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 둘레길] 호수 따라 220km..길 끝에 억새가 마중 나오다

글 서현우 기자 사진 이신영 기자 2021. 2. 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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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걷기길 '대전 대청호 오백리길'
1구간 12.4km..대청댐물문화관~지명산~이현동 억새밭
대청댐의 보조댐인 용호제에서 맞는 아침 일출에 상고대와 물안개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해 환상적인 경치를 선사해 주고 있다.
싸늘한 바람이 강물 위에 밭을 일구는 듯 파문을 일으켰다. 물고랑 사이에선 소출인 양 물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새벽 내내 불었을 겨울바람이 안개 너머 버드나무에 주렁주렁 상고대를 매달아 놓았다. 강변으로 한 걸음 내려서자마자 물새들은 소스라친 날갯짓으로 자리를 떠났다. 몽환적 물안개, 윤슬로 가득한 호수의 낭만을 즐기며 한적한 눈길을 걸을 수 있는 곳, 대청호 오백리길이다.
대청댐의 보조댐인 용호제에서 맞는 아침 일출에 상고대와 물안개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해 환상적인 경치를 선사해 주고 있다.
대전 산악인 김성선의 1Pick!
“대전·충청 대표 걷기길을 찾고 계시다고요? 그러면 대청호 오백리길로 오셔야죠.”
충청 지방 대표 장거리 걷기길을 추천하자 김성선 대장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청호 오백리길을 추천했다. 대전 토박이인 그는 대전쟈일클럽 소속으로, 2000년 이후 전문등반 대신 아웃도어 쪽으로 눈을 돌려 한반도 해안선 요트일주를 했으며, KBS 영상앨범 ‘산’에 출연해 부탄과 네팔 서부 히말라야 탐사도 한 산악인이다. 현재는 여행가인 아내 이상은씨와 청소년도보여행과 아웃도어체험, 기업캠핑연수 등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문화학교 ‘산책’을 설립해 함께 운영하고 있다.
금강변의 풀과 나무들이 상고대로 곱게 치장했다.
자신감 넘치는 김 대장의 목소리를 따라 대청호 오백리길로 향했다. 김 대장은 먼저 “걷기 전 에피타이저 삼아 가야 할 곳이 있다”며 대청댐 아래로 핸들을 돌렸다. 도착한 곳은 대청댐의 보조댐인 ‘용호제’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강변의 경관이 경이롭다. 버드나무와 강가의 수풀에 새하얗게 상고대가 피어 있다. 아침 햇살에 반짝거리는 금강은 도도하게 흐르고 은은한 물안개는 몽환적이다. 이 추운 겨울에도 가마우지는 물속을 제집인양 드나든다.
“지금 저 가마우지들 포동포동한 것 좀 보세요. 작년에 54일이나 장마가 계속되면서 대청댐이 계속 방류됐거든요. 대청호에 살던 물고기들이 금강으로 쏟아져 내려오면서 가마우지들이 그야말로 포식을 했죠.”
대청댐에서 바라본 대청호의 은근한 물안개.
이제 금강변의 도로를 따라 대청댐으로 향한다. 대청댐은 총 21구간, 장장 220km에 달하는 대청호 오백리길의 출발지다. 1980년 완공된 대청댐으로 인해 충주호, 소양호와 함께 전국 3대 호수로 꼽히는 대청호가 탄생했다.
“제가 아는 누님 한 분도 대청댐이 생기면서 소달구지에 짐을 싣고 우리가 방금 차로 지나온 고갯길을 걸어서 지금 신탄진역이 있는 자리에 새롭게 터를 꾸렸다고 해요. 수몰민들은 지금도 대청호를 찾아 옛날 마을 자리를 살펴보곤 하는데요, 대청호의 수위가 많이 낮아질 때면 수면 아래에 어렴풋이 마을의 모습이 보인다고 해요.”
대청호 오백리길은 샛길이나 갈림길이 거의 없고, 곳곳에 이정표가 잘 설치돼 있다.
개발금지로 때묻지 않은 자연
대청댐휴게소 동쪽에 위치한 나무 데크길을 따라 대청댐물문화관에 오른다. 물문화관에서부터 대청호 오백리길 1구간이 시작된다. 난간으로 바짝 다가들어 대청호를 바라본다. 이제 막 지평선 위로 떠오른 태양이 미처 걷어내지 못한 옅은 물안개가 호면 위를 간지럽히고 있는 모양이 신비롭다. 시원한 경관만큼이나 공기도 맑고 시원하다.
