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를 보는데 왜 슬퍼지는가, 좋소기업은 현실이다 [왓칭]

손호영 기자 2021. 3. 1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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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 독점작 '좋소 좋소 좋소기업'
중소기업 경력 10년차 유튜버의 웹드라마
청년들이 왜 '좋소기업' 꺼리는지 궁금하다면

올해 상반기에도 청년들의 대기업 취업길은 녹록지 않을 것 같다. 코로나발 경기 불황으로 기업들이 새 사람 뽑을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10곳 중 6곳(63.6%)은 신입사원 채용 계획이 없거나 아직 계획을 못 세웠다. 아예 신입을 채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기업은 10곳 중 2곳 수준(17.3%)으로, 지난해보다 두 배 늘었다.

못 뽑겠다는데 언제까지 오매불망 대기업 대문만 바라볼 건가. 눈을 살짝 낮추면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이 많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 청년이 중소기업 취업을 꺼린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해 보니 절반 넘는 취준생(51.4%)이 대기업에 가고 싶어 하는 데 비해 중소기업 가고 싶다는 취준생은 10명 중 3명(33.7%)에 그쳤다. 두 배 이상 차이 나는 임금 때문일까. 지난 2월 통계청 발표를 보면 2019년 중소기업 임금 근로자 월 평균 세전 소득은 평균 245만원으로, 대기업(515만원)의 절반 수준이었다.

./왓챠

그러나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꺼리는 게 꼭 월급 때문만은 아니다. 진짜 이유를 말해주려고 중소기업만 10년 넘게 다닌 한 유튜버가 웹드라마를 만들었다. 최근 OTT 사이트 ‘왓챠’에도 공개된 웹드라마 ‘좋좋소(좋소 좋소 좋소기업)’다. 이젠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단어 ‘X소기업’을 점잖게 ‘좋소기업’이라 적었다.

[기사보기] 대기업 64% “채용 없거나 못 정했다”

◇이래도 “청년들 눈이 높아서”라고?

“테크, 텍, 산업, eng, 기술, 개발, 파워, 금속, 공업, 기계, 물류, 정밀, 정공, 스틸, 실업, 시스템!” 유튜버 ‘이과장’이 이런 이름이 붙은 중소기업만 10년 넘게 다니며 보고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드라마 ‘미생’이 취업 준비생들의 판타지라면, 이 드라마는 다큐다. 가벼운 코미디 웹 드라마이기도, 중소기업 현실을 고발한 리얼리티 드라마이기도 하다.

29세 백수 조충범이 직원 5명의 소규모 무역회사 ‘정승 네트워크’에 입사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1700만 중소기업 종사자들의 마음을 울리면서 유튜브 회당 조회 수가 100만회씩을 가볍게 넘었다. “드라마를 보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올 것 같다” “우리 회사에 CCTV를 설치한 것 같다”는 댓글이 넘친다. 드라마를 통해 본 ‘좋소기업’의 특징들을 간단히 추렸다.

조충범의 정승네트워크 면접날. 노래를 부르고 곧바로 합격한다./왓챠

1)”혹시 지금 바로 면접 가능하실까요?”

다른 기업 면접을 마치고 돌아오는 조충범에게 갑작스럽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정승네트워크인데요, 혹시 지금 바로 면접 가능하실까요?” “지금요?” 여기서부터 ‘좋소기업’의 시작이다. 그래도 일단 급히 회사를 찾은 조충범 씨. 도착하니 전화 건 사람 빼고는 아무도 면접인 걸 모른다. 느지막이 들어온 사장도 모른다. 직원들 일하는 곳에서 면접을 보고, 면접자 앞에서 이력서를 처음 보는 것도 중소기업 ‘국룰’이다.

2)”나 삼전 출신인데?” 면접에서 자기 자랑, 전 회사 자랑, 자식 자랑.

“아르바이트로 사회 경험이 아주 풍부하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지원자의 자기 소개에 사장은 말한다. “다양한 경험이라는 게··· 나보다 많이 해봤을까요?” 이때부터 사장의 자기 자랑이 시작된다. “내가 원래 그 ‘삼전'에 있었는데, 빛나는 감투를 벗어던지고 맨 땅에 이 회사를 설립한 거야” 면접 자리에서 18년 전 다니던 회사 자랑부터 자식 자랑까지 늘어놓는다. 사장 맘에 들면 그 자리에서 OK를 주는 ‘산지 직송 합격 통보’는 완벽한 현실 고증이다.

조충범이 첫 출근날 받은 근로계약서. 이면지에 작성했다./왓챠

3)”계약서? 뭐 그런 거는 믿음으로 가는 거지” 심기가 불편한 사장님.

회사에 첫 출근했지만 아무도 근로 계약서 쓰잔 말을 안 한다. 사장에게 물으니 도리어 짜증을 낸다. “아이 그런 건 믿음으로 가는 거지. 에이, 정 이사가 대충 써줘”. 채용 공고엔 분명 ’2500만원'이었는데, 신입을 앞에 두고 이런 대화가 오간다. “이 신입 분 연봉 얼마나 줘야 돼요?” “2300만원으로 하시죠” “구직공고에 2500만원이라 돼 있었는데요” “그러면 인턴 3개월은 2300만원 하시고. 그 이후에 사장님이랑 얘기하시죠.”

