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글쓰기에 대하여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박설영 옮김, 프시케의숲 펴냄
“그 속은 깜깜해요.”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가 2000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글쓰기를 주제로 강의 요청을 받았다. 뛸 듯이 기뻤고 ‘너무 기술적이지도,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모호하게 설명하지도 않을 생각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머릿속은 백지상태가 되었다. 고민 끝에 작가가 서 있는 위치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가 붙든 질문은 세 가지다.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왜 글을 쓰는가? 글은 어디에서 오는가? 글쓰기 과정에 대한 수많은 묘사들의 공통 요소는 ‘앞을 볼 수는 없지만 앞으로 길이 나 있으며 가다 보면 결국 앞을 볼 수 있게 될 거라는 느낌’이었다.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정은 어둡고 복잡했다. 작가가 직접 경험한 어둠, 그 속에서의 욕망이 특유의 위트 있는 문장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전국축제자랑 김혼비·박태하 지음, 민음사 펴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세계의 바깥에서 수많은 취향과 노력이 질서를 이루어 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아무튼, 술〉의 김혼비 작가와 〈책 쓰자면 맞춤법〉 〈괜찮고 괜찮을 나의 K리그〉의 박태하 작가가 함께 쓴 한국 지역축제 탐방기다(둘은 부부다). 두 사람의 글을 어떻게 합쳤는지 소개하는 대목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충남 예산 의좋은형제축제’ ‘전남 나주 영산포홍어축제’ 등 전국의 지방 중소도시 축제 열두 개에서 “어떤 종류의 끈적끈적함과 어떤 종류의 매끈함이 세련되지 못하게 결합한 ‘K스러움’”을 읽어낸다. “축제를 통해서는 인구 유출을 막는 것도, 지역경제를 살리는 것도, 하다못해 축제 자체의 수익을 내는 것도 무리”인 줄 알지만, 그럼에도 ‘최후의 보루’이자 ‘숙제’인 축제를 놓을 수 없는 지방도시의 분투를, 유머러스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연대한다.

전설의 수문장 권문현 지음, 싱긋 펴냄
“유명 셰프들의 신입 시절을 지켜봤다. 그들에게도 종일 양파만 까던 시절이 있었다.”
차지철 경호실장을 보고 겁먹은 선배들이 떠맡으라고 해서 엘리베이터에 동승했지만, ‘떨려서’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은 명절에 흰 봉투를 건넸다. 금일봉 아니냐며 직원들이 난리가 났지만, ‘관광산업을 위해 수고 많으십니다’라는 손글씨가 들어 있었다. 영화 〈택시 운전사〉의 주인공 김사복씨는 조선호텔에 상주하던 일명 ‘호텔 택시’ 기사였다. 그가 광주에 다녀온 뒤 들려준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44년이라는 세월이 주는 울림이 있다. 고관대작만 호텔에 드나들었던 1970년대부터 ‘호캉스’란 말이 보편화된 지금까지, 44년 동안 ‘호텔 도어맨’으로 일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다. 호텔 문 앞에서 적은 한국 현대사의 작은 기록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트릭 미러 지아 톨렌티노 지음, 노지양 옮김, 생각의힘 펴냄
“나와 세상이 혼란스러우면 일단 그 주제로 글을 써보았다.”
추천사 명단부터 눈길이 간다. 김금희, 강화길, 김하나, 이슬아, 이길보라 등 여성 작가들이 말한다. 현시대 가장 뜨겁고 생생한 증언록이자 대담하고 무자비한 책이라고. 필리핀계 이민자의 자녀로 휴스턴의 메가처치에서 자라 〈뉴요커〉 기자로 일한 작가는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기에, 진실과는 먼 방향으로 끌려가기에’ 책을 썼다고 했다. 외신으로부터 ‘밀레니얼 세대의 수전 손택’이라는 수식을 듣기도 한 그는 소셜미디어, 리얼리티 쇼, 성과 인종, 권력, 페미니즘 등 각종 주제를 넘나든다. 특히 10대 시절 리얼리티 쇼에 출연했던 당시의 기억과 지금의 해석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트릭 미러’는 왜곡이 있는 거울을 의미한다. 트릭 미러 앞에 선 우리는 종종 거울을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는다.

변두리 로켓 고스트 이케이도 준 지음, 김은모 옮김, 인플루엔셜 펴냄
“사장님은 돈이 되느냐 마느냐 이전에 인간으로서 올바르냐 그르냐는 기준으로 경영 판단을 하신 겁니다.”
한번 읽는 게 쉽지 않지만, 한번 읽으면 계속 찾아보는 소설. 스토리텔러 이케이도 준의 작품이 그렇다.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를 읽은 독자라면 꼭 읽고 싶은 〈변두리 로켓〉 시리즈 세 번째 편이 출간됐다. 일본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변두리 동네 중소기업에 투영했다. 이번 소설에서도 저자 특유의 흡인력이 넘쳐난다. 클라이맥스는 부패한 변호사끼리의 은밀한 거래가 법정에서 밝혀지는 대목. 이 외에도 대기업의 짬짜미, 하청업체 단가 후리기, 사내 정치 등 한국 사회를 보는 듯하다. 쓰쿠다 제작소 사장 쓰쿠다 고헤이가 이번 시리즈의 주인공인데 매번 주연급 조연들이 등장한다. 이기적인 사내 문화에 지쳐 ‘회사란 무엇인가’를 고뇌하는 독자들에게 권한다.

일본의 굴레 태가트 머피 지음, 윤영수·박경환 옮김, 글항아리 펴냄
“일본은 거대 문명의 자기장 바로 바깥에 위치한 사회에 대한 완벽한 사례다.”
일본에 대한 책은 나오는 족족 팔려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함량 미달의 책도 베스트셀러가 되곤 했다. 친일이냐 반일이냐, 이 질문은 일본과 관련된 책이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답이 선명할수록 잘 팔렸다. 〈일본의 굴레〉는 그런 공식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일본을 정말로 이해하고 싶어 하는 독자를 겨냥한다. 한 나라를 이해한다는 것은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문화와 역사를 모두 이해하는 동시에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까지 이해한다는 뜻이다. 말이 쉽지 불가능한 도전에 가까운데, 저자인 태가트 머피는 모든 영역을 넘나들며 ‘일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 나간다. 갈수록 전문 영역의 장벽이 높아지는 현대사회에서 이 책이 보여주는 종합적 시야야말로 귀중한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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