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이 인정한 '은수저 장인'도 코로나에 눈물.. "40년 기술 이어야되는데"

심민관 기자 2021. 3. 2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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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외길 걸어온 국내 최고 ‘은수저 장인’ 김홍현씨
"코로나 사태로 판매량 급감·은값 상승에 1억원 적자 떠안아"

"지난해 1억원 정도 적자가 났다.40년간 운영해 온 공방인데 지금처럼 힘든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서울 중구에서 ‘고은’ 공방을 운영하는 김홍현(58)씨. 지난 1982년부터 금속공예 외길을 걸은 그는 업계에서 유명한 장인 중 한 사람이다.

김씨의 주력 제품은 은수저다. 상감기법을 이용해 은수저에 순금으로 섬세한 문양을 새기는게 김씨의 특기다. 21년 전 유리지 서울대 미대 금속공예학과 교수로부터 은수저 디자인을 전수받은 뒤 은수저 제작이 그의 주특기가 됐다. 2001년부터는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강남점에 은제품 전문매장을 내고 직판매 시스템을 구축했다.

지난 2018년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냉면을 먹는 장면이 생중계 됐을 때 두 사람이 사용한 은수저 역시 김씨가 만든 것이었다.

김홍현 고은 공방 대표가 은수저 가공을 하고 있는 모습.

40년 가까이 숱한 위기를 넘기며 금속공예 외길을 걸어온 장인마저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결혼식이나 돌잔치, 환갑 잔치 등 각종 예식행사가 줄면서 공예품 수요가 줄어든 데다, 귀금속 가격 급등으로 마진(이익)마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에서 은수저 공방을 운영하는 김홍현씨는 26일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코로나 때문에 손님은 크게 줄었는데 은값도 천정부지로 올라 지난해 1억원 정도 적자를 냈다"며 "우리는 가까스로 버텨냈지만, 주변에 문을 닫고 업계를 떠난 후배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코로나 사태 이후 경기 불황으로 갈수록 판매량은 감소하는데, 은값은 오르는 ‘기현상’ 때문에 곤혹을 치뤘다고 했다. 지난해 결혼식과 환갑잔치 등 예식행사가 줄면서 은수저 판매량은 40% 넘게 줄었다. 그런데 같은 해 3월 1트로이온스(31.1g)당 14달러였던 은값은 올해 약 30달러까지 치솟으면서 1년만에 두 배 넘게 상승했다.

김씨는 "원재료 가격 상승을 견디지 못해 20~30%까지 상품 가격을 올려야 했었다"며 "원재료 상승분을 모두 반영하면 상품 가격이 크게 오르는데, 판매가 부진할 것으로 예상돼 공임료를 줄이는 방식으로 판매가를 최대한 낮추고 손실을 떠안을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품 가격이 인상돼 매출액 숫자로만 놓고 보면 코로나 이전보다 소폭 증가했는데, 1억원 넘게 영업적자가 나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환영만찬에서 옥류관 평양냉면을 먹고 있다. /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김씨는 영업적자와 매달 지출되는 고정비 부담 때문에 지난해 총 1억원의 은행 대출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공방 임대료와 직원들 급여, 백화점 매장 판매수수료 등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비만 3000만원이 넘는다"며 "정부가 지원하는 소상공인 저금리 대출(3000만원)을 받고도 모자라 별도의 은행 대출(700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김씨의 경우는 그래도 다른 금속공예 종사자들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코로나 불황과 은값 상승이라는 겹악재에도 불구하고 이를 돌파할 경쟁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오랜 세월 축적된 기술력과 직판망을 코로나 위기를 버틸 수 있게 한 비결이라고 꼽았다.

김씨는 "일반적으로 금속공예 종사자들이 제품을 만들어도 직판이 불가능하고, 도매나 소매상을 거쳐야 해 마진을 많이 남기기 어려운 시장 구조"라면서 "오랜 세월 기술력을 인정받은 소수의 장인들만 겨우 버틸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주변 후배들이 금속공예에 더이상 미래가 없다며, 업계를 떠나 배달이나 택배 일을 하는 걸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면서 "기술을 전수해주고 싶어도 이제는 배울 후배들이 사라져 우리 전통공예 기술의 맥이 끊길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김홍현 금속공예 작가가 홍재만 명장이 만든 은주전자에 용 문양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왼쪽)과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 청와대에 납품한 은수저 세트(오른쪽).

코로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방법으로 김씨는 업계 장인들과의 협업을 강조했다. 장인들의 기술력을 한 제품에 집약시켜, 보다 고급스러운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김씨는 "20년지기 벗인 홍재만 명장과의 협업 제품을 준비 중"이라며 "본인의 상감기법을 홍 명장의 은주전자에 적용시켜 용 문양을 새겨넣고, 용의 눈을 보석으로 박는 방안 등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홍 명장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선언서를 발의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인 독립운동가 인암(仁菴) 홍병기 선생의 손자로, 50년째 금속공예 외길을 걷고 있는 장인이다. 그는 지난 2017년 대한민국기로협회가 주최한 '대한민국 공예 명장대전'에서 전통수공예 방식으로 제작한 은주전자로 금속 공예부문 '명장'에 선정됐다. 같은해 열린 국제기로미술대전에서도 공예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실력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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