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김순옥·임성한.. 막장 드라마의 세계

안진용 기자 2021. 3. 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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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수출된 TV조선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왼쪽 사진)과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구가하는 SBS ‘펜트하우스’(오른쪽)는 소위 ‘막장’이라 불리는 작품들을 하나의 장르로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내의 유혹’의 민소희(장서희 분·위 사진)와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이유리 분·아래)은 희대의 악녀로 손꼽힌다.

■ 막장 드라마의 세계

김순옥·임성한 등 작가별 장르화…‘something new’ 있어야 관심

김치 싸대기·레이저 눈, 패러디 낳아… 악역 맡은 배우들 스타덤에

‘펜트하우스’ 시청률 30% 육박

‘결혼작사…’ 넷플릭스서도 먹혀

방송사, 수익 위해 작가 모시기

불륜·살인 자극적 소재 쓰지만

아침·일일극은 화제성 떨어져

치밀한 묘사·전개 등 흥행요소

서영명 작가서 ‘막장극 시작’

임성한, 대사에 격언·속담 써

문영남, 극중이름으로 세태풍자

김순옥, 권선징악에 해피엔딩

시청률 기근 현상이 만연한 방송가에서 소위 ‘막장’이라 불리는 SBS ‘펜트하우스’가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거두고 있다. “보기 불편하다”는 반응과 별개로 “막장도 하나의 장르”라는 시청자 의견이 만만치 않은 막장 드라마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1. 막장 드라마란

‘막장 드라마’라는 표현은 2000년대 중반 처음 등장했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 기준으로 ‘막장 드라마’라는 키워드가 포함된 기사는 2007년 6월 처음 검색된다. 그전까지는 표현 수위가 높은 작품 정도로 불렸다. ‘막장’이란 ‘마지막 장’을 뜻하며 어떤 상황에서 극단에 몰려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황을 뜻한다. 통상 ‘인생 막장이다’와 같은 식으로 쓰인다. 결국 막장 드라마란 일반적인 상식이나 도덕 기준으로는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자극적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이야기의 흐름이 개연성 없이 전개될 때도 막장으로 분류된다.

2. 언제 시작됐나

불륜, 패륜, 살인, 폭력 등의 요소가 포함됐다고 모두 막장 드라마로 볼 순 없다. 이 같은 논리라면 ‘별들의 고향’을 비롯해 호스티스들을 대거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던 1970∼1980년대 작품들도 모두 막장 코드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결국 요즘 쓰이는 막장 드라마의 계보는 작품별 분류보다는 자극적인 소재와 파격적 전개로 비슷한 질감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을 기준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를 기준으로 삼을 때 막장 드라마의 시작은 서영명 작가로 볼 수 있다. 1993년 작인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는 재혼한 아내가 본처의 이복자매라는 설정으로 가족 관계를 실타래처럼 엮었고, 임성한 작가가 1998년 발표한 ‘보고 또 보고’는 겹사돈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앞세워 눈길을 끌었다. 이후 문영남 작가는 ‘조강지처클럽’을 기점으로 막장 수위를 크게 높였고, 2008년 ‘아내의 유혹’과 함께 등장한 김순옥 작가가 그 배턴을 이어받았다.

3. 욕하면서 본다…왜 시청률 높나?

막장 드라마를 두고 시청자들은 “욕하면서 본다”는 반응을 내놓곤 한다. 자극적인 소재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본방송이 시작할 때가 되면 나도 모르게 TV 앞에 앉게 된다는 의미다.

길게 돌려 말한 것일 뿐, 결국 “재미있으니까 본다”는 의미다. 따지고 보면, 비슷한 이야기를 제목과 배우만 돌려가면서 반복한다는 아침드라마나 일일드라마에도 막장 요소가 넘친다. 하지만 화제성은 떨어지고 이를 비판하는 기사도 많지 않다. 결국 같은 막장극이라도 시청자와 언론의 관심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섬싱 뉴’(something new)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관심은 시청률로 이어진다. 청부살인, 납치와 감금, 학교폭력 등이 난무해 역대 가장 폭력적인 안방 드라마로 손꼽히는 SBS ‘펜트하우스1’의 최종 시청률은 28.8%였다. 현재 방송 중인 시즌2의 시청률도 26.9%까지 치솟았다.

