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성북구 30평대 아파트도 올해 종부세 고지서 날아온다
올해 서울 공동주택(아파트·연립·다세대) 공시가격이 14년 만에 최대 폭(19.9%)으로 오르면서 강서구·성북구·동대문구 등에서도 종합부동산세를 내야 할 30평대 아파트가 대거 등장했다.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 부자'들의 세금으로 통하던 종부세가 최근 몇 년 사이 집값이 급등하면서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을 거쳐 서민·중산층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까지 확산한 것이다.
16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서울에서 종부세 부과 대상인 공시가 9억 초과(1가구 1주택 기준) 아파트는 41만2970가구로 작년(28만1033가구)보다 47% 늘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7년 1월 기준 8만8560가구이던 것이 4년 만에 4배 넘게 증가한 것이다.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있는 ‘e편한세상염창’ 전용면적 84㎡(공급면적 33평) 공시가격은 지난해 7억2800만원에서 올해 9억6900만원으로 33.1% 오르며 종부세 부과 대상이 됐다. 2019년 11월 입주한 성북구 길음동 ‘래미안길음센터피스’ 84㎡(공시가 9억8400만원) 소유자도 올해 종부세를 내야 한다.
공시가격이 9억원을 넘는다고 당장 거액의 종부세를 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라는 명분을 앞세워 공시가격을 계속 올릴 예정이어서 세금 부담이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집값 급등에 대한 불안감으로 서울 외곽 지역에 ‘영끌’로 집을 산 30대나 아파트 한 채가 전 재산이라 할 수 있는 고령자·은퇴 세대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다. 한 시중은행 부동산 전문가는 “부유층의 투기를 막기 위해 도입한 종부세가 이번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서민·중산층 가계에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서울 외곽에 30평 아파트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까지 종부세 부과 대상이 됐다는 것은 ‘부유세(富裕稅)’로서 종부세의 명분이 사라진 것”이라며 “아파트 시세가 급등한 현실에 맞게 종부세 부과 기준을 수정하거나 공시가격 인상 속도를 조절하는 등 서민 실수요자를 보호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文정부서 종부세 대상 470% 폭증… 처음내는 아파트 속출
회사원 최모(38)씨는 지난해 5월 은행 대출을 긁어모아 ‘영끌’로 서울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를 장만했다. 최씨는 16일 자신이 산 아파트 공시가격이 9억원을 넘겼다는 걸 확인하고는 실소가 나왔다. 1년 전만 해도 ‘이번 생에 내 집 마련은 글렀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는데 이제는 부자의 상징인 종합부동산세 납부자가 된 것이다. 그는 “주변에서 ‘신분 상승’이라고들 하는데 대출 원리금에 세금까지 내려면 매달 월급의 절반을 쏟아부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올해 ‘공시가격 쇼크’로 불릴 만큼 공시가격을 급격히 올리면서, 최씨와 같은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文 정부 들어 종부세 대상 급증… 서민·중산층도 불똥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래미안크레시티’ 전용면적 84㎡의 보유세는 지난해 197만원에서 올해 274만원으로 39% 늘어날 전망이다. 공시가격이 7억3400만원에서 9억4500만원으로 인상되면서 재산세도 크게 늘었지만, 작년까지 내지 않던 종부세도 20만원가량 추가로 내게 됐다. 동작구 상도동 ‘힐스테이트 상도 프레스티지’와 신길동 ‘신길 센트럴 아이파크’ 등도 84㎡가 올해 처음으로 종부세 부과 대상이 됐다.
노무현 정부가 2005년 종부세를 처음 도입할 당시 목적은 ‘투기 수요를 억제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도 같은 명분으로 종부세 강화 정책을 이어왔다. 이번 정부 4년간 집값이 급등했지만 종부세 부과는 2009년에 만든 ‘공시가 9억원’ 기준을 그대로 쓰면서 서민·중산층 실수요자까지 종부세 대상에 포함되는 실정이다.
‘종부세가 여유 자금이 부족한 서민·중산층만 잡는다’는 지적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전체 국민 중 종부세를 내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논리로 반박한다. 실제 올해 기준 전국 공동주택 중 종부세 부과 대상인 공시가격 9억원 초과 주택의 비율은 3.69%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숫자가 아닌 늘어나는 속도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국의 공시가 9억원 초과 주택 수는 2017년 1월 9만2192가구에서 올해 52만4620가구로 469% 늘었다. 같은 기간 서울은 8만8560가구에서 41만2970가구로 366% 늘었다.
종부세 대상이 늘면서 주택 소유자들의 세금 부담도 급속도로 불어날 전망이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실이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가구당 평균 보유세(85㎡ 기준)는 2020년 182만원에서 2025년 897만원으로, 2030년엔 4577만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 차원에서 시세 대비 공시가격의 비율(현실화율)을 앞으로 계속 높인다는 방침이다. 예컨대 시세 13억원짜리 A아파트의 현실화율이 올해 72.2%에서 2027년 90%가 되면, 이 기간 집값이 전혀 오르지 않아도 보유세 부담이 289만원에서 470만원으로 62.6% 늘게 된다.
◇”보유세 부담, 내수 경기에도 악영향”
공시가격이 급등하면서 서울 강남이나 한강변의 이른바 ‘똘똘한 한 채’ 아파트를 가진 실수요자들의 세금 부담도 많이 늘어날 전망이다. 광진구 광장동 ‘힐스테이트 광장’ 전용 84㎡는 공시가격이 지난해 11억4300만원에서 올해 13억6900만원으로 20% 올랐지만, 보유세는 417만8304원에서 597만7236원으로 43% 늘어난다. 재산세는 공시가 인상률과 비슷한 24% 늘었는데, 종부세가 지난해 68만2000원에서 164만원으로 2배 넘게 증가했다. 공시가 6억원 초과 주택에 대해 같은 세율이 적용되는 재산세와 달리, 종부세는 공시가가 높을수록 적용되는 세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비싼 집을 가진 사람일수록 세 부담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구조다.
정수연 제주대 교수는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다른 나라에선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정책을 내놓는데 우리는 오히려 집 한 채 가진 사람들에게까지 증세 정책을 펴고 있다”며 “보유세 인상은 가계 소득 감소, 내수 경기 침체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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