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출신 보수논객' MB맨 박형준은 성공할까

김광수 2021. 4. 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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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7 재보궐선거]언변·기획력 뛰어났던 이명박대통령 핵심 측근
박근혜 정부 땐 친박계 견제로 낙천·낙선 거듭
부산서 30년 활동·종편 출연 자양분 삼아 도전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가 부전시장 앞에서 유세하고 있다. 박형준 캠프 제공
2~3일 사전투표를 앞두고 4·7 부산시장 보궐선거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정치입문 뒤 활동과 자서전, 인터뷰 등을 종합해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가 각각 어떤 사람인지 살펴봤다.
▶관련기사 : ‘YS에 발탁돼 노무현의 길 걸어온’ 김영춘의 도전
http://www.hani.co.kr/arti/area/yeongnam/989238.html

‘이명박(MB)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미운털이 박혔던 사람’.

박형준(61) 국민의힘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서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 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무조건 당선된다는 분위기 속에서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치열한 경선을 치렀는데 당시 초선 국회의원이던 그는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다.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한 이 후보가 자신과 맞았다고 한다.

곧 시련이 다가왔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부산 수영구에 재선에 도전했는데 이른바 친박근혜계(친박)를 표방한 무소속 유재중 후보에게 졌다. 그는 “이명박 정권을 창출하고 인수위원회에 참여한 직후에 패배한 것이어서 충격이 더 컸다”고 회상했다.

낙담에 빠진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부름을 받았다. 선거캠프 대변인과 정권인수위원회에서 빼어난 기획력을 발휘한 그는 청와대 홍보기획관·정무수석비서관·사회특별보좌관을 역임하며 이명박 대통령 곁을 지켰다.

그의 글솜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인정했다고 한다. 사실일까.

“이명박 정부 초기에 이명박 대통령의 주요 연설을 감수한 적이 있다. 친서민 중도 실용주의를 표방한 2009년 8·15 연설은 제가 주도해서 작성한 연설이다”는 답이 돌아왔다.

박형준 후보가 부산역에서 열린 무료도시락 나눔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박형준 후보 캠프 제공

박 후보는 2012년 19대 총선 때도 새누리당 공천을 신청했으나 유재중 의원에게 공천장이 주어졌다. 그는 “이명박 정부 말기 실세였던 친박이 친이계인 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며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으나 큰 표차로 패배했다. ‘엠비(MB)맨’으로서 쓴맛, 단맛을 모두 본 셈이다.

현재는 엠비맨이란 호칭을 어떻게 생각할까?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에서 대통령 참모로 일한 것이 맞지만 지금도 친이계라는 정체성을 갖고 정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계보의 일원으로, 혹은 특정 사람을 보고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는 답이 돌아왔다.

부산 동아대에서 강의 중이던 그를 다시 중용한 이는 정의화 국회의장이다. 정 의장은 2014년 9월 박 후보를 국회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2016년 7월 국회 사무총장을 그만둔 뒤 박 후보는 다시 동아대로 돌아갔다. 얼마 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위가 전국으로 번졌고 새누리당이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그는 정치와 거리를 뒀다.

당시 행보를 두고 국민의힘 부산시장 보궐선거 경선에서 이언주 예비후보는 “박 대통령의 탄핵을 막기 위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박 후보를 비판했고, 그는 “국회의원도 아닌데 무슨 공적 자격으로 탄핵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을까요”라고 받아쳤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부터 종합편성채널에 고정 출연했다. 토론 상대편이었던 유시민 전 의원에 밀리지 않는 말발을 선보이고, 유 의원으로부터 ‘얘기가 되는 사람’으로 인정받기도 하면서 잊혀가던 엠비맨은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에 소환됐다.

문장력과 토론능력의 비결을 물었다.

“어릴 적부터 책읽기와 글 쓰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것이 축적되어서 문장력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에 부산에서 동아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방송토론 프로그램 사회를 맡았는데 토론능력에 큰 도움이 되었던 거 같다.”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 주요 경력과 공약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방송과 강의를 챙기던 그는 지난해 1월 자유한국당 혁신통합추진위원장과 미래통합당 혁신통합추진위원장을 맡으며 야당의 통합을 이끌었다. 3월엔 미래통합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황교안 대표와 호흡을 맞춰 21대 총선을 지휘했다. 미래통합당이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기며 참패했고, 그는 조용히 퇴장했다.