임 작가의 신작인 종합편성채널 TV조선의 ‘결혼작사 이혼작곡’(결사곡) 역시 역대 TV조선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데 이어 10% 고지도 밟았다. 6년 만에 복귀하며 불륜이라는 소재 외에는 기존 막장극 요소를 빼고 보다 단단한 서사를 갖춘 미니시리즈로 변화를 줬음에도 임 작가의 파워는 여전했다. 결국 소재와 표현 수위 면에서 시청자들이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다른 드라마보다 재미있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다.

4. 막장 드라마는 배우 사관학교다?

인기 드라마는 스타를 배출한다. 막장 드라마의 주역들 역시 높은 시청률을 일구며 스타덤에 오르곤 한다.

특히 악녀들의 강렬한 연기가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받았다. 장서희가 대표적이다. ‘인어 아가씨’에서 주인공 아리영 역을 맡아 전성기를 맞은 그는 ‘아내의 유혹’에서는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다른 인물로 변신하는 민소희 역을 맡아 중국어권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렸다. ‘왔다 장보리’에서는 연민정 역을 맡은 이유리의 악녀 연기가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제목에 빗대 ‘장보리로 왔다’가 ‘연민정으로 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당시 연민정의 악행이 화제를 모으자 법무부가 공식 블로그를 통해 ‘왔다 장보리 속 연민정의 범죄는?’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신인 남녀 배우를 파격 섭외하기로 유명한 임 작가는 그동안 성훈·임수향(신기생뎐), 이태곤·윤정희(하늘이시여), 박하나·강은탁(압구정 백야) 등을 섭외해 불패 신화를 썼고 이들은 단박에 주연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5. 막장 드라마의 공식

막장 드라마에도 나름의 공식이 있다. 불륜으로 인한 가정파괴 혹은 뜻하는 바를 얻기 위한 불법 행위와 이를 은폐하기 위한 음모 그리고 이를 바로잡고 응징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처절한 복수가 가장 큰 얼개다. 그 과정에는 기억상실, 재벌, 출생의 비밀, 지질한 남편, 의외의 조력자 등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김 작가는 ‘아내의 유혹’부터 ‘펜트하우스’에 이르기까지 불륜 코드를 빼먹지 않고 넣는다. 불륜을 저질러도 뻔뻔하다는 것이 등장인물들의 특징이다. 문 작가의 ‘왕가네 식구들’(2014)에서는 백수 생활을 하다가 돈 많은 여자와 만나 바람을 피우며 목에 힘을 주는 남자가 시청자들을 뒷목 잡게 만들었다. 현재 방송 중인 임 작가의 ‘결사곡’에서는 등장하는 남편 셋이 모두 각각 바람을 피운다.

출생의 비밀도 없으면 섭섭하다. ‘하늘이시여’(2005)에는 친딸의 정체를 숨기고 자신의 양아들과 결혼시키는 어머니가 등장하고, ‘펜트하우스’에서도 여주인공 심수련(이지아)이 지금껏 키워온 딸이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에 충격받고 복수를 결심했다.

6. 막장 바라보는 시선을 바꾼 ‘밈’

지난해 가수 겸 배우 비는 2017년 발표한 ‘깡’이 유튜브를 기반으로 뒤늦게 인기를 얻었다. 숱한 패러디가 쏟아지며 ‘밈’(온라인상에서 유통되는 재미있는 콘텐츠)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이는 독특하고 인상적인 장면을 배출한 막장 드라마에도 적용된다.

MBC ‘모두다김치’(2014)에는 장모가 김치로 사위의 따귀를 때리는 장면이 삽입됐고, 이 장면에는 ‘김치 싸대기’라는 별명이 붙었다. 또한 MBC ‘사랑했나봐’(2012)에서는 대화를 나누던 중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남성이 마시던 오렌지 주스를 주르륵 뱉어내는 영상이 주목받으며 지금까지 밈 현상의 소재가 되고 있다. 임 작가의 ‘신기생뎐’ 속 등장인물의 눈에서 레이저빔이 발사되는 장면도 회자되고 있다.

이런 장면들은 방송 당시에는 ‘막장’이라 불리며 질타받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B급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재평가받는 분위기다. 진지한 기준을 들이대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흥미로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7. 막장 수위, 해외 드라마는 더심하다?

