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은 취향을 되찾을까, 새 취향을 개발할까 [오십, 길을 묻다 (39)]

2021. 3. 3.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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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들을 만한 음악이 없다. 더 이상 좋은 음악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여전히 세상엔 좋은 음악이 나오고 있을 텐데, 내가 찾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음악은 오랫동안 좋은 친구였는데 한참 공을 들이지 않아 서먹해진 거다.

‘음악의 숲’ 주인인 김재원씨가 뮤직박스에서 LP판을 고르고 있다. / 경향자료


예전엔 음악을 어떻게 들었더라? 어렸을 땐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곡에 꽂히면 어딘가에 적어두었다. 용돈이 모이면 음반가게로 달려가 카세트테이프를 샀다.

대학에 들어간 다음 좋았던 것 중 하나가 음악 들을 시간이 많아진 거였다. 학교 앞 음반가게에서 레코드판과 시디를 샀다. 들국화, 산울림, 노래를 찾는 사람들, 비틀스,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엘튼 존, 퀸, 반젤리스, 조지 윈스턴, 이자크 펄만, 요요마 같은 레코드판을 턴테이블 등의 오디오 기기가 없는데 아직도 갖고 있다.

높은 평점과 실제 시청의 차이

새로운 음악은 친구들이 알려줬거나 길거리, 라디오, 텔레비전 같은 데서 들었다. 그러다 인터넷 시대가 열렸다. 음악 플랫폼에서 높은 순위에 오른 곡들을 들었고, 유튜브 같은 동영상 플랫폼에서 알고리즘으로 뜨는 음악을 들어봤다. 새로운 음악을 들을 기회는 더 많아졌고, 이제는 돈도 들지 않는다. 어떤 건 취향에 맞지 않고 어떤 건 너무 좋았다. 그런데 너무 좋은 음악이 점점 드물어졌다. 그러다 점점 음악과 멀어졌다.

작가 톰 밴더빌트가 2016년에 내놓은 〈취향의 탄생〉은 뭔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른바 취향이란 걸 분석하는 책이다. 밴더빌트가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음식이다. 인간의 뇌는 에너지원이 될 수 있는 단것을 먹으라고, 독성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쓴것은 먹지 말라고 명령을 내린다. 잡식성이면서도 새것을 혐오하는 취향은 진화과정에 도움이 됐다. 몸에 좋은 다양한 음식을 먹도록 하면서 이상한 음식을 먹지 않도록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아무리 좋은 식당에 가도 더 좋아하는 메뉴가 있다는 걸 설명해주지 못한다. 밴더빌트는 어떤 음식을 선택하느냐의 취향에서 ‘기억’과 ‘예측’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걸 좋아할지의 가장 큰 기준은 과거에 좋아했느냐의 여부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기억이나 예측이 실제 취향과 꼭 일치하진 않는다. 참여자들에게 일주일 동안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매일 먹으면 어떨지 예측해달라는 한 연구에서 일주일 후 참여자들의 취향은 일관성 없이 달라졌다.

일단 선택을 하고 나면 ‘구매자의 후회’를 겪기 싫은 마음으로 자기가 고른 음식을 더 좋아하게 된다. 취향이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선택은 취향에 다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기대 역시 취향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 경험이 기대에 부합하면 좋아하고 부합하지 않으면 싫어한다는 것이다. 취향은 또 배워가는 것이다. 커피를 처음부터 좋아하는 사람은 적다. 커피의 쓴맛이 위협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면서 즐기게 된다. 밴더빌트는 음식이 이제 삶과 죽음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가 됐고, 그 결정은 더욱 복잡해졌다고 말한다.

정보사회의 진전은 취향의 이러한 흐름을 보여준다. 밴더빌트는 온라인에서 소비자들이 높게 평가하는 것과 많이 즐기는 것이 상이하다는 것을 주목한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에서 사람들이 높은 평점을 부여하는 작품과 실제로 보는 작품은 적잖이 달랐다. 이러한 현실은 정보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엇이 자신의 진짜 취향인지 아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밴더빌트도 자주 언급하듯 부르디외는 취향에 관한 탁월한 연구를 남겼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계급은 섬세한 취향의 구분을 통해 재생산된다. 밴더빌트는 부르디외의 분석이 1960년대 프랑스적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이제 전통적인 취향에 대한 계급적 성향은 파악하기 어려워졌고 민주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달라지고 싶다가 같아지고 싶은 취향

음악의 경우는 어떨까. 음악 플랫폼인 에코 네스트의 공동 설립자는 음악에 대한 기호만큼 한 개인에 대해 알려주는 것은 드물다고 말한다. 영화만 해도 같이 볼 수 있지만 음악은 혼자서 듣기 때문이다. 에코 네스트의 한 엔지니어는 세상의 모든 음악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지금 무엇을 듣는지가 더 복잡해졌다고 말한다. 새로운 음악은 계속 나왔고, 클래식에서 힙합까지 음악의 우주는 무한팽창한다.

어떤 음악을 듣게 될까. 음악도 음식처럼 들어본 것을 좋아한다. 먹어본 음식을 좋아하고 들어본 음악을 좋아한다면 취향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취향은 변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참신함’에 있다. 참신함은 ‘친근함’과는 대척점에 서 있다. 밴더빌트에 따르면 어떤 음악을 선택하냐는 참신함과 친근함의 중간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취향의 변화를 보면 사람은 참 묘한 존재다. 밴더빌트는 한 개인의 취향이 남과 달라지고 싶을 때 변하고, 또 남과 같아지고 싶을 때도 변화한다고 말한다. 결국 사람은 남과 다른 자기만의 독특함을 갖고 싶으면서도 남과 같아지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존재다. 유행하는 옷을 입고 싶은 마음도 있고, 남들이 다 입는 것 말고 자신만의 개성을 나타내는 옷을 입고 싶은 마음도 있다는 거다.

이 책의 원제는 〈당신도 좋아할 거야(You May Also Like)〉다. 뭔가가 의미 있다는 것보다 뭔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오늘날 분명한 것은 두가지다. 하나가 취향이 개인의 삶에서 갈수록 중요해진다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밴더빌트의 말처럼 이 취향이 점점 더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 50대에 들어선 나는 양가감정을 갖게 된다. 한편에선 취향의 시대가 여전히 낯설다. 개인의 소중함을 중시하지 않던 젊은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때는 정치적 이념이 개인적 취향에 앞서 존재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50대가 돼보니 취향이 갈수록 중요해진다. 이제는 젊은 시절처럼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고, 아이가 독립해가면서 나만의 시간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취향이 이렇게 중요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잃어버린 취향을 찾아야 할까, 새로운 취향을 개발해야 할까. 아니면 내가 좋아했던 음악 동호회 문이라도 두드려봐야 할까.

사교성이 부족한 내가 동호회에 가입하는 건 현재로선 무리인 것 같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일단 잃어버린 취향을 되찾는 것 같다. 머잖아 저렴한 오디오 기기를 하나 구입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성지연 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주간경향 표지이야기 더보기▶ 주간경향 특집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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