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할리 타는 요리사 신계숙 "스승 손에 장을 지지게 하고 싶었다"

박미향 2021. 2. 1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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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최근 EBS 프로그램으로 대중 인기 얻는 57살 중년
청나라 고서적 공부 모임 문전성시..가수·배우도 톡톡
'할리' 타고 색소폰 부는 그의 요리 세계와 인생
신 교수는 할리데이비슨 타고 전국을 다닌다.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 한 장면. EBS 제공

한동안 에스엔에스에서 ‘찍먹 부먹’ 논쟁이 뜨거웠다.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 먹느냐, 소스를 부어 먹느냐’를 따지는 일. 참으로 사소한 일 아닌가! 자신의 취향대로 먹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찍먹파’와 ‘부먹파’는 사생결단(?)을 낼 것처럼 다퉜다. 이 정도면 중식은 우리 솔푸드다. 우리는 생의 매듭마다 짜장면을 먹었다. 전국 짬뽕집 순위가 놀라운 속도로 퍼졌다. 하지만 중식은 건강식이 아니라는 둥, 그저 싼 배달음식이라는 둥 폄하하는 모욕을 참아내야 했다.

최근 중식의 가치를 온몸(?)으로 설파하는 전문가들 덕분에 인식이 바뀌고 있다. 신계숙(57)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가 대표적이다. <교육방송>(EBS) 프로그램 ‘세계테마기행’,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이하 ‘맛터’) 등에 출연해 특유의 유쾌한 입담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그의 한중식학연구소(일명 계향각연구소)는 문전성시다. 너도나도 그가 2018년부터 꾸린 청나라 때 고서적 <수원식단>(2015년 번역) 공부 모임에 참여하고 싶어 한다. 음식업계 ‘선수’뿐만 아니라 유명한 가수, 배우도 앞다퉈 줄을 섰다. 이토록 사람이 꼬이는 데는 그의 삶의 자세도 한몫했다. 그는 할리데이비슨을 탄다. 그걸 타고 팔도를 돈다. 색소폰도 분다. 최근엔 드론도 띄우고, <신계숙의 일단 하는 인생>도 펴냈다. 중학생 때 이미 비혼을 결심한 선각자(?)인 그는 환갑이 얼마 남지 않은 중년 여성이다. 궁금했다. 화수분처럼 샘솟는 그의 생에 대한 열정은 어디에서 비롯할까? 그를 지난달 19일 계향각연구소에서 만났다.

신계숙 교수.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맛터’에서 오토바이를 탄 모습에 반한 시청자가 많다.

“하늘에서 활강하는 느낌이 좋다. 스쿠터부터 탔는데, 바퀴가 작아서 홈 파인 곳에 잘 빠졌다. 평생소원인 할리데이비슨(1200㏄)을 타보자고 결심했다.”

―스쿠터는 왜 탔나?

“3년 전 갱년기 증세가 왔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열증이 왔다. ‘버스는 다 탔구나’ 싶었다. 그래서 오토바이를 선택했다. 선배가 다리 부러지면 붙지도 않는 나이에 뭔 오토바이냐고 했다. 더 빨리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5㎞ 거리는 스쿠터를 탄다. 그 이상은 ‘할리’ 탄다. 사람 만날 때도. 멋있어 보이잖아!(웃음)”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갱년기가 계기가 됐다. 방송가에서 여성 요리사는 인기가 없다. 인기 비결은?

“사람들은 자기 생각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지를 못하는 것 같다. 여성은 더 그렇다.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들이 대리만족 한다는 댓글을 많이 남겼다. 왜 ‘대리’에게 ‘만족’하냐. 스스로 만족해야 하지 않나.(웃음) 여성으로서 뭘 못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 없다. 단지 제일 무서운 건 스스로 가두려는 생각이다.”

그는 단국대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중식 대가 이향방의 중식당 ‘향원’에서 8년간 일했다. 쓸고 닦는 막내부터 시작했다. 처음 맡은 일은 수백개 닭발의 발톱을 자르는 것이었다. 망연자실했다. 일은 고되고 남자 동료들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텃세도 심했다.

자신의 요리 연구소에서 조리하고 있는 신계숙 교수 .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1987년이다. 당시 화교가 아닌 이가 주방에 있는 것도, 여성이 중식 조리하는 것도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냥 버텼다. 지도교수가 요리를 해보라 하셨다. 내가 얼마나 적합했으면 그런 말 했나 싶었다. 의심도 안 하고 토도 달지 않았다. 이향방 선생이 처음엔 주방에서 사흘 버티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했다. ‘내가 장을 지지게 해주겠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버텼다.”

