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도착 D-2..'희망뚜벅이' 김진숙은 웃을 수 있을까

CBS노컷뉴스 이은지·차민지 기자 2021. 2. 5.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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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0일 청와대行 출발, 오는 7일 도착 목표
치료 뿌리치고 떠난 도보투쟁.."복직 없이 정년 없다"
"사측·정부의 미온적인 태도 답답..'재입사'는 책임 회피"
46일째 이어지는 희망버스 단식단도 이제 한계치
"국가폭력에 의한 부당해고..바로잡기에 시효 없어"
지난해 12월 30일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과 '희망뚜벅이' 여정을 함께 시작한 황이라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미조직부장, 차해도 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 김진숙 지도위원 측 제공
"복직 없이 정년 없다." 연내 복직을 간절히 소원했지만, 해를 넘겨 예순 하나가 된 해고노동자는 빼앗긴 정년을 되찾기 위해 또다시 길 위에 섰다.

갓 스물이 넘은 나이에 입사한 회사에서 근무한 햇수는 불과 5년 남짓. 타의로 떠나 투쟁한 35년여의 시간이 훨씬 더 아득하다. 그럼에도 부산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이 여정을 '희망뚜벅이'라 명명한 당사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다.

◇노조 대의원으로 유인물 배포했다 대공분실行…"부당해고 맞다"

날마다 함께 걷는 동행들과는 '단체사진'을 꼭 촬영한다. 김진숙 지도위원 측 제공
김 지도위원은 지난 1981년 10월 대한조선공사주식회사(現 한진중공업)에 유일한 '처녀 용접사'로 입사했다. 21살이었던 당시 '일당이 좀 세서' 용접을 배워 회사에 들어갔지만, 일이 너무 고돼 새벽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는 저서 '소금꽃 나무'에서 "용접 불똥에 군데군데 타 들어간 작업복에 누런 테이프를 붙여 넝마가 된 누더기를 걸친 내 청춘도 산재에, 잔업에, 그렇게 누더기가 되어가고 있었다"고 돌이켰다.

회사의 지시로 하루 쉬던 날, '전태일 평전'을 읽고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 꺼이꺼이 지리산 계곡처럼 울었던" 김 지도위원은 노동조합을 통해 새롭게 세상에 눈을 떴다.

한진중공업은 '크고 유명한 회사'였지만 노동자들을 위해 구비된 식당은 고사하고, 쥐들이 출몰하는 현장에서 "새까만 꽁보리밥을 공업용수에 말아 후루룩 삼키는" 것이 현실이었다. '도시락 거부'로 투쟁을 시작한 그는 1986년 2월 18일 노조 대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리고 이틀 뒤 노조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제23차 정기 대의원대회를 다녀와서'라는 제목의 유인물 150여 매를 제작·배포했단 이유로 3차례에 걸쳐 서슬퍼런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회사는 '경찰 조사를 받는 자'란 핑계로 1986년 7월 14일 그를 징계해고했다. 하늘이 무너진다면 이런 느낌일까 생각했다. 밥도 먹히지 않았고, 잠 못 이루는 나날이 이어지면서 한 달 만에 몸무게가 12kg가량 줄었다.

김진숙 지도위원 측 제공
꿋꿋이 공장 입구로 찾아가 '출근 투쟁'을 벌였지만, 번번이 사측과 어용노조의 제압에 가로막혔다. 이후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고,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제 한 몸만을 위한 싸움은 아니었다. 지난 2011년에는 한진중공업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 무려 309일간의 '고공 농성' 끝에 노사합의를 이끌어냈지만 그의 복직은 또다시 무산됐다.

