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쓴 채 커피 마시다 화들짝.. 당신의 '마스크 동거' 1년은?

김미리 기자 2021. 3. 2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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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3079명에게 물어본
'마스크 1년 백서'
일러스트=김현국 기자

#1.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 이정은(38·서울 목동)씨는 하교 시간 교문에서 아이를 기다리다가 같은 반 엄마들과 친해졌다. 그런데 얼마 전 ‘줌’으로 열린 학부모 회의에 참여했다가 순간 당황했다. 화면 가득 뜬 엄마들 가운데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었단다. “마스크 끼고 눈만 보다가 처음으로 서로의 얼굴을 본 거죠. 내가 알던 사람들이 아니더라고요(웃음).”

#2. 김현수(45)씨는 회사에서 ‘깔끔남’으로 통하지만 마스크에 관한 한 예외다. 일회용 KF94 마스크를 일주일 가까이 쓴다. “햇볕에 바짝 말려 소독해 끼니 괜찮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흡연자 상사가 마스크를 며칠씩 쓴다는 얘기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김씨에게 상사가 웃으며 말했단다. “너는 일주일씩 써도 괜찮고 나는 안 돼? 마스크 다시 쓰는 것도 ‘내로남불’이냐?”

딱 1년 전 이맘때를 기억하시는가. 코로나 바이러스 대공습을 피해 마스크 찾아 삼만리 하던 시절이었다. 지난해 3월 9일 ‘마스크 5부제’가 시작됐다. 마스크를 ‘배급’받기 위해 출생 연도 끝자리에 해당하는 날이면, 약국 문 열자마자 몸 던지지 않았던가.

마스크와 한 몸 된 지 1년여, 그간 저마다 마스크와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쯤은 갖게 됐다. ‘아무튼, 주말’이 SM C&C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를 통해 전국 20~60대 성인 3079명을 대상으로 마스크와 함께한 지난 1년을 되짚었다. 이른바 ‘아, 주말’ 마스크 1년 백서!

◇30%, 1년간 100~200장 써

‘노 팬티는 괜찮아도, 노 마스크는 안 됩니다!’ 서울의 한 매장에 붙은 우스개다. 신발 없인 외출해도 마스크 없인 못 나가는 세상이 됐다. 서울에 사는 한 설문 응답자(39)는 “꼭두새벽에 출근하는데 바람에 마스크가 날아가 버렸다. 마스크 없으면 버스를 탈 수가 없어 회사까지 걸어간 적이 있다”고 했다. 마스크는 코로나 시대의 통행 허가증이다.

지난 1년간 쓴 마스크는 몇 장쯤 될까. 응답자 10명 중 3명꼴(29.9%)로 ’100장 이상~200장 미만'이라고 답했다. 다음이 ’50장 이상~100장 미만'(26.1%), ’200장 이상~300장 미만'(18.7%) 순이었다. ’300장 이상'도 11% 정도 있었다.

마스크 품귀 트라우마가 센 모양이다. 응답자 29.5%가 1인당 ‘50장 이상~100장 미만' 정도 마스크를 구비해 둔다고 답했다. 가장 많이 쓰는 마스크는 KF94. 열 명 중 여섯(60.8%)이 사용했다. 비말 차단 수술용 마스크(18.1%), KF80(12.0%)이 그다음. 천 마스크 등 재사용 마스크를 쓴다는 사람은 8.8%였다.

◇마스크도 옷… ‘깔맞춤’ 한다

옷처럼 TPO(시간·장소·상황)에 맞춰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늘어났다. 재택근무가 잦은 회사원 이정희(45)씨는 평소엔 검정 KF94를 쓰다가 회사에 갈 땐 흰색 KF94를 쓴다. “회사 밖에선 세련된 느낌 주고 싶어 검정으로 하고, 회사 갈 땐 밝은 이미지를 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운동할 땐 비말 차단용을 쓴다. 이씨는 “하루 900원으로 하는 나만의 플렉스(flex·과시 소비)”라고 했다.

디자이너 여미영씨는 ‘코로나 블루’를 마스크로 떨친다. 해외 직구로 핫핑크·초록 등 원색 마스크, 열대 꽃문양 등 독특한 마스크를 사기도 한다. 여씨는 “흰색만 쓰니 뭘 입어도 환자처럼 보이고, 기능 때문에 억지로 써야 한다는 강박으로 괴로웠다”며 “선택 폭을 넓히고 고르는 즐거움을 찾다 보니 답답한 상황을 잠시 잊고 일상의 작은 활력을 얻었다”고 했다. “위기 대처 용품인 마스크가 역설적으로 위기를 잊게 하는 소품이 됐다”는 얘기다. 이런 영향일까. 응답자 41%는 ‘마스크 줄 등 마스크용 액세서리를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마스크 제조사인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마스크 공급이 여유 있어지면서 얼굴형과 스타일에 맞춰 마스크를 따져 고르는 사람이 많아졌다”며 “전체적으로 ‘3단 입체형’ 수요가 가장 많고, 얼굴이 작고 브이라인을 원하는 여성은 날렵한 ‘새 부리형’, 얼굴이 큰 남성들은 넓은 ‘4단 입체형’을 선호한다”고 했다.

