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칭자치주, 이상향 '샹그릴라' 지명 선점해 관광객 밀물
진사강 석양, 메이리설산 일출 장관
2002년 중뎬현→샹그릴라현 개칭
지역경제 관광업 중심으로 재편
소설·영화 속 이상향, 상업화 성공
고급 호텔·리조트 브랜드도 생겨
[중국 기행 - 변방의 인문학] 윈난성 샹그릴라현
루구호에서 소환선(小環線)을 타고 라보촌까지 80㎞ 정도의 꼬불꼬불 산길을 세 시간 정도 넘어가면 호수같이 고요한 진사강을 만나게 된다. 호도협을 무너뜨릴 것처럼 포효하던 진사강을 기억한다면 이곳의 고요함은 경이롭다고 할 것이다. 진사강을 건너는 거낭두(革囊渡)대교에서 바오산향(寶山鄕)의 석두성까지는 찻길도 있고 뱃길도 있다. 차를 타면 등골 서늘한 절벽 길에서 심장이 오그라지는 경험을 할 것이다. 작은 철선을 타고 고요한 진사강 물결에 실려 가면 양안의 절경에 숨이 넘어갈 것이다. 석두성은 가파른 경사에 불쑥 솟은 거대한 암반 위의 작은 마을이다. 그 위치가 워낙 기묘한 탓에 몽골군도 공략하지 못하고 지나쳤다고 한다. 석두성 객잔에서 바라보는 진사강의 석양도 멋진 오지의 한 장면이다.
『잃어버린 지평선』서 샹그릴라 언급
그러나 나의 샹그릴라 가는 길은 샹그릴라시까지가 아니다. 북서쪽으로 170㎞ 정도 더 가야 한다. 샹그릴라 대협곡의 바라거쭝(巴拉格總)을 들렀다가 바이마설산을 지나 메이리설산(梅里雪山)과 대면해야 한다. 바라거쭝은 한국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오히려 추천할 만하다. 바이마설산(5640m)이 차창으로 스치면 곧 더친현에 이른다. 더친현 중심을 빠져나가면 메이리설산 전망 포인트에 다다른다. 메이리설산은 6740m의 주봉을 포함해 6000m급 봉우리가 13개나 늘어서 있다.
그러나 최후의 절경은 따로 있다. 바로 석양과 일출이다. 붉은 해가 설산 너머 기울어 가면서 설산 위의 넓고 높은 하늘에 시뻘건 노을이 광대하게 펼쳐지곤 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몇 차례나 뒤집힌다. 신속하고 거대한 붉은 빛의 향연은 하늘을 통째로 휘두르는 춤사위 같다.
일출도 상상을 절한다. 전망대의 등 뒤로 해가 떠올라 전망대 앞의 설산을 비추기 시작하면 메이리설산의 백옥 같던 눈과 빙하는 붉은 기운이 도는 찬란한 황금빛을 반사하기 시작한다.
샹그릴라가 허구의 지명이란 것은 누구나 안다. 그것을 향해 솔깃해지는 마음은 실제의 샹그릴라를 만들어 내곤 한다. 나만 해도 답사여행 중에 종종 듣는 노래 ‘우리들의 샹그릴라(Our Shangri-la)’가 있다. 길 위의 음악친구가 되는 에밀루 해리스가 마크 노플러와 듀엣으로 부른 버전이다. 대중화된 샹그릴라는 1933년 발표된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The Lost Horizon)』에서 비롯됐다. 샹그릴라는 윈난 리장에서 디칭 자치주로 가는 길목의 샹거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연유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작가의 창작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소설은 전쟁과 공황에 시달리던 시대의 상실감과 오리엔탈리즘을 자극했다. 1937년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더 유명해졌다.
코로나 이후 첫 여행지로 계획해볼 만
최근 십년 동안 한국인이 샹그릴라를 언급했다면 그것은 중국 윈난성의 디칭(迪慶) 티베트자치주 행정중심인 샹그릴라시(香格里拉市 2014년 시로 승격)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디칭자치주는 행정구역으로는 윈난성이지만 지리적으로는 티베트고원의 동남부 끝자락이다. 호적인구 36만9000 가운데 티베트인이 13만3000으로 32%를 차지한다. 리쑤족(11만2000), 나시족(4만7000)도 적지 않다. 한족도 4만이나 상주인구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샹그릴라 상업화의 최대 히트작은 디칭이 샹그릴라를 행정지명으로 가져온 것이다. 이것은 처음부터 관광업을 일으키기 위한 정책이었다. 윈난과 쓰촨, 티베트 등 중국의 서남부뿐 아니라 미얀마, 네팔, 부탄, 인도 등지에서도 자기네 지역이 소설 속의 샹그릴라라는 주장은 많았다. 디칭자치주는 좀 더 적극적이었다. 1997년 자치주 건립 40주년 기념식에서 세외도원 샹그릴라가 바로 디칭이라고 선언하면서 지명을 선점했다. 그 이후 구체적인 조사연구를 보완하여 중국 국무원의 비준을 받아 냈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샹그릴라가 있을 수 있다. 나는 2018년 겨울에 루구호를 거쳐 메이리설산까지 8일간의 여행을 했다. 감동의 여정이었다. 다시 2019년 겨울, 1년 전의 여정에 진사강의 소형 철선과 바라거쭝 대협곡과 란창강 코스를 추가하여 19일간의 여행을 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자신만의 샹그릴라 가는 길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없었다면 코로나19 이후의 첫 번째 여행으로 계획해보는 것은 어떠할까.
중국에 머물거나 여행한 지 13년째다. 그동안 일년의 반은 중국 어딘가를 여행했다.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경계를 걷는 삶’을 이어오고 있다. 엠넷 편성국장, 크림엔터테인먼트 사업총괄 등을 지냈다. 『중국 민가기행』 『중국식객』 『길 위에서 읽는 중국현대사 대장정』 『중국에서 만나는 한국독립운동사』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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