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을 떠나 보내는 제부도 일몰 여행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최현태 2020. 12. 21.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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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찾아 떠나는 전곡 마리나
스산하면서도 낭만적인 고정리 겨울 풍경
긴 여운 남기는 '노을 성지' 제부도 제비꼬리길
마지막 붉은 열정을 태우는 석양 그래서 아름답구나
제부도 등대엔 "2021년 넌 희망을 비추는 빛이 될거야"
전곡 마리나
프리덤(freedom).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오랫동안 정박한 새하얀 요트는 자유롭게 바다 위를 날고 싶다. 갈매기 조너선 리빙스턴처럼 순풍에 활짝 돛을 펴고. 바람이 이끄는 대로 키를 잡는 선장. 따사로운 햇살이 눈부신 바다 한가운데로 미끄러지듯 요트가 나아가는 풍경. 해질 무렵 닿은 낯선 항구도시에서 새로운 이들을 마주하며 펼쳐지는 축제의 시간들. 하지만 요트는 ‘자유’라는 이름과 달리 오늘도 제자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날고 싶은 요트의 자유를 앗아갔다. 한 해가 저물가는 12월 중순 ‘요트의 천국’ 전곡항에 섰다. 코로나19가 끝나는 그날, 프리덤을 타고 바다 위를 자유롭게 항해하는 풍경을 그려본다.
전곡 마리나 요트
전곡 마리나 육상계류장
#자유를 찾아 떠나는 전곡 마리나
이탈리아 나폴리 항구를 닮았다. 그리스 크레타섬 베네치안 항구 같기도 하다. 요트 수백척이 바다를 빼곡하게 채운 낭만 가득한 경기도 화성 전곡항 풍경은 매우 이국적이다. 푸른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선 하얀 배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처음 해외의 멋진 항구로 여행 온 듯 심장이 두근거린다. 육상 계류장에는 보수작업 중인 요트들이 선체 밑동까지 드러내고 줄지어 섰다. 엄마의 손을 잡은 꼬마는 “와 배 밑은 이렇게 생겼구나” 하며 신기한 듯 요리조리 살핀다.
전곡 마리나 빨간 등대
전곡 마리나 포토존
아직은 상쾌한 바닷바람을 즐기며 해안을 따라 걷는다. 영문 ‘MARINA’로 만든 예쁜 조형물을 만나면 항구 전체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는 포토존이다. 맞은편에는 전곡항마리나 클럽하우스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오르면 아름다운 항구와 요트, 주변 섬들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사진을 찍고 보니 저 멀리 전곡항의 마스코트인 빨간 등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누에섬과 탄도항 풍력발전기
탄도항 풍력발전기
누에섬과 탄도항 풍력발전기등대산책로 중간쯤에 도착하면 또 다른 풍경이 기다린다. 왼쪽으로 깎아지른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선 제부도가 신비롭게 떠 있고 정면에는 해넘이 명소로 손꼽히는 누에섬이 바다에 누웠다. 그 옆에는 안산 탄도항의 그림 같은 풍력발전기 3기가 서해 바람을 맞으며 힘차게 날개를 돌린다. 땅도 아니고 바다에 세워진 거대한 풍력발전기라니. 강원도 산꼭대기에서나 볼 수 있는 풍력발전기가 푸른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선 모습은 매우 이색적이다.
2009년 전곡항 개장 때부터 화성시가 요트 체험과 교육 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했지만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모두 중단됐다. 다만 몇몇 일반 업체에서 운영하는 요트체험을 즐길 수 있다. 요트체험을 하지 않아도 좋다. 그림 같은 항구를 눈에 가득 담으며 산책하고 예쁜 요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도 전곡항 여행은 충분히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긴다.
고정리 공룡알화석 산지 산책로
#스산하면서도 낭만적인 고정리 겨울 풍경
전곡항 가는 길에 겨울 내내 비슷한 모습을 유지하는 호젓한 산책로가 있다. 고정리 공룡알화석 산지다. 어려운 공룡 이름을 줄줄 외우는 아이들이나 부모를 졸라 가는 곳 같지만 다양한 연령대의 여행자들이 찾는다. 화석 산지까지 이어지는 1.5km가량의 산책로를 따라 갈대 등이 광활하게 펼쳐져 가을인 듯, 겨울인 듯 스산하면서도 낭만적인 풍경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오솔길 양쪽은 하얀 소금을 머금은 염습지가 광활하게 펼쳐졌고 나문재, 산조풀, 칠면초, 띠, 통통마디 등 다양한 한해살이와 여러해살이풀들이 들판을 꾸민다. 바람이 불자 빛바랜 풀들이 “사각사각” 부대끼며 배경음악을 깔아 줘 천천히 걸으며 머리를 식히기 좋다.
