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북적였던 이곳에서 떠올려 보는 그때

글·사진 김종목 기자 2021. 3. 17.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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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 발전 사이,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파주·양주 장흥

[경향신문]

파주 공릉관광지 내 하니랜드는 코로나19 사태와 개학 때문에 한적했다. 오래된 유원지의 정조와 봄과 겨울의 경계 탓에 생긴 잿빛의 분위기는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사라졌다.
부자 된다는 전설이 내려온 금촌
25년 전 개발 열기에 들썩인 그곳

지난 11일 경의중앙선 금릉역에 내리니 ‘LH’가 새겨진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최근 불거진 투기 이슈 때문에 저 글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 듯했다. LH 통합 전 대한주택공사가 1996년 단독 시행자로 금촌역과 금릉역 등지의 ‘금촌1지구’ 사업을 시작했다. 이듬해 5월9일자 경향신문은 ‘개발 열기 후끈후끈 파주 인기 치솟는다’ 제목의 기사에서 금촌 일대 땅값이 5배까지 오르고, 매매 차익을 노린 외지인들이 늘어난다고 보도했다. 경의중앙선 야당역이 들어선 야당동을 두고 파주시 공무원들이 공공연하게 ‘야당 (택지개발)지구’라고 말하고 다닌다는 전언도 있다. ‘야당 지구’를 포함한 곳이 지금의 운정신도시다. 택지지구 지정과 개발 와중에 누군가는 돈을 벌고, 누군가는 쫓겨났을 것이다.

금릉역은 금촌동이다. 파주 경제와 행정 중심인 금촌은 쇠재(金陵·금릉), 새꽃(新花·신화), 새말(新村·신촌), 풀무골(冶洞·야동), 검산(檢山) 등이라 불렸다. 1905년 경의선 부설 때 일본인이 촌로의 새말(마을)을 ‘쇠말’로 알아들어 금촌(金村)으로 이름 붙였다고 한다. 금이나 쇠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다. ‘대동여지도’는 이 지역을 금성(金城)이라 표기했다. 돈 없는 사람이 금촌에 들어오면 많은 돈을 버는데, 10년 넘게 살면 망한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조선시대 금성천이라 불린 공릉천을 따라 파주삼릉으로 향했다. 자전거길에 접어드니 경의중앙선 철로를 경계로 왼쪽으론 논밭이, 오른쪽으론 신도시가 펼쳐진다. 철로가 거대한 담장 같아 보인다. 밭을 일구던 주민이 덤덤하게 말했다. “지금 (논밭 쪽) 개발 이야긴 없는데 언젠간 하겠죠. 남의 땅 빌려 농사짓는데 개발하면 이마저도 못하겠죠.”

파주삼릉은 장순왕후 한씨(공릉), 공혜왕후 한씨(순릉), 진종소황제와 효순소황후 조씨(영릉)의 능이다. 장순왕후와 공혜왕후가 한명회의 셋째, 넷째 딸이다. 각각 17세, 19세 때 죽었다. 파주란 이름은 한명회 등이 주동자로 나선 계유정난 이후 정해졌다. 세조 5년 파평 윤씨 정희왕후의 고향인 원평도호부(原平都護府)를 목(牧)으로 승격하려고 파평 윤씨의 파(坡)자를 따 파주(坡州)로 개칭했다고 한다. 파평윤씨정정공파묘역이 금릉역과 직선거리로 2.5㎞가량 떨어진 데 있다.

한국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윤석열 사퇴 이후 파평 윤씨가 회장인 회사들 주식이 가격제한폭까지 상승했다. 이른바 ‘윤석열 테마주’다. 어느 언론사는 파평 윤씨 가문 사람들을 만나 족보까지 요약해 실었다. 파평 윤씨? 윤창중도 이 문중 사람이다. 부동산과 주식 베팅에 족보의 사회학이 어딜 가든 등장한다. 땅 욕심, 돈 욕심, 권력 욕심은 언제, 어디서나 작동한다. 이 욕심들은 진영을 넘어 하나의 기득권을 형성한다.