국가는 이미 그가 부당하게 쫓겨났음을 '인증'했다. 지난 2009년 11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한진중공업에서의 노조 활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그에 대한 사측의 부당해고를 인정한 것이다. 지난해 9월 부산시의회 역시 김 지도위원의 복직 촉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고, 같은 해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한진중공업 이병모 대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문성현 위원장이 출석한 국정감사에서 사측이 그의 복직을 이행할 것을 권고하는 특별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복직을 위한 선결조건이 모두 마련된 상황에서도 김 지도위원은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사측, 2020년 12월 31일만 기다린 느낌…'내 잘못 아녔다' 인식하는 과정"

김진숙 지도위원 측 제공
지난해 12월 30일 부산도시철도 호포역에서 출발한 김 지도위원은 오는 7일 청와대 도착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매일 오전 11시부터 하루에 15~17km 정도를 3시간가량 도보로 걷는다. 황이라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미조직부장, 차해도 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 등 3명이 함께 시작한 행진에는 어느덧 180명에서 200여 명 가까운 인원이 날마다 모여든다.

사실 40여 일에 이르는 대장정을 선뜻 맘먹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지난 2018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던 그는 지난해 병 재발로 수술 뒤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김 지도위원은 "출근투쟁을 시작할 때부터 '복직 없이 정년 없다'는 걸 선언했는데, 사측에선 그냥 (2020년) 12월 31일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이 가면 '정년퇴직 날짜가 지나는데 네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는 식의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며 "그게 아니란 걸 분명히 보여주고 싶었고, 복직이 아닌 이상 이 싸움이 끝나지 않는다는 걸 천명할 필요가 있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걸으면서 해고 당시부터 지난 세월을 비로소 마주하게 됐다고도 했다. "대공분실에 끌려가고 사측에 의해서 몇 달 동안 감금당하고 부서이동 당하고, 해고당하고, 출근투쟁이라고 나가면 두드려 맞고…그런 과정들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전까진 단편적으로 떠오르긴 했지만 별로 좋은 기억도 아니고 아픔이 있으니까. 그리고 혼자 삭여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떻게 이름 붙여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김진숙 지도위원 측 제공
김 지도위원은 "36년 만에 국가폭력으로 명명된 이것이 부당한 일이었다는 것, 내가 잘못한 게 아니었다는 것들이 드디어 인식되는 과정인 것 같다"며 "회한이 많다"고 말했다.

평택 진위역에서 출발해 병점역에서 걸음을 마친 지난 3일은 경찰의 제지로 더 일정이 지체되기도 했다. '다중이 공동의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것은 불법시위다', '집단으로 모여다니는 것은 방역지침 위반이다' 등의 이야기를 반복했다고 했다.

그는 "겨울이라 북풍이 부니 계속 맞바람을 안고 가야 하고 눈보라도 심하게 친 날은 유독 힘들었다. 하지만 날씨는 어차피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다만 "경찰이 이렇게 막는 건 상당히 피곤하다"며 "청와대로 가는 길이 순탄치는 않을 것 같다. 환대까지 바라진 않았지만 '옛 동지'(문재인 대통령)께서 이렇게 문전박대하실 줄은 몰랐다"고 농을 쳤다.

사측과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대해선 진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김 지도위원은 "(지난해) 국회 국감 때 문성현 위원장이나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 말이 입발린 소리로 드러났다. 수백 명, 수천 명의 복직도 아니고 김진숙 단 한 사람"이라며 "들어가서 일할 기간이 10년, 20년 남은 것도 아니고 하루 들어가서 밥 한끼 먹고 내발로 걸어 나오고 싶단 건데, 이렇게 안 된단 건 '무능하거나, 립서비스거나' 둘 중 하나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입사 후 명예퇴직'과 8천만 원의 '위로금'을 제시한 한진중공업에 대해선 "제게 직접 전달한 제안도 아니다. 또 재입사란 건 복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며 "위로금도 임원들이 모금해서 주겠다고 하는데, 그들은 저를 얼마나 원망하겠나. 그건 책임이 아니라 적선"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심지어 저랑 같이 해고된 사람들도 복직했는데, 이들도 민사소송에서 패소한 사람들"이라며 "유독 저만 (복직을) 반대하는 것에 대한 명분이 없다"고 비판했다.

김진숙 지도위원 측 제공
매서운 한파를 뚫고 가는 강행군이지만, 혼자 걷는 길이 아님도 느낀다. 그는 "70대 노부부가 곶감을 들고 오시기도 하고, 누군지 다 신분을 밝히지는 않지만 (일행 중) 절반 정도는 그런 시민 분들"이라며 "며칠 전엔 공사장에서 추락사한 고(故) 김태규씨의 누나(김도현씨)와 어머니가 오셔서 투쟁기금을 주고 가셨다"고 말했다. 한국마사회 故 문중원 기수의 부인 오은주씨와 세월호 유족들, 제주 강정의 활동가들도 다녀갔다.