고정리 공룡알화석 산지 산책로
원래 이곳은 바다였다. 1994년 시화호 물막이 공사로 물이 서서히 빠지면서 우음도와 닭섬 등이 육지가 됐고 염습지와 함께 독특한 풍경이 탄생했다. 덕분에 약 1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 공룡들의 집단서식지도 모습을 드러냈다. 퇴적층 9개 지점에서 알둥지 30여개와 공룡 알 화석 200여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보고된 뿔공룡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 화석이 발견됐다. 산책로 중간의 포토존을 지나 끝까지 가면 누드바위, 무명섬, 상한염, 중한염, 하한염, 무명성, 해식동굴 등에 공룡알 화석이 있는데 잘 찾아야 보인다.
궁평리해변 바다 산책로
궁평리 해변 바다산책로
#긴 여운 남기는 ‘노을 성지’ 제부도 제비꼬리길
다사다난했던 2020년이 저문다. 코로나19 때문에 모두가 힘들게 한 해를 보냈지만 아직도 많은 날들을 힘겹게 버텨야 한다. 서해안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여행지로 인기가 높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섬들 사이로 떨어지며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노을 명소들이 많아서다. 제부도와 궁평항이 대표적이다. 특히 하루에 두 차례 바닷길 2.3km가 열리는 제부도는 ‘일몰의 성지’다. 제부꼬리길과 제부해변길을 따라 걸으며 감상하는 낙조는 다른 곳과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낭만적이다.
궁평리 해변
해지기 전 제부도 해안을 천천히 둘러보며 즐기려고 서둘러 바닷길이 이어지는 제부교차로 삼거리로 향한다. 시간은 오후 3시. 그런데 교차로 50m 전부터 정체된 차들이 20분이 지나도 꼼짝하지 않는다. 한참을 기다리다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혹시 아직 길이 안 열렸나. 반신반의하며 ‘물때’를 확인해 보니 오후 4시36분이 되어야 바닷길이 열린다.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기에 때맞춰 다시 오기로 하고 20분 거리의 궁평항으로 차를 돌린다. 제부도 바닷길 통행시간은 화성도시공사 제부도관리팀(031-355-3924)과 바닷길통제소(031-355-1831, 3964)가 전화와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하고 있으니 반드시 물때를 확인해야 낭패를 당하지 않는다.
화성8경 중 하나가 ‘궁평 낙조’일 정도로 궁평항도 서해안의 소문난 일몰 명소. 해가 떨어질 무렵 방파제 전통 정자에 오르면 국화도, 입파도, 풍도, 도리도 등 섬과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가 펼쳐진다. 궁평항에 도착하니 많은 이들이 방파제쪽보다 오른쪽 바다 위로 난 스카이워크를 따라 걷고 있다. 주차장 입구에서 궁평리 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데크길은 서해 바다와 궁평리 해변의 절벽, 모래사장을 감상하며 걷게 된다. 데크길 끝에는 다양한 먹을거리를 파는 노점상들이 자리 잡았다. 따뜻한 어묵과 국물로 몸을 녹이며 모래사장을 천천히 걸어본다. 궁평리 해변을 따라 조성된 해송군락지에는 1000그루가 넘는 소나무가 심어져 산책하기 좋다.
제부도 바닷길 노을
제부도 바닷길 노을
이제 제부도로 갈 시간. 교차로 삼거리를 느리게 빠져나가 바닷길 입구로 들어서자 이미 해는 기울고 있다. 도로에서 그만 해를 잃을 것 같아 차를 세우고 바닷길 너머 제부도의 낙조를 감상한다. 아름답다. 지는 해는 새섬과 물이 빠져 드러난 갯벌까지 붉게 물들이며 2020년과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린다.
사진 몇장 찍고 서둘러 제부도 선착장에 도착하니 해는 바닷속으로 떨어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아쉬워 제비꼬리길로 들어섰는데 왼쪽 모퉁이를 돌자 노을이 아직 긴 꼬리를 남기고 있다. 동그란 해는 보이지 않지만 수평선에서 위아래로 멀어질수록 농도가 다른 그라데이션이 펼쳐진다. 수채화 같은 풍경은 점점 어두워지며 1시간가량 이어져 산책로를 따라가며 오랫동안 가슴에 아름다운 장면을 새길 수 있다.
제부도 제비꼬리길 노을
제부도 등대 트리
제부도해수욕장 입구까지 갔다가 탑재산 정상을 거쳐 돌아오는 제비꼬리길은 2km로 왕복 1시간 정도 걸린다. 선착장 빨간등대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켜져 커다란 ‘2021’ 숫자를 밝혔다. 그리고 ‘넌 희망을 비추는 빛이 될 거야’라는 덕담도 걸렸다. 백신도 개발됐으니 내년에는 코로나19가 물러가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그래, 새해에는 희망만 가득 비추길 소망한다. 

화성=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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