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아이-젊은 세대의 한계상황과 절망 [장르물 전성시대]

2021. 3. 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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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초능력자를 소재로 한 신카이 마코토의 〈날씨의 아이〉 (2019)는 클라이맥스가 상당히 파격적이다. 감독 특유의 집요하리만치 섬세한 드로잉과 중간중간 가슴을 뻥 뚫어주는 시원시원한 음악도 인상적이나, 주인공 소년이 한 소녀와 세상 전체를 놓고 어느 쪽을 구하면 좋을지 양자택일 상황으로 몰려도 별 고민 없이 선뜻 전자를 택해서다. 소년은 사회가 어찌 돌아가든 자기 관심사의 충족에만 골몰한다. 초능력을 지닌데다 어머니보다 더 포근하게 자신을 돌봐주는 ‘비현실적’ 소녀가 있어준다면 금상첨화다. 세기말의 위기에도 아랑곳없이 소년의 신파적 감성에만 무한정 영합하는 이른바 ‘세카이계’ 애니메이션과 만화들은 세상의 변혁에 주목하고 이를 능동적으로 풀어나가는 SF 본연의 패러다임과 상충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날씨의 아이」 포스터


와가하라 사토시의 라이트노벨 〈알바 뛰는 마왕님!〉(2010~2020)은 왜 세카이계 작품들이 지금까지 하나의 흐름이 되고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 권력투쟁에 밀려난 사악한 외계마왕이 지구로 도망친 끝에 알바로 생활고를 견디며 내일을 꿈꾼다는 웃기다 못해 슬픈 판타지물이다. 핵심은 이런 작품들이 SF나 판타지 형식을 띠고 있으나 언뜻 황당해 보이는 설정 속에 우리가 발 디딘 세계에 대한 풍자와 야유를 담아낸다는 사실이다. 세카이계 자체는 현실도피를 부추긴다는 점에서 퇴행적이다. 이런 콘텐츠들이 시장에서 계속 상업적 성공을 거두며 변주된다면 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프리터로 연명하는 젊은이들의 증가세를 우려하는 일본사회에 관한 보도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사회 또한 정규직 취업을 포기한 채 하루하루 연명하는 데 급급해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날씨의 아이〉에서 ‘맑음 소녀’는 거의 온종일 비가 내리는 세상에 국지적이나마 잠시 비를 멈추고 햇살이 들게 하는 초능력자다. 그는 생계를 위해 시작한 ‘하늘 맑음’ 아르바이트가 계속되면 공기로 변해버린 인어공주처럼 자신의 명을 재촉하리란 사실에 경악한다. 그러고는 증발된다. 소녀를 사랑한 소년은 그를 다시 데려오려 이계로 뛰어든다. 설사 그로 인해 하루도 빠짐없이 3년간 폭우가 내려 도쿄 대부분이 침수된다 해도.

여기서 주목할 것은 소년을 둘러싼 정황이다. 그는 작은 섬에 불과한 숨 막히는 고향을 떠나 대도시의 활력을 동경하며 도쿄로 가출한다. 고아가 아니고 부모와의 불화도 전혀 암시되지 않건만 아무리 주위에서 권유해도 절대 집에 돌아갈 마음이 없다. 하지만 졸업장도 없는 고등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변변치 않다. 더구나 도쿄에서라니! 그는 마왕처럼 언제고 비상할 꿈을 꾸나 그것은 망상일 뿐 프리터 일을 꾸준히 이어가기도 버겁다. 가혹한 세상의 고단함을 잊고 그를 버티게 해주는 것은 좋아하는 소녀에 대한 집착뿐이다. 한계상황에 봉착한 소년은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도쿄가 얼마나 망가지든 개의치 않을 기세다. 감독은 소년의 그런 행동을 우리의 보편적 잣대로 재단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세카이계 패러다임 자체는 문제가 많고 후유증도 깊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이 반복 생산되며 꾸준한 반향을 얻는 현상은 역으로 사회의 건강하지 않은 정도를 일깨워주는 척도로 봐야 하지 않을까.

고장원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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