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섬사람도 '대한민국 국민' 똑같은 복지 누려야죠"

김용희 2020. 12. 9.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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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한국섬주민연합중앙회 이정호 초대회장
이정호 한국섬주민연합중앙회 회장이 지난 8일 추자도로 돌아가기 위해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 광주공항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김용희 기자

올해 9월 전남 목포에서 한국섬주민연합중앙회(이하 중앙회)가 창립했다. 우리나라의 섬은 지난해 국가통계포털(KOSIS) 조사에서 3952개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유인도 470개의 섬 주민 103만명을 대표하는 사단법인이 생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해 최북단 인천 백령도부터 최서남단 전남 가거도, 최남단 제주 마라도, 동해 울릉도까지 각 지역과 문화, 생활방식이 다르지만 섬 주민들이 중앙회를 만든 이유는 하나였다. 육지 주민과 똑같은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지난 8일 사단법인 등록을 위해 광주를 방문한 이정호(68) 초대 중앙회장을 만나 섬 주민들이 겪었던 애환과 활동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11대째 제주 추자도 살아온 섬사람 지난 9월 ‘섬주민연합회’ 창립 주도 전국 섬 돌며 권익단체 필요성 설득 100여개 유인도 참여 사단법인 등록

여객선 공영제·전문의 상주 ‘절실’ “섬진흥원 설립 법안 통과에 기대”

이정호 회장을 비롯한 한국섬주민연합중앙회 회원들이 7일 전남 목포시에 있는 중앙회 사무실에서 회의를 열고 섬지역 개선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한국섬주민연합중앙회 제공

“창립총회를 하고 행정안전부 허가까지 나왔지만 후속 절차가 남아있어 바쁘게 다니고 있습니다. 사단법인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네요.”

이날 오후 광주공항에서 만난 이 회장은 두꺼운 서류뭉치가 든 가방을 내려놓으며 심호흡을 했다. 제주 추자도에 살고 있는 그는 전날 중앙회 사무실이 있는 전남 목포로 건너와 목포세무서에 중앙회의 사업자등록 신청을 하며 사단법인 설립을 위한 마지막 절차를 마치고 제주도를 거쳐 추자로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중앙회가 설립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매년 8월8일을 ‘섬의 날’로 지정한다는 내용이 담긴 ‘도서개발촉진법’ 개정안이 2018년 통과되며 이듬해 2월 전국 섬의 65%가 몰려 있는 전남 목포와 신안을 중심으로 섬지역 교통과 의료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전국섬주민협의회’ 등 민간단체가 만들어졌다. 같은 해 8월 정부 주관으로 목포에서 열린 ‘제1회 섬의 날’ 기념행사 때 전국 104개 섬에서 참가한 주민 400여명은 전국섬주민협의회를 계승한 전국단위 사단법인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자고 결의했다. 지난 7월에는 협희회 대표단이 경남 거제시를 방문해 ‘지심도 주민 강제 이주 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7월31일 경남 거제 지심도를 방문한 이정호(앞줄 왼쪽 세째) 회장이 전국섬주민협의회 이름으로 거제시의 지심도 주민 강제이주 계획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한국섬주민연합중앙회 제공

전국섬주민협의회 대표를 맡았던 이 회장이 사단법인 발기인 모집부터 섬 주민 조직화, 정관 작업, 설립취지문 작성, 법률 검토 등을 주도했다. 올해 6월 서울에서 한차례 총회를 열었지만 코로나19와 준비 부족으로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시름에 빠지기도 했다. 이 회장은 “뿔뿔이 떨어져 있는 섬 주민들의 생각을 한 데 모으기란 쉽지 않았다. 꾸준히 찾아다니고 사단법인의 필요성을 설명한 끝에 역량을 결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중앙회가 창립됐지만 현안은 끝이 없었다. 이 회장은 교통문제를 첫째로 꼽았다.

“올해 5월 백령도에서 20대 산모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강풍 때문에 의료헬기와 배가 뜨지 못해 결국 출혈과다로 숨지고 말았어요. 보건소에는 전문의가 없어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육지의 큰병원으로 가야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조금이라도 바람이 세거나 파도가 높으면 여객선이 운항하지 않습니다. 섬사람들은 가족들이 죽어가는 걸 지켜봐야만 하는 현실이죠.”

조기잡이 배를 운영하는 이 회장 역시 출산이 임박한 선원 부인을 여객선에 태워 육지로 이송하다 배 안에서 출산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또 만 65살 이상 육지 주민들은 버스나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고 있지만 섬 주민들은 제값을 주고 여객선을 이용해야 하는 등 보편적 복지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먼바다에 있는 섬사람들은 한번 육지에 나오려면 일주일을 허비해야 합니다. 일기예보가 100% 맞는 건 아니니까 병원 예약 등 약속 시각을 지키려면 3일 전부터 기상 상황을 확인하고 하루나 이틀 정도 여유를 가지고 출발해야 해요. 귀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기상상황이 좋아도 여객선들은 승객이 적으면 적자를 이유로 결항하기도 합니다. 모든 국민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여객선을 이용할 수 있도록 공영제가 도입돼야 합니다.”

중앙회 설립 이후 반가운 소식도 들렸다. 국회는 섬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 정책수립을 하는 ‘한국섬진흥원’ 설립을 위한 ‘도서개발촉진법’ 개정안을 지난 1일 통과시켰다.

“그동안 유인도는 행정안전부, 무인도는 해양수산부가 관리하고, 국토교통부와 환경부도 관할하는 부분이 많아요. 한국섬진흥원이 생기면 한 곳에서 업무 처리가 가능하게 됩니다. 앞으로 정부가 진흥원 설립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할 때 반드시 섬 주민을 포함해 달라고 요구할 방침입니다. 지금까지 섬 주민들은 소외당했지만 후대는 섬 출신이라는 게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겠습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바로가기 : 8월8일은 왜 ‘섬의 날’이 됐을까?

http://www.hani.co.kr/arti/area/area_general/8782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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