◇일회용? 절반이 2~3일 써

업무상 외부 미팅이 많은 홍보 대행사 부사장 권기정(48)씨는 “미팅이 끝날 때마다 찜찜해서 새 마스크로 갈아 낀다. 하루에 서너 번 갈 때도 있다”고 했다. 반면 주부 김정희(38)씨는 “외출할 때만 잠깐씩 쓰기 때문에 일회용 마스크라 해도 한 번 쓰고 버리기 아깝다. 평균 5일 정도 낀다”고 했다.

일회용 마스크는 이름 그대로 하루 쓰는 게 원칙이지만 며칠 쓰는 사람도 꽤 있다. 설문에서도 일회용 마스크를 하루만 쓴다는 이는 24.8%였고, 2~3일 쓴다는 응답이 절반(49.9%) 정도로 가장 많았다. 15%는 4~5일 사용한다고 했다. ‘아깝다’(56.8%)는 이유가 가장 컸고, ‘위생상 별문제 없을 것 같다’(22.5%), ‘환경오염이 걱정된다’(14%)는 이유가 뒤를 이었다.

재사용 가능 여부엔 갑론을박이 있다. 마스크 대란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선 “환기가 잘되는 깨끗한 곳에 보관한 후 재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가 “비상 상황에서 내린 한시적 조치”라며 한 발짝 물러서기도 했다. 전문가 의견도 엇갈린다.

◇마스크 쓴 채 침을 뱉었다

“집을 나서 몇 발자국 걸었는데 상쾌했어요. 날씨가 참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쳐다보더라고요. 그제야 마스크 안 한 걸 알아챘어요. 후다닥 집으로 뛰어 들어갔죠.” 경기도 사는 이지영(가명·33)씨가 말했다.

마스크가 ‘제2의 피부’가 됐다. 하루 마스크 착용 시간을 묻자 ‘5시간 이상~10시간 미만’(30.1%)이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주관식으로 물은 경험담엔 요절복통 에피소드가 넘쳤다. “아무 생각 없이 마스크 낀 채 커피를 마시다가 쏟았다” “마스크 쓰고 있다는 걸 깜빡 잊고 침을 뱉었다” “마스크 낀 채 양치를 해 치약이 묻었다”….

‘믿고 마스크 벗을 수 있는 사이’는 어디까지일까(복수 응답). 피는 바이러스보다 진하다는 것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가족’이라는 답(73.4%)이 단연 1위였다. 동료(13.2%)보다는 친구(18.2%)와 연인(18.0%)을 더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시대에도 사랑은 싹튼다. 이 시대 애정 전선은 마스크 사용 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최희준(28)씨는 지난해 마스크 낀 채 소개팅을 해서 지금의 여자 친구를 만났다. 최씨는 “연애 초기엔 밥 먹을 때 빼고는 마스크를 단단히 썼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너무 철저히 마스크를 쓰고 있자니 속이 좁아 보이더라. 결국 아프면 같이 아프자는 심정이 됐다”고 했다. 요즘은 단둘이 있을 땐 마스크를 벗는다.

◇'마기꾼'을 아시나요

“마스크 착용으로 눈만 보인 덕에 상대방이 호감을 보였어요. 결국 결혼까지 골인했답니다.” 마스크가 일상 훼방꾼만은 아닌 듯하다. 한 응답자(30·서울)는 ‘마스크발’로 결혼할 수 있었노라 실토했다. 경기도 사는 응답자(44)는 “화장을 마스크 위로 반만 하고 나갔다가 맛난 음료를 앞에 두고 제대로 못 먹었다”며 웃지 못할 경험담을 들려줬다.

의외의 ‘동안 효과’에 흐뭇해하는 이도 있었다. 대전 사는 남성 응답자(32)는 “마스크 덕에 편의점에서 술을 사는데 신분증을 보자더라”고 했다.

마스크 벗은 모습을 못 알아보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을 재치 있게 표현한 신조어까지 나왔다. ‘마스크’와 ‘사기꾼’을 더한 ‘마기꾼’. 마스크 벗은 모습이 상상한 얼굴과 전혀 다르다는 뜻이다. 실제로 응답자 48%가 ‘마스크 쓴 지인을 못 알아봤다’고 했다.

때론 몰라봐서 편하다. “표정을 가릴 수 있어 위기를 모면한 적 있다” “보기 싫은 이를 못 본 척 피할 수 있어 좋다”는 답변이 꽤 있었다. 조만간 ‘포커 페이스’처럼 ‘마스크 페이스’란 말이 나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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