26세의 해고노동자로 김 지도위원을 처음 만나 곁을 지켜온 황이라 부장은 "특히 해고자들 같은 경우 다들 김진숙만의 문제가 아니라 마치 자기 일처럼 생각하셔서 오신다. 저 또한 복직을 못했고, 투쟁도 중간에 포기했지만 지도위원님이 복직하면 뭔가 보상받는 느낌이 들 것 같다"고 토로했다.

◇"국가폭력에는 공소시효가 없다…정부가 '결자해지'해야"

도보행진 현장을 찾은 문정현 신부와 포옹하는 김진숙 지도위원. 김 지도위원 측 제공
김 지도위원의 종착지에서도 연대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김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올랐을 당시 그를 지지하는 '희망버스'를 처음으로 기획한 송경동 시인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송 시인은 희망버스를 타고 집회와 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불법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지난 2019년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송 시인은 청와대 앞에서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요구하며 46일째 단식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애초 7명이 단식에 나섰지만, 장기화되는 단식에 몸은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서영섭 신부가 최근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에 실려 갔고, 지난달 30일에는 성미선 녹색당 공동위원장이 긴급이송됐다. 현장의 단식자는 이제 세 사람뿐이다. 송 시인과 권리찾기유니온 김우 활동가, 금속노조 부양지부 정홍형 수석부지부장이 남았다.

송 시인은 "코로나19 상황이 겹치면서 목숨을 거는 호소의 방법이 아니면 사회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방법이 없었다"며 "상식적으로 풀려야 할 문제가 풀리지 않으니 단식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진숙의 복직은 단순히 개인의 복직이 아니다"라며 "노동의 가치, 노동에 대한 존중이 어떻게 이 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라고 정의했다.

일각에서는 김 지도위원의 정년이 끝난 점을 들며 '무리한 요구'라는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이에 대해 송 시인은 "국가폭력에 의한 부당해고의 진실을 바로잡는 데는 시효가 없다"며 "정년이 넘어 더 이상 들어가 일은 할 수 없더라도, 사측이 분명히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이미 김 지도위원의 '부당해고'가 사회적으로 인정된 만큼, 정부 차원의 해결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진중공업은 김 지도위원과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에 재채용과 위로금 지급을 제안했지만, 노조가 이를 거부했다는 입장이다. 형평성과 노사 합의, 업무상 배임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의 성의를 보였지만, 김 지도위원 측과의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1986년 김 지도위원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사법부 판결이 나왔고, 2010년 김 지도위원이 스스로 재심을 취하한 만큼 법적 의무는 없다고도 덧붙였다.

송 시인은 "김 지도위원의 해고과정에서는 '경찰 조사를 받는 자'라는 게 명분이 됐다. 국가도 절반 이상의 책임이 있다"며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노사문제라며 '우리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고 할 게 아니다.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김 지도위원이 문 대통령을 향해 썼던 편지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김 지도위원이 문 대통령에게 '우리는 여전히 동지인가, 함께 최루탄을 맞던 동료의 눈빛은 여전한가'라고 물었다. 하지만 청와대가 만나주지를 않으니 도무지 확인할 수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오히려 무응답과 무대응이 일종의 답변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면서도 "이 싸움이 지는 싸움, 실패한 싸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 희망뚜벅이가 끝나더라도 저희는 또 현장으로 돌아가 새로운 전투를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촉구하며 모인 '리멤버 희망버스 기획단'은 5일 박병석 국회의장을 만나 면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자리엔 송 시인을 비롯해 송경용 신부, 김호규 민주노총 금속노조위원장이 참석해 △김 지도위원 복직을 위한 국회 차원의 노력 △국가폭력에 의한 부당해고에 대한 국회의 입장 표명 △민주화운동 인정자에 대한 해고기간 임금 지급(민주화보상법 개정) 등을 요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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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차민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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