―그런 독한 결심을 한 이유는? 힘들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젊은 날 고뇌가 많았다. 스스로 성실하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내 인생은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주방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잊히지 않는 일 있나?

“아예 수도꼭지도 만지지 말라고 했다. 하루 14시간 일하니 산소가 뇌까지 안 올라오는 것 같았다. 문 열어놓고 심호흡 자주 했다. 그때 마음의 맷집이 생겼다. 그래도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주방 시절로 가고 싶다. 잡념이 없었다. 오늘도 튀기고 내일도 튀기다 보니!”

그는 “살면서 한 번도 꿀려본 적 없다”고 한다. 이유가 있었다. 농사꾼이었던 부친은 “너는 딸이기에 더 공부해야 한다”며 중학생 때 서울로 유학 보냈다. “여자아이니 가르치지 않으면 일생이 어렵다고 생각하셨다.” 그의 부모는 꼴등 해도 이유를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부부싸움 할 때 “이혼하면 계숙이는 내가 가져갈 거야. 내 것이야”라고 했다. “내가 너무 소중한 존재인 걸 알았다. 그래서 수학 못해 선생님께 맞아도, 영어 못해 체벌을 받아도 당당했다. 부모의 한마디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어린 시절 한 비혼 결심 여전한가?

“하고 싶은 이 못 만났다. 만났으면 했지.(웃음)”

자신의 요리 연구소에서 조리하고 있는 신계숙 교수 .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맛터’ 시청률 높아 ‘시즌 2’ 4월께 방송된다고 안다.

“늘 방학 때 중국에 갔다. 22년간 한두달 살았다. 어차피 가는데, <세계테마기행> ‘꽃중년 길을 나서다―중국 타이완 편’을 찍자는 요청이 왔으니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그냥 놀면 된다고 해서 놀았다. 시청률 잘 나왔다.(닐슨코리아 기준 4.25%)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해서 하는 거다.”

―방송 출연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람 있나?

“우도 해초비빔밥 식당 강남연 사장. 슬픈 일이 많았는데, 무인도 가서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었다고 했다. 산청 편에 등장한 ‘별아띠 천문대’ 김도현 대표. 공대 졸업한 ‘별을 헤아리는 소년’이었다. 평생 별 보면서 살겠다고 한 자신과의 약속을 천문대 만들어 지킨 이다. 그는 나에게 별세계를 보여준 이다. 꿈을 가지고 평생을 열심히 노력한다는 게 대단하더라.”

―코로나로 어려움이 많은 때다. 외식업체는 직격탄을 맞았다.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나? 타개책으로 밀키트, 배달음식 개발하는 요리사 많다.

“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 숨죽이고 기다리는 수밖에. 가슴 아프다. 그럼에도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 좌절만 해선, 슬퍼하기만 해선 안 된다. 어차피 시대가 예전으로 돌아가기도 힘들다. 시대가 왼쪽으로 가면 우리도 왼쪽에 맞춰서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밀키트든 냉동식품이든 만드는 게 맞는다.”

―음식문화업계 일부는 편의점 음식 걱정한다. 우리 식탁을 망친다고 말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언제든, 어디서든 그것을 즐기는 이 있다. 필요한 사람이 있다. 고픈 것보다 낫다. 앞으로 시대는 다양성을 인정해줘야 한다. ‘전통은 옳고, 편의점 3500원짜리 도시락은 음식이 아니다’고 할 이유 없다. 우리 같은 선생들은 새로운 시대가 오면 그것에 맞게 ‘뭐든 해보자, 편의점 메뉴도 개발해보자’고 해야 하는 거다. 그래서 모든 음식은 숭고하다.”

―로봇바리스타, 로봇요리사 있다. 로봇이 튀긴 치킨이 더 맛있다는 얘기도 돈다. 요리사는 없어지는 직업인가?

