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 성추행해도 면허 유지" vs "코로나 시국에 굳이".. 정부-의협 충돌에 들끓는 여론
"범죄를 저질렀으면 면허 취소는 당연하다. 그 이상을 요구하는 건 특혜라고 본다."
"굳이 지금같은 시기에 의료법 개정안을 들고 나와 긁어 부스럼 만든 정부가 문제다."
오는 26일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접종을 앞두고, 금고 이상 형을 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의 법안이 추진되자 의료계가 총파업을 거론하면서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자 백신 접종을 볼모로 특혜를 요구해선 안 된다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는 한편, 일각에선 코로나 백신 접종을 앞둔 시기에 법안을 추진하는 정부와 여당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앞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19일 강력 범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사는 5년 동안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를 저지른 자는 의료면허를 취득할 수 없으며, 의료인이 이같은 범죄행위를 저지를 시 영구적으로 면허가 박탈된다.
개정안은 강력범죄로 처벌받은 의사 수가 늘고 있지만 의사 면허는 그대로 유지되는 데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면서 마련됐다.
국회 복지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이 지난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는 2867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당 김원이 의원에 따르면 이 가운데 성범죄는 686건이었고 성범죄 중에서도 강간이나 강제추행이 613건으로 89.4%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촬영도 62건 발생했다.
그러나 현행 의료법상 의사면허 취소 대상자는 면허 대여, 허위 진단서 작성 등 의료법 위반에만 한정돼왔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정형외과 의사가 마취된 환자를 성추행하거나, 산부인과 의사가 환자를 성폭행해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더라도 의사 면허를 유지할 수 있었다.
설령 의사면허가 정지되거나 취소됐더라도 다른 병원에 재취업할 경우 환자는 이같은 정보를 알기 어려워 의료법 개정 필요성은 매 국회마다 지적돼 왔다.
의료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0일 성명을 내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표명한다"며 "이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의결된다면 전국의사 총파업 등 전면적인 투쟁에 나설 것이다. 의료법 개정안은 코로나 대응에 큰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의료계가 앞선 ‘의사 국시 사태’에 이어 또다시 국민 생명을 볼모로 특혜를 요구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변호사와 세무사, 공인회계사, 교직원 등 다른 전문직종도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자격이 박탈되거나 일정 기간 정지되는데, 의사만 예외로 두는 것은 특혜라는 주장이다. 또한 이번 개정안은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일 때는 면허취소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직장인 배모(27)씨는 "의사가 환자를 성추행하거나 불법촬영한 사건들을 많이 봤는데 그럼에도 면허가 유지되는지는 몰랐다. 당연히 필요한 입법이라고 본다"며 "백신 접종을 손에 쥐고 흔들면서 합당한 근거 제시도 없이 반대만 하는 것은 의사로서의 특혜를 잃고 싶지 않은 이기심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말했다.
22일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 등에는 "법은 모두에게 똑같은 기준으로 적용돼야 한다. 국민 생명을 볼모로 특혜를 달라고 협박해선 안 된다" "의사만 치외법권을 허용해달라는 것이냐. 범법자에게 치료받고 싶지 않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반면 왜 굳이 주요 국면에 의료법 개정을 추진하냐는 반발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 등에는 "왜 중요한 시기마다 의협과 갈등을 야기시키나. 의사 길들이기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의협이 100%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맞는 법이라고 해도 왜 하필 이 시기에 싸움을 거는지 모르겠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코로나 사태 주요 국면에서의 의정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코로나 2차 대유행이 불거질 당시 정부와 여당은 의대 정원을 확대하고 공공의대를 설립하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했고 의료계는 이에 반발해 수차례에 걸쳐 총파업에 들어갔다. 의대생 2700여명도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을 거부했다. 의료계는 향후 발생한 의료 공백을 이유로 의대생에게 국시 재응시 기회를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고, 강경대응을 이어가던 정부가 결국 국시 재응시를 허용하면서 사태는 일단락 됐다.
정부는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의료계 반발에 대해 강경대응을 시사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21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정부는 국민의 헌신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집단행위에 대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며 "만일 의협이 불법 집단행동을 현실화한다면 정부는 망설이지 않고 강력한 행정력을 발동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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