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컨설팅업체 '박사님' 지도 받으려면 수백만원

장슬기 기자 2020. 12. 1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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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대학원도 사교육이 필요하다 2] 논문컨설팅 업체 측 "지도교수 99% 원래 신경 잘 안쓴다" 석사과정 3~6개월코스 300만~400만원, 박사과정 1년코스 700만~750만원 수준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대학원은 석·박사 학위를 따는 곳이다. 스스로 연구해 나갈 힘을 기르는 기관이란 뜻은 아니다. 때문에 박사학위를 받더라도 해당 학문에 대해 탄탄한 논리를 갖춘 글을 써내지 못하는 이들이 쏟아지고 있다. '학문의 전당'이라고 부르기엔 오래전에 명성이 무너졌고, '학위 장사'라는 표현을 쓰기엔 여전히 매주 페이퍼를 써내는 일부 대학원생들이나 계절 변화도 잊은 채 연구에 매진하는 교수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미디어오늘은 2회에 걸쳐 학생유치에만 신경 쓸 뿐 제대로 된 연구자를 배출하는데 무관심한 대학원 현실에 대해 조명한다. - 편집자주

“고3도 사교육 하잖아요. 공부는 혼자 하는 거지만, 과외선생님은 수능 잘 보는 법을 알려줘요. 그래서 컨설팅을 받는 거죠. 대학원에선 논문을 잘 쓰는법 안 알려줘요. 논문은 경험이 중요해요. 키워드만 나오면 어떤 연구방법을 쓰고 어떤 내용을 넣어야 하는지 '박사님'께서 명확하게 아는 거죠. 체계적으로 작성할 수 있게 시간도 줄이면서 맞나 틀리나 하는 부분을 '박사님'이 잡아주죠.”

논문컨설팅 A업체 관계자에게 문의해 받은 답변 중 일부다. '박사님'은 논문컨설팅 업체에서 대학원생을 지도할 1:1 과외선생님을 말한다. A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박사님'은 박사학위만 받았을 뿐 아니라 연구실적이 어느 정도 이상인지 검증까지 해서 선발한 선생님이다. 이에 각 전공별로 '박사님'을 구하지 못한 업체는 퇴출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A업체 관계자는 논문주제를 어떻게 선정하고 대학원 생활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을 꼼꼼하게 설명했다.

“지도교수님이나 학교에서 원하는 방향이 있는데 거기에 연구자가 맞춰 가는 것이지 논문은 내가 쓰고싶은 걸 쓰는 게 아닙니다. 교수와 싸우고 학위 포기한 분들 생각보다 많아요. 군대 선임이다 생각하고 그냥 교수님께서 하라는 거 하고, 지도교수님과 사이가 틀어지면 안 돼요. 큰 틀은 저희가 잡아드릴 거예요.”

▲ 공부하는 모습. 사진=pixabay

A업체는 석사의 경우 지도교수가 선정된 2학기말이나 3학기초부터 논문컨설팅 시작을 권했고, B업체는 지도교수 선정 전이라면 미리 논문컨설팅을 받아 연구계획서를 작성한 뒤 지도교수를 접촉하는 쪽을 권했다.

대부분 논문컨설팅 업체에선 논문에 필요한 통계학 수업을 개설해놨지만 컨설팅을 받으면 통계학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였다.

A업체 관계자는 “질적연구는 증명하기 위해 논리적 구조가 필요해 시간도 많이 필요하지만 양적연구하면 쉽다”며 “통계는 (대신) 돌려준다. 통계학 전공 아니면 지도교수들도 통계분석 전문가에게 맡긴다”고 했다. B업체 관계자는 “주제선정, 목차잡기는 우리랑 같이하면 되고 선행연구도 (논문을) 찾아주니까 (학생은) 읽고 정리만 하면 된다”며 “연구방법을 양적으로 할지 질적으로 할지, 데이터 분석을 우리 박사님이 할지에 따라 비용 차이는 있다”고 말했다.

▲ 한 논문컨설팅 업체 홈페이지에 나온 컨설팅 진행 개요

논문컨설팅 업체들은 대필이 아니고 대학원생이 직접 논문을 작성할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점을 강조했다.

A업체 관계자는 “6개월가량 1주일에 한시간씩 박사님과 수업하는데 그날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할 시간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B업체 관계자는 “3개월, 좋은 논문쓰려면 6개월은 필요하다”며 “우리는 하루에 4시간씩 공부할 시간 못 내면 엉망인 논문이 나올 수밖에 없어서 계약을 안 한다”고 말했다. B업체도 '박사님'과 주 1~2시간씩 수업하고, 작성하다 온라인으로 첨삭받을 수 있다고 했다.

대학원과 업계의 민낯을 말해주기도 했다.

A업체 관계자는 “어느 정도는 써준다는 업체도 있고, 4주면 끝낸다는 업체도 있는데 무조건 걸러야 한다”며 “2~3년 전에는 그렇게 짜깁기해서 통과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 그러는 건 돈만 받아먹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B업체 관계자는 “우리보다 싸게 해주겠다는 곳들도 있는데 싸게 대충해서 (논문) 질을 떨어뜨릴 순 없어서 더 싸게는 못 한다”고 말했다.

B업체는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가 외국인 학생들이 쓴 논문들을 자신들 업체에 교정을 의뢰했다고도 했다. 한글로 글쓰기가 서툴기 때문에 아예 대학원 차원에서 교수들이 심사하기 전에 업체에 논문을 봐달라고 요청한다는 말이다.