“로봇이 볶은 것만 먹을 것인가. 아니다. 대면 욕구는 더 심화될 거다. <수원식단> 공부 모임처럼 말이다. 자율주행 시대 오면 사람들은 차 안에서 간단하게 먹을 걸 찾을 거다. 그런 거 연구하는 이 나와야 한다. 전통 잇는 이, 로봇이 볶은 음식 먹는 이 모두 서로 인정해줘야 한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생각 하지 말자. 난 동파육 튀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누군 튀긴다. 그렇다고 ‘그 사람 동파육은 아니다’라고 하지 말자. 개인 욕구나 취향에 밀착하고 그걸 존중하는 시대다. 요리사도 대비해야 한다. 내가 더 울창한 숲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 안에서 더 많은 잔가지가 나와야 한다. 그 잔가지가 무엇이든 준비해야 한다.”

신 교수가 딸기탕후루를 만들고 있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그는 향방을 그만두고 대만(타이완)과 상하이에서 6개월씩 낮엔 학원을 다니고 밤엔 업장에서 일하면서 실력을 닦았다. 문화센터 등에서 강의도 했다. 이후 식품학으로 석·박사를 따고 교수가 됐다. 유명한 중식당에서 일한 이들의 인생 수순은 자신의 식당을 차리는 것이다. 그는 왜 다른 선택을 했을까? “뱃속부터 중국요리 먹고 자란 이향방 선생을 따라 하면 2등밖에 안 된다. 당시 팔도 아파서 거의 못 쓰게 됐다. 중식 강의하는 이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인생 행보가 다채롭다. 이젠 글도 쓴다. 다른 이는 그중 하나만 한다. 다양한 삶을 살게 된 원동력은 뭔가?

“내 요리 잘하기 위해서다. 이 세상에 요리사는 많다. 나를 어떻게 차별화할 건가 끊임없이 생각한다. 화교 요리사와 차별화, 강의할 때도 마찬가지다. 색소폰 배운 것도 비슷한 이유다. 색소폰 불다 보니 내 영혼이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다른 요리사와 차별점이 생긴 거다. ‘색소폰 부는 요리사’, ‘오토바이 타는 요리사’도 된 거다. 언제나 대중과 소통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가 나를 한번을 더 부르게 하려면 끊임없이 ‘나는 이런 사람’이란 걸 보여줘야 한다. 내가 중국집에서 짜장면 한가지만 팔면 누가 불러주겠나.”

자신의 요리 연구소에서 조리하고 있는 신계숙 교수 .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그의 <수원식단> 공부 모임이 인기인 이유에는 그가 만든 맛이 있다. 펀정파이구(분증배골), 얼얼한 라쯔지, 후난성 스타일 생선찜과 탕 등 좀처럼 보기 힘든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슴슴하고 담백하다. 독하게 맵지만 위가 아프지는 않다. 황홀한 매운맛의 진수다. 그의 중식은 다르다.

―‘신계숙표 중식’은?

“중식은 기하급수적으로 다양해질 수 있는 음식이다. 종류가 많아서가 아니다. 변수가 많아서다. 소수민족만 56개다. 그 민족마다 수많은 음식이 있고, 변주되고 있다. 한족까지 따지면 거의 기하급수적으로 는다. 내 중국요리는 정말도 조족지혈보다 더 조족지혈이다. 하지만 내 원칙은 원재료 특징을 뽑아내 빛나게 하는 것이다. 식재료 원형을 맛보게 해주고 싶다. 양념으로 분칠할 필요 없다.”

신계숙 교수. 유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한국화된 중식이 있다. 산둥성에서 온 이들 뿌린내린 음식 말이다. 가치가 있나?

“지금 우리 화교 중식은 녹말 풀고 튀긴 게 많다. 그걸 단점이라고 하는 이 있지만, 산둥은 춥다. 열량을 많이 내야 했다. 빨리 식지 않게 하려면 물녹말 뿌려야 한다. 살아남은 요리는 소비자의 선택 결과다. 튀긴 거 주문하지 않았나. 그랬으니 탓하면 안 된다. 싼 배달음식이라는 얘기도 따져보면 중식만큼 한 상 쫙 차려주는 게 있나. 짜장면 한 그릇도 배달해준다. 다 먹으면 그릇도 가져간다. 양식이, 일식이 어디 그러나. 옛날 배운 거 없이 시골에서 상경한 이들은 중국집에서 ‘뽀이’ 하면서 먹고 잤다. 숙식을 해결해준 거다. 엄청 고마운 요리다.”

한식과 중식의 차이를 묻자 ‘중식은 리드미컬하고 똑같은 거 싫어하는 아이라면, 한식은 한 번 먹은 마음은 변하지 않는 아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입담은 따라갈 이가 없어 보인다.

