것, 그것에 작가의 역할이 있다.

3. 문학은 어떻게 우리를 위로하고 다시 살게 하는가

‘녹턴-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

'에이프릴 인 패리스'가 수록된 새라 본의 1954년 앨범 커버. '녹턴' 수록작 '비가 오나 해가 뜨나'의 주인공 레이는 오랜 친구와 춤을 추면서 이 음악을 들었다.

이제 당신의 머리맡에는 스토리텔러로서 이시구로의 재능과, 깊이 있는 위트와, 어떤 코미디도 능가하는 유머가 팡팡 터져 나오는 중단편집 한 권이 놓여 있다. 가디언은 ‘녹턴’(2009)을 두고 “슬픔과 금욕과 위안을 결합시키는, 이시구로의 독특한 방식을 잘 보여주는 정제되고 감동적인 소설집”이라 했고 인디펜던트에서는 “시간의 추이와 그 여행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는 사랑스럽고 영리한 작품”이라고 평했는데, 그 모든 것에 앞서 이 책은 우선 재미있다.

처음에는 다소 처연한 느낌에 잠겨 읽다가, “맞아, 맞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윽고 친구의 수첩을 훔쳐보다 구겨버린 주인공 레이가 이웃집 개의 소행으로 위장하기 위해 집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장면에 이르면 소리 내어 쿡쿡 웃게 될 것이므로 5편의 수록작 중 특히 ‘비가 오나 해가 뜨나’는 공공장소에서는 읽지 않는 편이 좋겠다. 보통 단편은 문장이 빛나면서 함축이 돋보이는 법인데 이시구로의 중단편은 작가 자신이 즐기는 한마당이라는 느낌이 들 만큼 편안하고 자유롭게 흘러간다.

이시구로는 어려서부터 꿈이 싱어송라이터였고 아마추어 밴드 일원으로 공연한 적도 있을 만큼 음악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최근 자택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거실 벽에 멋진 기타가 걸려있던 게 기억난다. 그래서 우리는 그와 함께 ‘대부’의 테마가 울려 퍼지는 산마르코 광장(수록작 ‘크루너’와 ‘첼리스트’)에 들렀다가, 런던 고급 플랫의 테라스에서 흘러간 팝송을 틀어놓고 옛 친구와 춤을 추고(‘비가 오나 해가 뜨나’), 기타 한 대를 달랑 둘러메고 한철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누이의 시골 카페로 떠난다(‘말번힐스’).

이 ‘음악과 황혼에 관한 다섯 가지 이야기’가 우리에게 찡한 호소력을 갖는 또다른 이유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꿀꿀한’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어떤 점에서 주변적인,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애쓰는 우리 자신처럼 크게 잘나지 않은 인물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레이가 런던의 플랫에서 에밀리와 춤출 때 틀었던 음악은 클리퍼드 브라운의 트럼펫 연주와 함께한 새라 본의 ‘에이프릴 인 패리스’ 1954년 녹음이었다. 귓가에 그 음악을 들으며 책장을 넘긴다. 이야기는 결코 눈부시지 않지만 너무 어둡지 않고, 지루하게 반복되지만 한순간 벅차게 아름답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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