“공기가 무척 맑죠? 보통 강이나 호숫가에 모텔이나 카페가 줄줄이 들어서 있잖아요. 그런데 이곳에는 전혀 없어요. 이유는 이곳이 상수원보호구역이기 때문입니다. 또 예전 군사정권시절 대통령의 별장인 청남대가 있던 곳이라 삼엄하게 관리됐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것 같아요. 시골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축사도 없어요. 그래서 더욱 천혜의 자연을 즐길 수 있답니다. 밤이 되면 별빛이 대청호로 쏟아져 내리죠.”
구간은 계속 대청호를 왼편에 두고 걷는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대청호의 모습이 아름답다. 서쪽으로는 연기를 울컥울컥 내뿜는 대덕연구단지 너머 계룡산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겨울에 더 빛나는 대청호 오백리길
대청댐을 지나 이제 본격적으로 도보여행을 시작한다. 샛길이 여러 갈래로 교차하는 산 둘레길과 다르게 이곳은 줄곧 대청호를 따르면 되기 때문에 길을 헷갈릴 염려는 없다. 나무 데크길을 지나면 야트막한 산 능선길이 2km가량 이어진다. 아주 작은 고개를 하나 넘을 때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대청호의 풍경이 이색적이다. 호수 건너편, 숲 사이로 이따금씩 건물의 형체가 엿보인다. 군사정권시기 조성된 대통령의 별장 청남대다.
“이곳은 대부분 참나무 군락이라 겨울이 아니면 이렇게 시원한 경관을 보기가 어려워요. 나뭇잎에 대청호의 모습이 대부분 가려지거든요. 겨울에 걸어야만 볼 수 있는 광경이죠. 호수에 작은 산들이 텀벙텀벙 잠겨 있는 모습이 꼭 다도해 같지 않나요?”
이어 김 대장은 “수십 년 전에는 이 능선에서 공수부대원들이 대통령을 경호했고, 몇 천 년 전에는 백제 군사들이 강 건너 신라군의 동향을 정찰했다”며 “이곳은 삼국시대에 곧잘 나라의 경계를 이루곤 했다”고 곁들였다.
청남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쉼터에는 김성선 대장이 직접 만든 벤치와 문이 자리 잡고 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은 조금씩 넓어지고 잇따라 전망쉼터가 나온다. 옆에는 로하스캠핑장에서 운영하는 풋살장과 글램핑 시설이 있다. 가장 눈을 사로잡는 건 빨강, 노랑, 파랑으로 칠해진 문과 벤치들이다. 로하스 캠핑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성선 대장의 작품이다. 공사 현장 같은 곳에서 직접 재료를 들여와 손수 만들었다고 한다. 대청호 오백리길의 새로운 명물이자 인증 사진 포인트다.
로하스캠핑장 방면의 도로로 잠깐 내려섰다가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간만에 만나는 가파른 오르막을 살짝 치고 오르면 1구간의 하이라이트인 지명산(158m)이다. 전망이 좋은 곳에는 ‘지락정’이라고 명명된 깨끗한 정자가 들어서 있다. 이곳을 정상으로 혼동하는 사람이 많으나 실제 정상은 200m 정도 더 올라야 나온다고 한다. 오르는 계단이 대부분 눈에 쌓여 있는데 언뜻 눈 사이에 석축의 모습이 보인다. 김성선 대장은 “그게 옛 산성의 흔적”이라고 설명한다. 둘레가100m 정도 되는 소규모 산성, 미호동산성이다.
현재 성벽은 정상 북쪽에 길이 약 2~3m의 석축만 남았고 나머지는 토벽으로만 전해진다고 한다. 성벽은 다듬지 않은 판석으로 구성됐다. 살벌한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 군사들이 무수히 피를 흘렸을 공간이 세월이 흐른 뒤 지금은 등반객들의 땀이 흐르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지명산 아래 대청호를 향해 삐쭉 튀어나온 곶은 대청호를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명소다.
정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이정표를 따라 진행한다. 갈림길에서 우회하지 않고 자작나무길을 따른다. 김 대장은 “우회길은 볼 것도 없고 길도 관리되지 않아 위험하다. 자작나무길이라고는 하지만 관리되지 않아 자작나무들이 대부분 고사해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가파른 길을 마저 내려서면 대청호를 향해 툭 튀어나온 자그마한 곶이 나온다. 이 곶도 대청호를 관람하는 명소. 다만 낚시금지구역임에도 불구하고 불법 낚시꾼들이 몰래 찌를 드리우는 곳이기도 하다. 김 대장은 “대청호 오백리길을 찾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서 감시의 눈길이 많아지면 없어질 텐데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길을 버리고 잠시 데크를 따라 대청호 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대청정이 나온다. 소설가 박범신도 잠시 걸음을 쉬어갔던 곳으로, 대청호의 수위가 높아지면 정자로 가는 길목이 살짝 잠겨 섬이 된다는 특징이 있다.
