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권 줄곧 투기 조장, 신도시 없어도 집값 잡을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부동산 투기를 조장했어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 사건을 대충 조사하는 걸 보면서 국민들은 이 정부가 얼마나 가식적이고 무능한지 알았을 겁니다. 이 정권은 ‘불로소득 주도 성장’을 한 가짜 진보 정권입니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실에서 만난 김헌동(66)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운동본부장은 보수 야당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청와대와 정부가 ‘청와대·국토부는 0명, LH 직원만 20명’이라는 신도시 투기 의혹 셀프 조사 결과를 내놓은 다음 날이었다. 참여연대와 함께 진보 정권의 ‘우군(友軍)’으로 불렸던 경실련에서만 25년째 활동 중이지만, 이제 그의 이름 석 자는 ‘문재인 정권 저격수’와 같은 의미로 통한다. 그는 현 정부의 잇단 부동산 실책으로 집값이 폭등하자 2019년 말부터 매서운 비판을 해왔다. 김 본부장은 문 대통령에 대해 “발본색원이란 말을 할 자격도 없다”며 “땅 투기를 조장한 3기 신도시 건설을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LH 직원 7명만 추가된 조사 결과를 내놨다.
“예상대로다. 시간만 허송했다. 수사권도 없는 공무원을 투입해 시민단체가 했던 토지 거래 내역과 직원 명단 대조 작업만 한 것이다. 정말 투기를 뿌리째 뽑아낼 생각이라면 3년이든 5년이든 거래된 토지 전체를 대상으로 구입한 사람의 직업이 뭔지, 자금은 어디서 나왔는지, 관련된 공직자나 친인척은 없는지 즉각 수사를 지시했을 것이다.”
-대통령은 수차례 ‘발본색원’을 강조하며 “투기 반드시 잡으라”고 했는데.
“나는 ‘문 대통령이 저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생각부터 한다. 불필요한 3기 신도시를 건설하게 하고, 공기업 직원까지 땅 투기를 하라고 유인한 사람이 문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이번 투기 의혹 사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부터 해야 한다.”
경실련은 2017년 5월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작년 말까지 서울 아파트값이 78% 올랐다고 했다. 25번이나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문 대통령 재임 44개월 중 40개월 동안 집값이 올랐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땅 투기를 유인했다니?
“대통령과 정부의 고위 관료들이 무능하니 이번 정부 들어 부동산 투기가 만연했고, 공기업 직원까지 ‘돈 벌 기회가 생겼네’ 하면서 투기에 뛰어든 것이다. 정부는 지난 2월 2·4 대책에서 공기업 주도로 구도심을 재건축·재개발해 아파트를 짓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정책을 실행할 LH 직원들은 부동산 투기와 부패 행위를 하고 있었다. 이 정부는 ‘부동산 투기와 전쟁을 하겠다’ ‘부동산 산 사람은 후회하게 만들겠다’ 등 말로만 떠든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얕잡아 보는 게 몸에 뱄다.”
김 본부장은 “애초 LH에 과도한 특권을 준 게 잘못”이라고 말했다. “주인의 땅을 강제로 사들이는 토지수용권, 신도시 등 택지 개발을 좌지우지하는 독점개발권, 논밭이나 그린벨트 등 땅의 용도를 바꿀 수 있는 용도변경권 등 3대 특권을 모두 가진 조직은 세계 어디에도 없어요. 이런 엄청난 권한을 준 것은 집 없는 서민을 위해 싸고 좋은 집을 지어서 집값을 안정시키라는 취지였어요.”
그는 이 대목에서 비판의 화살을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돌렸다. “노 대통령이 2004년 ‘공기업도 장사다. 장사는 10배를 남길 수도 있다’며 공약이던 공공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를 번복했습니다. 그때부터 LH가 집값 바가지를 씌우고, 3대 특권을 이용해 자기들 배만 불리고 있어요.” 경실련이 “부동산 투기와 집값 폭등의 광풍이 우리 사회의 근저를 뒤흔들고 있다”며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를 출범한 것도 노무현 정권 때인 2006년 11월이었다.
-LH 투기는 잘못된 것이지만 3기 신도시를 전면 취소하면 서민의 내 집 마련은 더 어려워지지 않나?
“3기 신도시 지정을 취소한다고 해도 투기꾼들 손해 보는 일밖에 없다. 수도권에 신도시를 새로 안 지어도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 대규모 신도시 건설로는 집값을 못 잡고, 투기만 성행하는 부작용이 더 크다는 것이다.
-신도시 건설보다 나은 공급 대책이 있나?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2기 신도시인 판교 신도시 건설을 발표했고, 그래도 안 되니까 송파에 위례신도시까지 지었다. 지금 강남 집값이 어떻게 됐느냐. 문 대통령도 서울 아파트값이 오르니까 3기 신도시를 꺼내 들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신도시 하나도 안 만들고도 집값이 오히려 내렸다.”
