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더 소중한 나눔의 사랑..15년 동안 가득 찬 '화수분 쌀뒤주'

강현석 기자 2020. 12. 2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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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금호1동 '착한 이웃들'

[경향신문]

광주 서구 금호1동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된 ‘사랑의 쌀뒤주’에서 강선주 금호1동 보장협의체 위원장(오른쪽)과 유종천 사무국장이 뒤주 안에 모인 쌀을 들어보이고 있다. 2006년 1월 설치된 뒤주는 15년을 이어오고 있다. 강현석 기자
복지센터 현관에 ‘뒤주’ 설치
1.5㎏씩 포장된 쌀 봉투 수북
착한가게 50여곳 월 3만원씩
매달 총 후원금 200만원 넘어

3만4882명. 뒤주가 내어준 쌀로 그동안 따뜻한 밥을 지어 먹은 사람들이다. 광주 서구 금호1동 ‘사랑의 쌀뒤주’가 15년을 이어오고 있다. 2006년 1월 처음 쌀을 채웠던 뒤주는 지금껏 한 번도 바닥을 보이지 않았다. 뒤주를 채우기 위해 금호1동에는 ‘착한 이웃들’이 늘어났다. 낡은 뒤주는 나눔의 의미를 일깨우며 온 동네를 먹여살리고 있다.

지난 17일 광주 서구 금호1동행정복지센터 현관 앞.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낡은 뒤주 뚜껑을 열자 비닐봉지에 1.5㎏씩 포장된 쌀이 들어 있었다. 뒤주를 들여다본 강선주 금호1동보장협의체 위원장과 유종천 사무국장은 “매번 쌀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뒤주는 ‘미안해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고 따듯한 밥을 지어 드시라’는 취지로 처음 생겼다. 영구임대아파트가 밀집한 금호1동은 광주 서구에서 두 번째로 국민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이 많이 산다. 급한 사정으로 끼니를 해결하기 힘들어진 사람들은 눈치보지 않고 뒤주의 쌀을 이용하면 된다.

광주 서구 금호1동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된 ‘사랑의 쌀뒤주’ 앞에 쌀을 받아가려는 주민들이 줄을 서 있다. 금호1동행정복지센터 제공
금융위기 때에도 빈 적 없어
취약계층 등 200여명 이용

첫 설치는 동행정복지센터에서 했지만 2015년부터는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금호1동보장협의체에서 운영하고 있다. 쌀을 가져갈 수 있는 매주 화요일이면 150~200여명의 어려운 이웃들이 찾는다. 2008년 국제 금융위기 때에도, 코로나19가 대유행하고 있는 올해에도 뒤주는 빈 적이 없다. 그동안 뒤주를 채운 쌀은 7만9500㎏에 달한다. 20㎏들이 쌀 3975포대에 이르는 양이다.

뒤주에서 시작된 나눔은 온 동네로 확산되고 있다. 뒤주를 채우기 위해 금호1동에는 착한 이웃들이 늘어났다. 보장협의체에 매월 3만원 이상을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착한가게’는 50여곳이나 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기부하는 사람도 185명이다. 매월 모이는 후원금은 200만원이 넘는다. 수능이 치러진 지난 3일에는 형편이 어려운 수험생들을 위해 주민들이 직접 도시락을 쌌다. 소불고기 반찬 등 정성껏 마련한 보온도시락과 손난로, 간식은 수험생을 고사장까지 데려다줄 ‘콜택시’에 실렸다. 용돈을 받아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매월 5만원의 용돈을 주는 ‘키다리아저씨’도 주민들이다. 혼자 사는 남성들을 위해 동네 가게에서 반찬을 구입할 수 있는 쿠폰을 지급하거나, 가족과 단절된 노인들의 집을 직접 찾아가 생일잔치도 해준다.

많은 동네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이웃을 위한 후원사업이 중단됐지만 금호1동보장협의체는 당초 계획한 11개 복지 사업을 모두 진행하고 있다. 송성숙 금호1동 맞춤형복지계장은 “다들 힘든 시기인데도 기부를 중단한 주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유 사무국장은 “생일잔치 때는 방문자 수를 줄이고, 반찬 전달은 미리 연락해 현관문에 걸어두는 식으로 비대면 지원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면서 “우리를 기다리는 이웃들이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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