지명산 인근 대청정은 여름에 강수로 댐 수위가 높아지면 섬으로 변한다. 사진 김성선
‘정화’ 목적 억새밭과 습지공원 눈길
지명산을 한 바퀴 돌아나간다. 이윽고 마주치는 건 비상여수로댐. 예측 이상의 홍수가 발생할 경우 추가적인 방류를 위해 설치된 댐이다. 다행히 설치된 이후 한 번도 방류가 진행된 적은 없다고 하지만, 기상이변이 계속되는 한 언젠가는 사용될 날이 올 것이라고 한다.
비상여수로댐을 지나면 도로로 접어든다. 도로 옆 둔치는 2018년 해맞이 행사가 열릴 정도로 일출을 보기 좋은 곳이다. 더 나아가면 곧 자그마한 삼정마을이 나온다. 과거에 이 지역 주민들이 산전을 일구어 살아서 ‘산전골’이라 부르다가 이것이 ‘삼정골’로 전해졌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로는 어느 노승이 이 지역의 지세를 보고 ‘이 땅은 세 명의 정승을 배출할 명당’이라고 예언해서 삼정골이라고 부르게 됐다고도 한다.
“이런 예언까지 전해지는 것을 보면 이 지역이 명당은 명당인가 봅니다. 대통령도 별장을 짓고 살았잖아요? 또 하나, 1구간을 걷다 보면 유달리 많은 무덤들을 볼 수 있습니다. 조상들이 묏자리로 쓸 정도면 보장된 명당이란 얘기 아니겠습니까?”
지명산에 설치된 정자 ‘지락정’에서 바라본 대청호.
마을에 면해 있는 습지공원들은 모두 아기자기한 조형물들을 품고 있다.
하이라이트 구간에서 아름답고 시원한 경관을 한껏 즐긴 탓인지 이후 길은 다소 지루하게 여겨진다. 그러던 차 마을마다 마련된 작고 아기자기한 습지공원들이 눈에 들어온다. 흥미롭게도 이 습지공원들은 대청호를 더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만든 ‘정화시설’이다.
“비가 오면 농경지나 도로면에 있는 오염물질들이 대청호로 유입되기 마련입니다. 이 습지들은 이 물질들을 침강지로 보낸 뒤 깊은습지, 지표흐름습지, 생태여과지를 지나 대청호로 흘려보내도록 고안됐어요. 마을 맞은편에 떠 있는 섬 같은 것도 수질 정화를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부유섬이에요. 이촌지구 앞은 원앙새 한 쌍을 닮았다 해서 원앙새부유습지, 강촌지구 앞은 산호빛깔을 낸다고 해서 산호빛부유습지라 부르고 있습니다.”
1구간에서 가장 크고 볼 만한 습지는 구간의 종점인 이현동에 마련돼 있다. 가을과 겨울에는 아름다운 물억새밭을 만끽할 수 있으며, 따뜻한 계절이면 수련, 삼백초, 노랑꽃창포, 애기부들, 어성초가 향연을 벌인다고 한다. 계절에 따라 새 옷을 입는 매력적인 걷기길이다.
1구간 종점인 이현동 거대 억새밭.
대청호 로하스캠핑장 전경. 사진 김성선
숙박
대청호 로하스캠핑장
꼭 완주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대청호로하스 캠핑장을 기점으로 도보여행과 캠핑을 동시에 하는 것도 대청호 오백리길 1구간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이곳은 로하스가족공원워터캠핑장이라 불렸던 곳으로, 일부 지도에는 여전히 옛 명칭으로 기록돼 있다. 가족공원이라는 명칭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부지가 넓고, 캠핑 사이트별 간의 거리도 넓어 언택트 캠핑을 즐기기 용이하다. 오토캠핑장 40면에 글램핑 시설 10동을 갖췄다. 개별 캠핑구역 면적은 100㎡로 그늘막과 대형 텐트를 설치하기에 충분하다. 식기 세척장도 한 사람이 세척대 하나를 사용해, 위생적이고 감염 위험이 덜하다. 특히 캠핑장 대표인 김성선 대장을 비롯해 상주하는 직원 모두 아웃도어 전문가이며 친절해 캠핑 초보도 부담 없이 방문하기 좋다.
교통
대전 시내에서 대청댐으로 들어가는 버스는 신탄진역에서 탑승하는 72, 73번 버스가 있다. 두 버스 모두 배차간격이 약 2시간(첫차 06:00, 막차 21:20)으로 실시간 버스 정보를 확인해서 탑승해야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 대전 시내로 돌아올 때는 삼정마을과 이현동 억새밭에서 남서쪽 도로로 나오면 71-1, 71-2번 버스(첫차 05:50, 막차 20:00)를 이용할 수 있다.
문의 대전교통정보센터 traffic.daejeo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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