하지만 총선 직후 여성직원 성추행 파문으로 오거돈 부산시장이 사퇴하면서, 다시 한번 재기할 기회를 얻게 됐다. “지난해 가을 출마를 결심했다”는 그는 지난해 12월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등록했고 지난 4일 국민의힘 당내 경선에서 승리해 후보로 선출됐다. 부산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종편에 단골로 출연해 꾸준히 존재감을 알려온 결과라는 평가다.

박 후보는 1960년 부산 동구 초량동에서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지만, 부산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는다. 7살 때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갔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초·중·고를 마친 뒤엔 1978년 고려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보수논객으로 활동하고 보수정당 후보로 선거에 나섰지만 젊은 시절 그는 사상적으로 훨씬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1980년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심취된 운동권이었고, 이념서적을 여럿 출판하기도 했다. 당시 최루탄 파편에 오른쪽 눈을 다쳐 군대를 면제받기도 했다.

대학 졸업 뒤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했지만 얼마 안돼 기자를 그만두고 고려대 대학원(사회학)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5공화국 시절 기자생활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기자보다는 학문을 연구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1991년 동아대 교수로 부임한 뒤 시민사회단체에 몸을 담으며 사회운동에 나섰다. 1995년 부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기획위원장과 1999년 지방분권부산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1994년엔 김영삼 정부 정책자문기획위원을 맡으며 현실참여 폭을 넓혔다.

그의 강의는 꽤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1990년대 부산에서 대학을 다녔다는 40대 여성은 “박형준 교수의 강의가 좋다는 소문이 돌아서 다른 대학에서도 원정 수강을 하자는 말이 있었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다독과 함께 사회문제를 다루는 시사 뉴스들을 결합해서 이론과 실제를 연계한 사회학 강의를 주로 했다. 그래서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는 것 같고 어려운 학문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그런 평가를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자평했다.

학자이면서 제도권 정치권을 넘나들었던 그는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국회의원과 청와대 수석 등 공직생활 10여년 동안 동아대에서 휴직한 데 이어, 이번에 또다시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자 동아대 일부 교수들이 폴리페서라고 비판했다.

그는 “교수를 하면서 정치활동을 한다는 측면에서 폴리페서가 맞다. 그런데 사회발전론을 전공한 학자로서 항상 사회발전에 대한 연구가 사회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교수로서 불성실하였다면 비판을 받아야 하겠지만 교수로서 정치하는 것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또 그는 “유명한 사회학자인 엔서니 기든스나 울리히 벡 같은 분들도 교수이면서 정치에 참여했다. 사회학의 대부인 막스 베버도 말년에 정치에 참여했다. 그분들을 폴리페서라고 부를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민주당 쪽으로부터 딸의 홍익대 입시부정 의혹, 엘시티 아파트 분양권 특혜 의혹 등으로 거세게 공격받았지만 그는 “정치적 흠집을 내기 위한 흑색선전”이라며 일축했다. 재혼한 아내 명의의 땅에 지은 건물이 등기되지 않은 사실을 두고서도 “저희 부부는 오래전부터 꿈이 있었다. 노후에 좋은 미술관을 지어 남기고 싶다는 꿈이었다. 건물 미등기는 건축사의 단순 실수였다”고 두둔했다. 다만 첫번째 아내와 이혼해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비판에는 말을 아끼고 있다.

주량이 소주 2병이고 독서와 여행이 취미라는 그에게 책 한권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 “저와 권기돈 박사가 공동집필한 <보수의 재구성> 일독을 권한다. 좌우를 떠나 합리적인 정치세력이라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정치철학이 담긴 책이라고 생각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진보에서 시작해 보수로 옮겨간 그에게 이념적 좌표란 무엇일까.

“별명이 미스터 합리주의자입니다. 그리고 저는 사회발전론을 연구한 학자입니다. 그러다 보니 정치철학적으로 자유주의를 중시하는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보수라고 생각합니다.”

부산/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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