대학가엔 일부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대필이나 이러한 논문컨설팅을 알선하는 경우도 있다고 알려졌다. A업체 관계자는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 과외받는 걸 다 알지만 (과외를) 추천하거나 그렇진 않죠. 컨설팅 받는 거 자체를 좋아하는 교수는 거의 없을 거다”라면서도 “일부 대학에서 논문컨설팅 업체를 소개하는 분들도 간혹 있다. (지도하기) 귀찮아서”라고 말했다.

비용은 석사의 경우 두 업체 모두 300만~400만원, 박사의 경우 700~750만원 수준이라고 했다. A업체 관계자는 “(10여년전) 초창기에는 연구자 전공과 잘 맞지도 않았는데도 2000만~3000만원씩 했다”며 “지금은 경쟁업체가 생기면서 비용이 안정됐다”고 말했다.

개인차는 있지만 박사의 경우 수업을 1년 정도 듣는다. 석사 때 컨설팅을 받았더라도 겨우 논문 한편 썼을 뿐이고 박사과정 수준으로 올리면서 연구방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박사과정에서도 컨설팅이 필요하다고 안내했다. 장기간의 지도가 아닌 논문교정만 요청할 경우 난이도에 따라 시간당 1만5000원에서 10만원 사이였다.

▲ 한 논문컨설팅 업체에 올라온 자사 홍보내용.

논문컨설팅 업체가 우후죽순 생겼다는 건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사립대 기준 한 학기 500만원 넘는 등록금을 내고도 해결이 안 되는 대학원생이 많다는 뜻이다. A업체 관계자는 “지도교수는 99%가 원래 (논문지도에) 신경을 잘 안 쓴다”며 “그런 부분 때문에 마음 상하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 교수는 석박사 제자들 논문을 제대로 지도하려면 한 학기에 두명, 4학기 기준으로 보면 여덟명까지 받아야지, 이를 초과할 경우 버겁다고 했다. 학부와 대학원 수업 준비, 각종 학회활동이나 학과업무, 승진을 위한 논문작성시간 등이 필요해서다.

지도제자가 많을 경우 물리적으로 제자들의 논문을 꼼꼼하게 봐주기 어렵다. 더구나 최근 학부에서 논리적 글쓰기를 체계적으로 배워오는 경우가 드물고, 외국 유학생들도 있어 서울 소재 대학의 대학원생이라 하더라도 기초적인 글쓰기부터 지도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미디어오늘은 수도권의 일부 대학에서 교수들이 석박사 지도제자를 몇 명씩 받았는지 올해 2학기 기준으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경희대와 한양대는 일반대학원 자료를 각각 비공개, 정보부존재 처리했다. 세종대는 모든 자료를 비공개했다.)

숙명여대 일반대학원 김아무개 교수는 석사 5명과 박사 39명 등 총 제자가 44명으로 가장 많았다. 차아무개 교수는 총 43명(석사 24명, 박사 19명), 최아무개 교수는 33명(석사 5명, 박사 29명) 등 지도제자 10명이 넘는 교수가 일반대학원에만 20명이었다.

경기대는 관광전문대학원 김아무개 교수의 제자가 21명(석사 9명, 박사 13명), 정치전문대학원 박아무개 교수는 14명(석사 3명, 박사 11명) 등 지도제자 10명이 넘는 교수가 5명이었다.

경희대는 교육대학원의 경우 소속 교수가 8명인데 교수 3명에겐 지도제자가 한 명도 없었다. 나머지 교수들은 각각 제자가 41명, 35명, 18명, 11명, 5명으로 나타났다. 이 대학원엔 논문을 쓰지 않고 논문대체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도 있어 이를 감안해야 하지만 일부 교수의 경우 제자가 많다고 볼 수 있다.

한양대는 석사과정만 있는 국제관광대학원에서 현아무개 교수의 제자가 25명, 김아무개 교수 18명, 정아무개 교수 17명 등으로 나타났다. 이 대학원은 테크니컬페이퍼를 제출해 논문을 대체하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야 하지만 이 역시 교수의 지도가 필요한 과정이다.

이처럼 최근 대학원들이 논문을 쓰지 않아도 학위를 주는 코스를 만드는 추세다. 이 역시 논문쓰기가 벅찬 학생, 논문지도를 안 해도 되는 교수, 그럼에도 등록금은 받아야 하는 대학 등 삼자가 만든 '학위장사'의 현장이다.

▲ 대학 도서관 모습. 사진=pixabay

요약하면 현재 일부 지도교수는 논문을 꼼꼼하게 봐주기엔 객관적으로 제자 수가 많다. 논문컨설팅 업체의 주장이나 대학원생들의 원성처럼 지도교수가 너무 바쁘거나, 심지어 귀찮아서 지도에 소극적인 사례까지 추가하면 교수와 대학은 '석박사 사교육시장'을 만든 공범에서 빠질 수 없다.

B업체에 '박사님'들은 한 학기에 학생을 지도하는지 물었다. “한학기 3명만 받기 때문에 기다리는 회원들이 많다”고 답했다. 해당 관계자는 상담을 마치면서 문자 한통을 보냈다. B업체 블로그에 올라 온 논문작성팁, 논문작성을 위한 무료 강좌, 유료 동영상 등 세 개의 링크를 포함한 친절한 문자였다.

유치원생부터 박사과정까지 사교육이 필수가 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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