이런 기업들엔 취업한다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고, 골병 들어가며 버티는 것도 능사가 아니란 게 요즘 젊은 사람들 인식이다.

◇백수 조충범이 ‘강소’ 아닌 ‘좋소’ 취업한 이유

29세 백수 조충범이 입사한 '정승 네트워크'./왓챠

“제가 살면서 가장 보람찼던 일은 군대에 있었을 때인데요, 제가 분대장을 달았는데 모범 분대가 됐습니다. 모범 분대가 됐고, 중대장님이 절 칭찬해줬습니다. 제가 골프장 아르바이트도 했는데 각계 각층 사람들을 만났고, 좋았습니다”

중소기업이라고 모두 ‘X소기업'은 아니다. 규모는 작지만 소리 없이 강한 ‘강소기업’이 많다. 그러나 신입 취업 나이를 훌쩍 뛰어넘은 29세 백수, 수도권 대학 영어과 졸업에 토익은 500점, 유일한 경력은 골프장 아르바이트인 조충범이 건실하고 탄탄한 ‘강소기업’에 입사하는 건 요원한 일이다.

드라마는 중소기업 대표의 현실만 풍자하는 건 아니다. 사장 말에 무조건 고개만 끄덕이는 과장, 사장 조카인 ‘백두혈통’ 이사, 업무 시간에 인터넷 쇼핑만 하는 대리, 들어온 지 일주일도 안 돼 ‘추노(언질 없이 무단 퇴사하는 행위)’ 하고, 월급 날 슬며시 나타나는 조충범의 모습까지가 현실이다. 월급 주기 싫은 사장님 마음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조충범이 만든 국가사업 지원 PPT. 매출보다는 각종 정부지원금과 고용 장려금으로 월급을 충당하는 중소기업의 현실이다./왓챠

사회 초년생의 애환을 담은 드라마 ‘미생’에선 PPT를 완성한 명문대 출신 신입사원이 이렇게 말한다. “버전 호환이 안 될까 봐 ‘ppt’와 ‘pptx’ 두 개로 저장했고요, 출력하시기 편하게 PDF 파일도 넣어놨습니다”. 정승네트워크 대리는 이런 수준이다. “국가사업 백날 들이박아야 안될 거 뻔히 아니까, 사장님 입맛에만 맞추면 되거든요? 대충 그럴싸하게 하면 돼요.” 드라마는 정품 인증을 못 받아 빨간 경고줄이 뜨는 MS 오피스의 디테일까지 구현했다.

◇이건 드라마인가 다큐인가... ‘리얼리티’의 승리

‘9983시대’란 말이 있다. 2018년 기준 대한민국 전체 기업 중 중소기업이 99.9%, 전체 기업 종사자 중 중소기업 종사자가 83.1%란 말이다. 대기업은 0.1%에 불과하고, 대기업 종사자 수는 전체의 16.9%다. 그런데 왜 지금껏 오피스 드라마는 정장이나 오피스룩을 빼 입고 광화문과 강남을 누비는 대기업 사원들 이야기만 다뤄왔던 걸까. 사실 직장 생활 현실은 미생이 아니라 좋좋소인데. 이 유튜버가 1700만 중소기업 종사자들의 가려운 곳을 확실하게 긁었다.

사장은 고기값만 결제하고 술값 1만 4000원은 각자 나눠 내자고 말한다./왓챠

중소기업에 다녀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디테일을 정확히 집어냈다. 조충범이 첫 출근에서 가장 먼저 배운 건 빗자루질. 화장실은 남녀 공용이다. 두둑한 상여금 같은 건 없다. 회사 복지를 묻자 이런 답이 온다. “냉장고 있음. 전자레인지 있음. 싱크대에 온수 나오고, 컵라면은 한 개, 믹스커피는 두 개씩 먹을 수 있음.” 업무 컴퓨터가 없어 집에 있는 노트북을 들고 와야 한다. 회식은 ‘n빵’이다. 비용을 갹출해 회식비 대는 건 좋소기업 재직자들에겐 익숙한 풍경이다.

회당 10분 내외의 웹드라마지만 퀄리티는 웬만한 TV 시트콤 뺨친다. 이 유튜버는 ‘피해야 할 중소기업 유형' ‘X소기업이 갈구하는 인재상’ ‘천하제일 X소까기 대회’ 등 중소기업 현실을 주로 다뤄왔다. ‘좋좋소’의 성공을 보면, 결국 이 시대에 살아남는 건 ‘리얼리티’다. 왓챠가 발 빠르게 콘텐츠를 들여왔다. 참고로 ‘왓챠’도 중소기업이다. 왓챠에 유튜브보다 하루 먼저 1~2분이 추가된 확장판이 공개된다.

개요 웹드라마 l 한국 l 회당 7~12분

등급 전체관람가

특징 다큐멘터리 수준의 현실 풍자 블랙코미디

조회수 103~168만(3월 11일 기준)

유튜브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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