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롯 전설'이 된 나의 인생곡⑤] '립스틱 짙게 바르고' 임주리, "포인트는 필링"

강일홍 2021. 2. 1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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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리는 80년대 후반 가수를 은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아들 재하(오른쪽)를 낳고 살았다. 그가 다시 가수로 복귀하게 된 계기는 7년만에 터진 '립스틱 짙게 바르고'의 대히트였다. /임주리 제공

트로트가 밝고 젊어졌다. 최근 몇 년 사이 방송가에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서다. 전통적으로 중장년층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트로트 팬층도 훨씬 넓고 깊고 다양해졌다. 덕분에 잊혔던 곡들이 리바이벌 돼 역주행 신화를 만들기도 한다. 누구나 무명시절은 있기 마련이고 터닝포인트도 있다. 수많은 히트곡을 낸 레전드 가수들 역시 인생을 바꾼, 또는 족적을 남긴 자신만의 인생곡에 각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 단 한 두 곡의 히트곡만을 낸 가수들이라면 더욱 애틋할 수밖에 없다. 가수 본인한테는 물론 가요계와 팬들이 인정하는 자타공인 트로트 인생곡들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친아들 재하가 KBS2 '트롯 전국체전'서 불러 부활

[더팩트|강일홍 기자] 가수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는 1987년 발표됐다. 당시 파격적인 제목과 함께 가슴에 와닿는 가사로 40~50대의 가슴을 설레게 한 곡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노래방 베스트10'의 하나로 꼽힐만큼 대중성이 높은 노래다.

KBS2 '트롯 전국체전' 3라운드 1대1 데스매치에서 재하(본명 이진호)가 부른 뒤 극강의 우승후보 1위로 떠오른 화제곡이기도 하다. 원곡가수가 친엄마였다는 사실 때문에 더 주목을 받았지만, 그는 완벽한 곡 소화로 심사위원들과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완급조절이 까다로운 노래예요. 힘을 빼고 솔틱하면서도 스무스하게 불러야 필링이 살아나는 곡이거든요. 저도 항상 어렵다고 느끼는 곡인데 재하는 너무 쉽게, 그러면서도 충분히 임팩트를 넣어 필을 이끌어내는 걸 보고 놀랐어요."(원곡가수 임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작사 양인자)는 작곡가 김희갑이 당초 가수 이은하에게 주려고 만든 노래였다. 임주리가 김희갑 양인자 부부의 집에 놀러갔다가 운좋게 악보와 인연이 됐다. 딱 2소절을 불러보고 전율을 느낀 임주리가 "제가 부르면 안되겠느냐"고 졸라 녹음을 했다고 한다.

'립스틱 짙게 바르고'(작사 양인자)는 작곡가 김희갑이 당초 가수 이은하에게 주려고 만든 노래였다. 임주리가 김희갑 양인자 부부의 집에 놀러갔다가 운좋게 악보와 인연이 됐다. /임주리 제공

이 곡은 발매 직후 가요평론가들 사이에 주옥같은 노래로 호평을 받았음에도 대중적 히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던 중 1993년 MBC 드라마 '엄마의 바다'에서 배우 김혜자가 본인의 심정을 대변한 노래라며 틀어놓고 부르면서 급속히 인기곡으로 떠오른다.

'내일이면 잊으리 꼭 잊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 사랑이란 길지가 않더라 영원 하지도 않더라/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아 속절없는 사랑아 마지막 선물 잊어 주리라/ 립스틱 짙게 바르고 별이지고 이 밤도 가고나면/ 내 정녕 당신을 잊어 주리라'(임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 1절)

임주리는 마치 예고된 자신의 아픈 사랑을 암시하듯 애절한 목소리로 이 곡을 불렀다. '립스틱 짙게 바르고'는 드라마 OST 곡이 기폭제가 돼 일약 국민 히트곡으로 탄생하며 그의 인생곡이 됐다. 후에 김건모와 김범수가 각각 '나는 가수다'(2011년) '일요일이 좋다-판타스틱 듀오'(2016년)에서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하는 임주리의 늦둥이 외아들이다. 90년대 초 30대 중반의 나이에 결혼을 약속한 사람과 미국에서 출산했지만 상대는 유부남이었다. 그는 100일 된 갓난 아기 재하를 데리고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훗날 남편이 이혼하고 귀국해 재회하지만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사실상 미혼모처럼 아들 재하와 내내 둘이 살았다.

임주리는 아들 재하에 대해 "엄마로서 아들이 가수가 되는 걸 원치 않았지만 엄마의 DNA를 물려받았는지 음악적 재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사진은 KBS2 '트롯 전국체전'의 장면. /'트롯 전국체전' 캡쳐

임주리는 "그 땐 모든 게 힘든 시기였다"면서 "만약 이 곡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도 저랑 재하는 미국에 계속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가수를 은퇴하고 미국 생활을 시작한 그에게 의외의 낭보가 날아들었다. 7년만에 한국에서 터진 '립스틱 짙게 바르고'의 대히트였다.

그는 "막막한 상황에 친정 엄마한테 기대려고 한국에 잠깐 들어왔는데 이 노래가 워낙 대박이 나 정신없이 불려다니다보니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면서 "7년의 무명가수 시절에 겪은 순탄치 않은 삶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임주리는 또 아들 재하에 대해 "엄마로서 아들이 가수가 되는 걸 원치 않았지만 엄마의 DNA를 물려받았는지 음악적 재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재하는 아이돌그룹 멤버로 제안을 받을만큼 가요계로부터 일찌감치 실력을 인정받았다. 엄마 임주리의 반대로 2년전에야 자신의 음반을 냈고 오디션 서바이벌에 도전하기전까지 조용한 활동을 이어왔다.

재하는 '트롯 전국체전' 준결승전에서 김상배의 '안돼요 안돼'를 불러 1위로 결승에 진출하기도 했다. 임주리는 "김상배 오빠의 곡이 제 노래 못지 않게 까다롭고 힘든데 뛰어난 곡 해석력에 엄마인 저도 감명을 받았다"면서 "어쨌든 아들이 트로트 오디션에 나가 호평을 받고 대중적 인지도까지 얻게 돼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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