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료 멈춤법? 직접지급?.. "선진국은 임차인 도우면서 임대인도 고려"
정부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영업에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에게 임대료 지원금을 직접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자영업자의 임대료 부담을 임대인이 나누도록 강제하는 이른바 ‘임대료 멈춤법’을 입법하겠다고 나섰다가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을 부채질한다는 비판을 샀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원하고 임대인이 거드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1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은 오는 1월 지급하는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 3차 재난지원금에 임대료 지원금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7일 "집합금지업종이나 제한업종의 부담이 더욱 더 커진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이 같은 부담을 덜어드릴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해 지금 관계부처 내에서 검토되는 이번 피해 지원 대책 내용에 포함해 함께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료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의 여파로 자영업자가 어려워진 것과 관련해 "(자영업자들의) 영업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임대료 부담까지 고스란히 짊어지는 것이 공정하냐는 물음이 매우 뼈아프다"고 지적하면서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입법 대응에 나섰다.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집합제한 업종의 임대료 50% 감면과 집합금지 업종의 임대료를 100% 면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임대료 멈춤법’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코로나19 같은 전대미문의 상황에서는 임대인의 재산권을 공공복리와 상생 차원에서 일부 제한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이 의원의 주장이었다.
이후 재산권 침해 등 위헌 가능성까지 거론되자 민주당은 한 걸음 물러난 모습이다. 민주당은 비공개회의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에 직접 임대료를 지원하거나 임대료를 깎아주는 임대인에 대한 세제 혜택을 강화하는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의 종식 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만큼 일시적으로 임대료를 직접 지원하는 것은 단기 처방에 그칠 수 있다. 임대료를 강제로 깎는 것은 부작용이 크다는 문제가 있다.
전문가들은 임대인과 임차인의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설계된 해외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식당 같은 식음료업종의 포장 판매만 허용하고 마트 등 유통업체까지 영업을 중단하는 ‘셧다운’까지 시행한 각국에서는 지속 가능한 지원책을 고안해 여럿 내놓은 바 있다. 특히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임대료 문제에 대응하는 미국과 호주 등을 보면 임대인의 희생만 요구하는 방향은 아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시의 경우 시 차원에서 ‘코로나19 임대료 안정 기금’을 마련했다. 소상공인이 임대료 지원을 신청하면 보스턴시가 임대료를 임대인에게 송금하는 방식이다.
보스턴시는 중견 기업이나 타격이 덜한 소상공인까지 무분별하게 지원금을 받거나, 임대료를 보조 받은 이후에 폐업하는 등 지원 효과가 떨어지지 않도록 자격 기준과 한도를 구체적으로 정했다. 구체적으로는 직원 수 35명 미만 △연 매출 150만달러(한화 약 16억5000만원) 미만 △식음료·유통·대면서비스·예술 업종으로 기준을 정했다.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거나 임대료 부담이 없는 주택 영업자는 신청할 수 없고, 지원 한도는 1만5000달러다. 임대료 지원을 받은 이후에는 12개월 이상 임대차 계약을 유지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는 임대인을 보호하는 효과도 노린 조처다.
호주 퀸즈랜드주 정부의 경우 ‘코로나19 비상대책법안’의 일부로 ‘소상공인·자영업자 임대료 규정’을 마련했다. 일률적으로 임대료 경감 의무를 부과하는 대신, 임대인과 임차인이 협의하도록 기준을 만들었다.
이 규정에 따르면 2019-2020년 회계연도의 매출이 5000만호주달러(한화 약 416억원) 미만인 중소기업은 임대인에게 임대료 협상을 요청할 수 있다. 임차인이 임대료 협상을 청구하면 △정보 공유 △임대인이 경감 방안 제안 △임대인과 임차인 협상 △합의 등 단계를 밟는다. 임차인이 매출 하락 등 상황 외에도 임대인의 경제적인 상황까지 고려해, 임대료 삭감 규모와 기간, 임대료 할인 방식 등을 협의하는 게 골자다.
영국 정부가 지난 6월 도입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상업용 부동산 임대차 규약’ 역시 법적인 강제력을 부과하는 대신 임대인과 임차인의 자발적인 참여와 합의를 강조한다. 영국 정부는 임차인과 임대인이 임대료 문제로 합의하지 못할 때는 제3자가 협상을 중재해 임대차인 양쪽이 부담을 나누도록 권고한다. 정부가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에게 영업 중단에 따른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지원금을 지급하면서 임차인도 임대료와 영업 관련 지출, 보험금 등을 성실히 납부할 책임이 있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전문가 단체인 CCIM(Certified Commercial Investment Member)협회는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단순히 임대료를 삭감하는 것 외에 납부일을 늦추는 지불 연기, 임대료를 대출로 전환하는 방식, 보증금 일부를 임대료로 받는 방식, 전대 등 여러 방안을 상황에 맞게 활용하길 권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행한 ‘2020년 조세 정책 개혁’ 보고서를 보면, 회원국 정부들은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가계에 대한 직·간접적인 지원 외에도 법인세 감면과 납부 유예 등으로 세 부담을 경감하는 지원책을 시행했다.
물론 정부가 그동안 상가 임대료 문제에 마냥 손을 놓았던 것도 아니다. 오는 2021년 6월까지 연장한 ‘착한 임대인 세액 공제’는 임대료를 인하한 금액의 50%를 법인세·소득세에서 감면해주는 정책이다. 다만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사업자등록을 한 부동산 임대사업자’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영세 임대인들에게는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 지난 9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면서 임대인은 임대료가 6개월 이상 연체되지 않으면 계약 해지를 요구할 수 없게 됐고, 앞서 개정된 시행령에 따라 임대료 인상폭도 연 5%로 제한받고 있다. 이는 영세 임대인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부작용이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앞서 시행한 ‘착한 임대인’ 운동의 참여율이 저조한 이유는 임대료를 감면해준 임대인에 대한 세제 혜택이 적었기 때문"이라면서 "건물주, 상가소유자라도 대출 부담이 있거나 임대료 수익으로 생활하는 경우도 많은만큼 ‘임대료 멈춤’을 요구하려면 정부도 임대인의 재산세 환급이나 건물 매매시 양도소득세 감면 등으로 경제적인 부담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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