파주삼릉 내 생강나무꽃. 산수유 꽃과 닮았다. 사진처럼 꽃이 가지에 바짝 붙었다면 생강나무다.
막힌 공릉관광지 돌아가다보면
각양각색 기념탑 추모비가 즐비

파주삼릉 매표소를 통과하니 먼저 맞는 게 망울진 산수유꽃이다. 공릉과 순릉·영릉을 가르는 실개천엔 살얼음이 남았다. 계절의 경계에서 봄기운이 겨울을 밀어내는 게 뚜렷하게 보였다. 생강나무에도 꽃이 살짝 피었다. 여러해살이풀인 생강의 냄새가 난다고 붙은 이름이다. 김유정의 <동백꽃> 중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내음새’의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이 이 나무다. 파주삼릉은 수목원 역할도 겸한 듯했다. 학명과 설명을 적은 안내판을 거의 모든 식물에 붙여뒀다. 고누와 비사(비석)치기 등을 갖춘 전통놀이 체험장도 마련했다. 앞서 투기니, 족보니 하는 것들을 보며 ‘공공의 것’을 떠올린 때문일까. 조선 왕족 무덤에 전통놀이 시설을 둔 건 공화국이라서 가능한 일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파주삼릉 주차장에 설치한 ‘파주시 종합관광 안내도’는 지역의 여러 정체성을 드러낸다. 제3땅굴, 도라전망대, 임진각 같은 한때는 반공, 지금은 평화통일을 상징하는 장소가 파주 관광지 24선에 들었다. 파주출판도시와 헤이리 예술마을, 영어마을에 파주프리미엄아울렛과 롯데아울렛을 포함한다. 시가 ‘파주의 발전’을 내세우는 곳들이다. 파주삼릉과 함께 공릉관광지도 광고판에 이름을 새긴 곳이다. 하니랜드, 공릉저수지, 공릉캠핑장으로 이뤄졌다. 파주삼릉은 공릉관광지와 붙어 있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관통 도로를 폐쇄했다.

파주 통일로변 장곡 소공원은 기념비 전시장같았다. 오른쪽이 김기팔 방송비. 고인돌은 교하면 다율리에서 옮긴 것이다.

길이 막혀 돌아가다 보면 뜻밖의 장소가 곧잘 등장한다. 통일로변 장곡공원도 그중 하나다. 월남참전 기념탑, 대한민국 무공수훈 공적비, 학도의용군 파주지대 6·25동란 참전기념비, 새마을 지도자탑 등이 공릉천과 통일로 사이 이 작은 공원 곳곳에 들어섰다. 기념비와 추모비의 전시장 같다. 통일로라는 이름에 그나마 걸맞은 게 ‘김기팔 통일염원 방송비’다. 드라마 작가 김기팔의 고향인 평양으로 가는 길이라 이곳에 세웠다.

그는 드라마 <땅> 대본도 집필했다. 토지 소유 문제와 불평등을 정면으로 다룬 문제작이다. 권력의 외압 때문에 50회 중 15회만 내보내고 도중 하차했다. <땅> 제작진은 1991년 전국언론노조의 제1회 민주언론상 본상을 받았다. 같은 해 당시 방송위원회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극단적인 이분 논리로 대립시켜 빈부 간·사회계층 간 갈등과 대립 의식을 조장한다”며 사과 명령을 내렸다. 이곳에서 토지 불평등 같은, 드라마가 고발하려 했던 현실은 바뀌지 않은 걸 새삼 느낀다.

길을 다니다보면 석재공장이 종종 눈에 띈다. 파주 장곡로 시작되는 길 해강석재 전시물이 인상적이었다. 멀리서 보면, 라이더가 반가사유상 아래에서 포즈를 취한 듯했는데, 실제 확인하니 핸들에 걸린 헬멧이었다.
돌더미 속 숨은 문인상 찾기 도로변 석재공장에서 작품을 발견하곤 한다. 사진은 파주 공릉관광지 부근 석재공장 시멘트벽에 기댄 문인석 한 쌍.

공릉관광지 가는 길인 장곡로 초입에서 본 해강석재도 뜻밖의 장소였다. 도로변 석재 공장들은 의외의 작품을 전시하곤 한다. 문인상은 공장 시멘트벽에 비스듬히 기댄 탓인지 피곤해 보였다. 반가사유상과 그 아래 오토바이 핸들에 걸친 헬멧이 키치한 미술 작품 같았다. 수m 높이의 한반도 모양 조형물이 반가사유상의 무대 배경처럼 섰다.

파주시는 ‘한반도 평화 수도’라고 선전한다. 공릉관광지 내 캠핑장 캐러밴에 이 문구가 새겨져 있다. 캠핑장 옆이 하니랜드다. 입장료 1000원을 내고 들어갔다. 주차장도, 하니랜드도 한적했다. 놀이시설과 건물은 색이 바랬다. 말라비틀어진 유성 페인트들이 묘한 균열을 냈다. 겨울 운행을 멈춘 오리보트 수십대가 눈썰매장에 도열하듯 놓였다. 저수지를 끼고 도는 산책로엔 출입을 막는 바리케이드가 쳐졌다. “스산한 기운이 매력적인 곳”이라는 지인 A씨 말이 떠올랐다.