김 본부장은 느닷없이 스케치북 크기의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면서 “이 아파트를 아느냐?”고 물었다. 서울 강남구 자곡동에 있는 ‘LH강남힐스테이트’ 사진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보금자리주택 사업으로 공급한 아파트 아닌가?
“이런 아파트 지으라고 LH가 존재하는 것이다. 토목·건설에 대해 잘 아는 이명박 대통령은 LH를 시켜서 2011년 서울 강남에서 30평 아파트를 3억원대에 분양했다. 땅은 빼고 아파트 건물만 무주택 실수요자들에게 공급했다. 아파트 건축비가 1평에 550만~600만원쯤 한다. 30평 아파트를 1억8000만원이면 지으니 LH가 3억원에 팔아도 남는 장사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는 주택 시장이 크게 침체했는데.
“2011년 서울 강남에 반값 아파트가 공급되니 수도권 주택 시장이 난리가 났다. 노무현 정부 때 수도권에 아파트를 분양받은 수십만 명이 손해를 봤다. 경기도 용인에 5억~6억원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입주 때 집값이 3억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 2007년 14억원까지 올랐던 것이 2014년엔 8억원으로 내렸다. 이명박 정부는 미분양 아파트를 저렴하게 사들여 신도시 안 짓고도 수도권에 수십만 가구를 공급했다.”
김 본부장은 작년 11월 ‘부동산 대폭로: 누가 집값을 끌어올렸나’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문재인 정부 시작과 함께 ‘투기의 꽃길’이 열렸다”며 “아파트값이 폭등하고 부동산 투기가 만연하는 상황을 멈춰 세워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부동산건설개혁운동본부 본부장을 맡았다”고 썼다.
-책에서 “문재인 정부는 의도적으로 집값 상승을 유도하는 정책을 썼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노무현 정부에서 집값 잡기에 실패한 김수현 사회수석에게 부동산 정책을 맡기고, 아무 경험도 없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을 임명했다. 김수현·김현미의 첫 작품이 정부가 임대 주택을 많이 공급할 수 없다며 민간 임대 사업자에게 엄청난 세금과 대출 특혜를 준 것이다. 이들이 집을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시장에 ‘가짜 수요’가 생겼고, 집값이 엄청나게 뛰었다.”
-정부가 작년 7월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상한제 도입을 담은 주택임대차법 개정으로 전세난까지 심각해졌다.
“어느 동네 전·월세 가격이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상한제만 도입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임대차 3법을 도입하려면 전·월세 신고제부터 도입해야 하는데 순서가 완전히 잘못됐다. (신고제 도입으로) 임대차 시장 현황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데 아직도 안 됐다. 50만원 월세에 허덕이는 사람도 지원 못 하면서 20억원짜리 전셋집에 사는 사람을 보호하는 꼴이다.”
-’주택 정책만 보면 이명박 60점, 노무현 20점'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몇 점인가?
“0점, 아니 마이너스 점수를 주고 싶다. 단군 이래 5000년 동안 이렇게 집값이 오르고, 양극화와 빈부 격차가 심화한 때가 없었다. 이번 정부 들어 주변에 집 사서 돈 벌었다는 수백만 명이고, 집을 못 사서 속상한 사람은 그보다 더 많다. 집값 때문에 가정과 직장에서 불화가 생기고, 젊은이들은 상실감에 시달린다. 열심히 일하는 게 아무 의미가 없는 나라가 돼버렸다. 나는 문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우리 사회의 엄청난 부동산 거품을 정권 유지를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한다고 생각한다. ‘소득 주도 성장’ 외치면서 부동산 투기로 ‘불로 소득 주도 성장’을 한 가짜 진보 정권이다.”
-이 정부가 남은 1년 동안 부동산 시장 안정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강남구 서울의료원 부지와 구룡마을, 은평구 불광동 혁신파크, 용산구 철도정비창, 노원구 태릉골프장 등 정부가 소유한 땅이 많다. 위례신도시, 마곡·강일·항동지구에도 집 지을 부지가 충분하다. 이 땅을 계속 정부·지자체가 소유하면서 25평은 2억원, 30평은 2억5000만원짜리 아파트를 지어 무주택 실수요자들에게 건물만 분양하는 것이다. 서울 25구에서 매달 500가구, 1000가구씩 이런 아파트가 공급되면 겁나서 10억원, 20억원짜리 기존 아파트 못 산다. 이런 식으로 서울 집값이 먼저 내리면, 수도권도 안정되고, 전셋값도 당연히 내릴 수밖에 없다.”
김 본부장은 “이번 LH 투기 의혹 사건은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나 부정 사건 등 여러 방향으로 확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잘만 하면 부동산 투기의 뿌리를 뽑고 부동산에 대해 인식을 고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눈앞에 닥친 선거를 유리하게 만들 정치적 계산밖에 없는 것 같아요. 여당이 서울·부산시장 참패하고, 내년 대선도 위험하다고 느낄 정도로 민심이 바뀔 것입니다.”
☞김헌동은 누구
국내 대형 건설사에서 20년을 근무하다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경실련의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을 이끌었고 2019년부터 부동산건설개혁운동본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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