막장 논란에 대해 적잖은 작가와 제작사들이 “이중 잣대”라며 섭섭함을 토로한다. 해외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표현 수위가 훨씬 더 높기 때문이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랭킹 사이트 ‘플릭스패트롤’(FlixPatrol)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와 한국에서 가장 많이 본 넷플릭스 콘텐츠는 ‘365일’이다. 평범한 여성이 자신을 납치한 마피아 보스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 작품은 선정성이 강하고 개연성은 약한 전형적인 막장극으로, 평단의 평가는 형편없었지만 전 세계 관객은 열광했다.

한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는 “국내 TV드라마는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기 때문에 표현 수위를 더 신경 써야 하지만 외국 작품에 비해 지나치게 도덕률을 강조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호소했다.

8. 넷플릭스 진출, 막장 드라마의 진화?

‘결사곡’과 ‘펜트하우스’의 성공을 기점으로 “막장극이 진화하고 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결사곡’은 넷플릭스에서 동시 방송되고 있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지난 2월 둘째 주, 영화 ‘승리호’까지 제치고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콘텐츠 1위에 올랐다. 중장년 시청자층이 많은 TV조선에 편성돼 시청률이 잘 나오고, 젊은층의 사용 빈도가 높은 넷플릭스에선 고전할 것이란 분석을 보기 좋게 깨버린 셈이다. 제작사 지담의 안형조 대표는 “이 드라마는 여러 작품에서 흔히 쓰이는 불륜을 소재로 사용했을 뿐, 개연성 없는 막장극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치밀하게 인물 감정을 묘사하며 기존의 흥미 위주 작품과는 다른 결을 갖고 있다”며 “결국 임성한이라는 거장에 대한 믿음으로 넷플릭스에 수출될 수 있었고, 흥행 1위라는 성적표를 통해 그 힘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펜트하우스’ 역시 대다수 드라마가 시청률 5% 문턱을 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30% 고지를 향해 가며 탄탄한 팬층을 확보했다. 또 다른 드라마 관계자는 “재미없고 유익한 드라마, 그리고 재미있고 자극적인 드라마 중 시청자들은 과연 무엇을 선택할까?”라고 되물었다.

9. 징계 또 징계…방송사는 왜 편성?

10대 미성년자들의 폭행·납치·감금 등을 묘사한 ‘펜트하우스’ 시즌1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정제재인 ‘주의’ 조치를 받았다. 이는 방송사의 재승인 과정에서 감점 요인이 되기 때문에 방송사 입장에서도 큰 부담이다. 하지만 각 방송사는 이런 작가들을 ‘모셔 가려’ 애쓴다. 왜일까?

결국 시청률 지상주의가 낳은 산물이라 볼 수 있다. 방송사 간 경쟁뿐만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까지 득세하면서 방송사들이 설 자리는 더 좁아졌다. 그럴수록 광고 수주의 바로미터인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경쟁 역시 치열해진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광고 수익과 직결되는 높은 시청률을 보장해주는 작가들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10.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이름값

대한민국은 매주 20여 편의 드라마가 방송되는 ‘드라마 공화국’이다. 이 중 대중에게 회자되는 작품은 서너 편 정도. 각 방송사는 이 안에 포함되기 위해 유명 작가들에게 러브콜을 보낸다.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듯, 작가의 역량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막장 코드를 가진 드라마는 많다. 하지만 표현 수위가 세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임성한, 문영남, 김순옥 작가가 불패 신화를 써온 것은 각자 일련의 작품관을 구축시키는 단단한 필력과 고유색을 갖췄기 때문이다.

임 작가는 가족을 토대로 하되,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격언과 속담을 적절히 섞어 곱씹어 볼 만한 대사를 던진다. 음식에 대한 폭넓은 식견을 담고 무속신앙에 대한 관심도 반영한다. 문 작가 역시 가족을 중심으로 한 통속극을 주로 다루지만, 세태 풍자가 특히 강하다. 이는 한복수, 나화신, 한원수, 허세달과 같은 작명에서도 잘 드러난다. 김 작가의 주요 테마는 단연 복수와 권선징악이다. 결국 선이 승리하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니 시청자들의 만족도도 높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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