하니랜드는 평일에다 초등학교 개학과 코로나19 때문에 한산했다.
하니랜드는 광릉저수지에서 오리 보트를 운영한다. 겨울 눈썰매장 앞 보트를 둔다. 직원은 곧 보트를 운영할 것이라고 전했다.
휑한 공간·한적한 분위기 물씬
“스산한 기운마저 매력적인 곳”

그 기운은 경계에 선 메마른 계절 탓인 듯했다. 휑한 공간에 놀이기구를 탄 아이들의 즐거운 비명과 웃음소리가 퍼지자 그 기운은 말끔히 사라졌다. 이곳을 떠날 때 장곡교 모퉁이에 들어선 ‘대형 향토관광마을 안내판’을 봤다. 이 안내판도 파주삼릉의 그것처럼 곳곳의 균열을 퍼티로 보수했다. 출판도시 등 파주 서쪽보다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듯했다.

명봉산로에 오르니 추모공원 표지가 자주 눈에 띈다. 묘지도 파주 공간을 구성하는 정체성 중 하나다. 공설, 법인, 공동, 종교 묘지 면적은 370만3761㎢다. 왕릉은 문화유적인데, 일반인 묘지는 기피시설이다. 한국 대부분의 지역이 그렇다. 표지를 보며 ‘죽음의 시설’을 멀리하면 죽음이 멀어질까라는 헛헛한 생각이 들었다.

양주 장흥 유원지로와 공릉천변에 지금도 레저 시설이 많다. 자동차의 확대, 경춘선 개통에 따른 여행객 분산 등 때문에 찾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고즈넉한 분위기는 여전히 매력적인 곳이다. 그건 이방인의 시선일 것이다. 이곳에 터전을 둔 사람들은 코로나19 때문에 힘겨워했다.

다음 목적지인 장흥을 관통하는 도로는 호국로다. 1987년 전두환이 이름 붙였다. 시민단체는 전두환 친필로 각인한 포천의 표석을 없애고, 이름도 조선시대 명칭인 ‘경흥로’로 바꾸자고 한다. 신흥유원지 삼거리에서 유원지로와 갈라진다. 신흥레저타운, 그랜드유원지, 일원유원지가 이 길 따라 있다. 파주에서 이어진 공릉천이 유원지 곁을 흐른다.

장흥은 1970~1980년대 ‘MT’ 명소였다. 자동차가 늘고, 경춘선이 개통되면서 그 명성이 시들어갔다. 한때 ‘모텔촌’이라는 오명도 얻었다. 쇠락의 기운은 유원지로에 걸쳐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그 기운은 더한 듯했다. 유원지로 가게들도, 신흥레저타운도 문을 닫았다. 사람 하나 보기 힘들었다. 유원지로와 신흥레저타운을 연결하는 녹슨 출렁다리엔 철거 폐기물 처리 업체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취재를 다녀와 전화를 해봤더니 직원 정찬형씨가 받았다. “숲 체험장 예약이 들어오면 문을 열어요. 코로나19 이전 많을 때는 하루 1000명이 찾아왔어요. 코로나19 때문에 아주 죽을 맛이에요.”

양주 장흥 유원지로 공릉천변 카페는 문을 닫았다. 돋을새김이라는 이름의 카페다.

인적 드문 곳 특유의 쓸쓸한 잿빛 정조가 유원지로 일대에 감돌았다. 신흥레저타운 입구 오른쪽 공릉천변에 오래된 목제 건물 하나가 보였다. ‘돋을새김’을 알파벳으로 팠다. 한때 카페였던 이 건물은 지금 폐허로 변했다. 공릉천 동쪽 유원지로는 광명보육원 쪽에서 끝이 난다. 보육원 쪽 길도 가려다 출입제한 표지를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전화로 통화한 직원 한 명이 “만기 퇴소한 아이들이 많다. 어린아이들만 몇몇 남았다”고 말했다. 퇴소라는 말의 무게와 고통을 잘 견디고 있을까.

신흥레저타운 곁 온릉역 철로엔 녹슨 이정표 하나만 서 있다. 화살표는 능곡, 신촌, 서울과 송추, 의정부를 각각 가리켰다. 1996년 신촌 기차역에서 교외선을 타고 송추로 갔던 기억이 났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땅을 사고팔며 부수고 짓고 하는 와중에 사라지는 것들도 떠올랐다.

녹슨 표지판은 바랜 기억을 품고 일반 철도 운행이 중단된 양주 장흥 온릉역엔 신촌과 송추를 가리키는 이정표만 서 있다.

글·사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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