‘찍먹 부먹’ 논쟁의 주인공 탕수육을 하얼빈이나 광둥 지역에서 찾으면 의구심이 생긴다. 소스가 없다. 추운 지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식은 땅과 기후에 규정당한다. 하지만 그 안에 사람이 있다. 신 교수는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는 게 음식”이라며 “사람은 따스해야 하고, 그게 자기 나름의 성공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한다.

미래엔 알약으로 배를 채운다는 얘기도 있다고 하니 그가 한마디 한다. “어휴~ 안 사는 게 나유! 왜 살아유~!”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SC] “쉬워요! 너무 쉬워요”…가정에서 하기 쉬운 중식 조리법

중식도 가정에서 쉽게 만들 수 있을까? 크고 단단한 웍(중식 프라이팬)이 없어도 가능할까? 신계숙 교수는 “매우 쉽게 조리해 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우리에게 익숙한 마파두부부터 생경한 디싼셴(지삼선), 징장러우쓰(경장육사) 조리법까지 알려준다. 아이들이 보자마자 환호할 중식 디저트 딸기탕후루도 준비했다.

마파두부.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마파두부

우리에게 매우 친근한 중국 두부 요리. 쓰촨의 전통요리로 본래 향신료 화자오를 뿌린다. 한국에 뿌리내린 마파두부는 짜장면처럼 우리식이다.

재료 : 두부 350g, 다진 돼지고기 50g, 마늘 20g, 파 30g, 두반장 2큰술, 간장 1큰술, 술 2작은술, 물 1/2컵, 물녹말(물과 녹말가루를 1 대 1로 섞어 만든다) 1큰술, 식용유 3큰술

만드는 방법

① 두부를 깍두기 모양으로 썬다. ② 파, 마늘은 다진다. ③ 팬에 식용유를 넣고 다진 돼지고기, 파, 마늘, 두반장, 간장, 술을 넣고 볶는다. ④ 두부를 넣고 물을 부은 뒤 끓으면 물녹말을 풀어 접시에 담아낸다.

디싼셴(지삼선)

‘땅에서 나는 세가지 재료’란 뜻의 음식. 세가지 재료는 취향에 따라 선택해도 좋다.

재료 : 가지 300g, 감자 200g, 피망 100g, 파 30g, 마늘 20g, 간장 2큰술, 술 1큰술, 식용유 3큰술

만드는 방법

① 가지는 연필을 깎듯이 돌려서 깎는다. ② 감자는 껍질을 벗기고 돌려 깎는다. 피망은 마름모꼴로 썬다. ③ 파는 어슷썰기하고 마늘은 얇게 썬다. ④ 팬에 식용유를 넣고 감자, 당근, 피망을 지지듯 익힌다. ⑤ 팬에 식용유를 넣고 파, 마늘을 함께 볶으면서 향을 낸다. 간장술을 넣고 익힌 가지, 감자, 피망을 마저 넣고 고루 볶아 건져 담는다.

징장러우쓰(경장육사)

대표적인 베이징 전통음식. 조리법이 간단해 중국인들도 자주 해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재료 : 돼지고기 120g, 고기밑간용 양념(간장 1작은술+술 1작은술+녹말가루 1작은술), 파 흰 부분 90g, 볶은 춘장 2큰술, 간장 1큰술, 설탕 1큰술, 물 3큰술, 물녹말 1작은술

만드는 방법

① 돼지고기를 채 썬다. ② 돼지고기에 고기밑간용 양념을 섞어 밑간한다. ③ 파는 길게 채 썰어 그릇에 담는다. ④ 팬에 춘장, 간장, 설탕물을 넣고 잘 섞은 다음 돼지고기를 넣는다. ⑤ 물녹말을 풀어 파 위에 얹는다.

딸기탕후루

설탕과 물엿 등으로 시럽을 만든 뒤 과일에 묻힌 다음 굳혀 먹는 음식이다. 요즘은 제철 과일을 재료로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신계숙 교수는 설탕과 물만으로 시럽을 만들어도 충분하다고 한다.

재료 : 딸기 24개 600g, 설탕 2컵, 물 1컵

만드는 방법

① 팬에 물을 붓고 설탕을 넣어 시럽이 될 때까지 약한 불에 계속 가열한다. ② 딸기는 꼭지를 따고 씻어서 물기를 뺀다. ③ 딸기를 꼬챙이에 꿰어 설탕 시럽이 고루 묻도록 딸기를 돌려준다. ④ 식으면 먹는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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