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48] 구룡포 모리국수
원조 집이 그렇듯 모리국수도 언제 누가 시작했는지 분명치 않다. 분명한 것은 잊힌 모리국수가 향토 음식으로 재탄생해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 계기는 구룡포 시인 권선희가 우연히 겨우 명맥을 잇던 모리국수 맛을 보고 너무 반해 2004년 인터넷 신문에 소개하면서다. 시인의 감성으로 기억과 추억이 될 음식을 불러냈다. 지금은 시장 골목에 10여 집의 모리국수 집이 문을 열어 모리국수 거리를 만들었다. 고령으로 운영이 어려워 문을 닫았던 집도 가족이 문을 열었다.
모리국수는 해물로 육수를 만든다. 고춧가루를 넣어 얼큰하게 한 냄비를 끓여 먹어야 제대로 맛을 낼 수 있다. 뱃사람들 허기를 달래는 데 안성맞춤이다. 그날 잡은 생선 중 남은 것을 넣고 국수와 함께 끓인 것이 시작이다. 돈이 되는 것들은 상인이나 소비자들에게 넘기고 남은 명태, 아귀, 등가시치(장치), 미거지(곰치) 등을 넣었다. 모두 머리가 몸통보다 크고, 비린내가 적고 국물을 내기 좋다. 지금은 아귀를 많이 사용하며, 상품성이 떨어지는 홍게와 홍합을 더하기도 한다.
이제 알려진 모리국수 집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혼자서 자리를 차지할 수 없어, 2인분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모리국수의 모리는 ‘모디’ 먹는다, 팔고 남은 해산물을 ‘모디’ 넣어 끓였다 해서 불리는 이름이란다. ‘모디’는 모두를 의미하는 구룡포말이다. 일제강점기 ‘모리(森)’에서 온 말이라는 설도 있다. 국숫집 주인에게 자꾸 이름을 물어보자 ‘내도 모린다’ 해서 붙여졌다는 말도 있다.
한때 구룡포에 국수 공장이 여덟 개나 있었다. 지금은 한 개만 남아 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국수와 해산물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음식이다. 주민들은 비싼 공장 국수 대신에 칼국수를 넣어 만들어 먹었다. 이제 모리국수를 먹던 뱃사람은 외국인으로 바뀌었다. 모리국수 집은 선원들 대신에 여행객 차지가 되었다. 선원이든 여행객이든 찾는 사람이 있다면 모리국수는 계속 진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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