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연구자·화가·여행작가… ’80대 청춘’ 조동일

군포/유석재 기자 2021. 3. 16.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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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계 대표 원로의 ‘1인 4역’

3년 전 경기 군포 조동일(82) 서울대 명예교수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고교 시절 중단했다가 고희 무렵부터 다시 시작한 회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나 집안 분위기는 어딘가 우울했다. 상처(喪妻)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혼자 살던 때였다.

최근 방문한 그의 집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인테리어가 싹 바뀌었을 뿐 아니라 집주인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신간 ‘우리 옛글의 놀라움’(지식산업사)에 대해 물어보자 목소리가 더 밝아졌다. “요즘 책을 너무 많이 내는 것 같아 속도 조절을 하기로 했습니다. 1년에 한 권씩만 아흔 살 때까지 쓰려고요. 이미 내년에 출간할 ‘국문학의 자각 확대’ 원고는 출판사에 보내 놨죠, 하하.”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가 경기 군포 자택 거실에서 유튜브 채널‘조동일 문화대학’에 올릴 동영상 강의를 촬영하고 있다. 그는“학문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파하려고 유튜브에 직접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국문학계의 대표적 원로이자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인 그는 “내 창조력은 일생 동안 지금이 가장 왕성한 시기”라고 했다. 유튜버로 변신해 ‘조동일 문화대학’ 채널에서 2~3일에 한 번씩 강의 동영상을 올리고, 노거수(老巨樹) 개인전과 초대전까지 열었던 구아슈(불투명 수채 물감) 그림 작업도 계속하고 있다. 남프랑스 기행을 유튜브에 올리고 ‘충남 문화 찾아가기’ 책을 내는 등 여행작가로도 활동한다. 그러면서 본업인 국문학 연구의 길 역시 꾸준히 걷고 있다. “현직 교수로 있을 때는 이럴 틈이 없었는데…. 정년이 되니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주어지더라고요.”

새 저서 ‘우리 옛글의 놀라움’은 한문 공부에 도움이 될 짧고 깊은 옛글을 모아 친절하게 해설한 책이다. “한문을 사서삼경부터 시작하는 건 등산 초보자가 에베레스트에 올라가는 거나 마찬가지죠. 여기 이덕무가 쓴 글을 좀 보세요.” ‘쇠똥구리는 쇠똥 뭉치를 자기 나름대로 사랑하고, 검은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문장에서 조 교수는 ‘어떤 고난이든 묵묵히 견디면서 끈덕지게 살아가는 인생’이란 의미를 적극적으로 읽어낸다.

‘80대 청춘’의 원천은 2년 전의 재혼이었다. 평소 가까이서 조 교수가 오랜 병간호로 심신이 지쳐 있는 걸 봐 왔던 18세 연하의 제자 이은숙씨였다. ‘누가 먼저 프러포즈를 했느냐’는 질문에 조 교수의 얼굴이 돌연 10대 소년처럼 붉어졌다. “인생을 한번 새로 시작해보자는 결심 끝에 청혼했더니 아내가 선뜻 응낙했어요.”

유튜브를 해 보라고 권유하고 동영상 제작을 도와준 사람도 아내였다. “많은 사람들이 책은 읽지도 않으면서 유튜브는 보더라고요. 하지만 그 수준을 보니 무식의 하향 평준화가 일어나는 것 같았죠. 학문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파하려고 직접 뛰어들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창조 주체로서의 권리가 있다’는 ‘창조주권론’과 문학사, 이슬람 문명 강의 등 지금까지 200건 가까이 동영상을 올렸다. “댓글 반응이 정말 즉각적이어서 놀랐습니다. 10분 이내 짧은 호흡에 밀도 있게 말을 해야겠다는 노하우도 생겼죠.”

조 교수는 요즘 아침 6시에 일어나자마자 아령체조를 하고, 연구·집필과 유튜브 녹화 등 ‘업무’에 몰두한다. 오후엔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한 뒤 다시 업무에 집중한다. 시간이 나는 대로 캔버스 앞에서 그림 작업도 한다. TV는 9시 뉴스 앞부분 10분만 시청한 뒤 10시에 잠드는 규칙적인 생활이다. 종종 부지런히 전국 구석구석 여행도 다닌다. 그는 “도로 젊어져 다시 한번 인생을 사는 기분”이라며 “활력이 남아있는 한 나는 여전히 청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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