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삼킨 두꺼비는 어떻게 됐을까

한겨레 2020. 12. 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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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애니멀피플] 이강운의 홀로세 곤충기
피부 변하며 1주일 뒤 죽어..천적 앞 빛으로 존재 과시 이유 있었다
움직이는 것은 뭐든 공격하는 두꺼비가 늦반딧불이를 삼켰다. 치명적 독성을 모르는 듯했다.

아들, 딸 내외와 손녀, 손자가 힘을 합쳐 다섯 달 겨울철 양식인 김장을 했다. 직접 농사지은 배추와 무를 사용했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거든 아이들 손길 때문에 더욱 맛이 있을 것이다. 금개구리, 물장군을 비롯한 300여 종 생물들도 온도, 습도와 광주기를 맞춰놓은 인큐베이터를 가동하면서 월동 준비를 마쳤다.

가족과 함께 하는 김장. 사람의 월동 준비다.
온도, 습도, 빛을 맞춘 인큐베이터에서 월동 중인 물장군.

사람과 곤충의 겨울 채비를 끝내고 한시름 놓으니 문득 펑펑 내리는 눈이 그리워지는데, 눈 대신 찬바람 불며 춥기만 하다. 7일은 눈이 펑펑 내린다는 겨울의 대표적 절기인 대설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반짝이 신발’의 불빛을 보거나 바람에 흔들리는 불빛만 봐도 ‘와, 반딧불이!’ 라고 외치는 손녀가 햇살에 반짝이는 하얀 눈발을 보면서도 ‘반딧불이야, 반딧불이! ‘ 하고 외칠까?

무엇이 이 어린아이에게 넋을 잃고 황홀한 기분에 빠지는 크나큰 감동을 주었을까? 아마 지난여름 풀 끝에 앉은 반딧불이가 반짝반짝 어둠을 밝히며 손녀에게 곁을 주었던 추억과 엄마와 함께 책에서만 보았던 반딧불이를 직접 만나면서 강렬하게 기억되었던 것 같다.

자연 속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 와서 온갖 종류의 생물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을 봐 왔고, 특히 자주 만나는 벌레를 귀하게 여기는 것 같다. 십수 년 벌레를 지키느라 애 써왔는데, 벌레가 준 고난을 기쁨으로 되돌려 주고 있다.

손위의 반딧불이를 보고 있는 손녀.

반짝이는 걸 보기만 하면 끄집어내어 반딧불이라 하는 손녀를 보면서 내 마음속에 있던 감성을 끄집어내 본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그저 그런 벌레라고 생각하다가도, 아무런 기계 장치 없이 산소만 있으면 제힘으로 빛을 만들어 반짝반짝 빛나는 반딧불이는 자연 세계에 있는 어떤 신성한 존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애반딧불이
파파리반딧불이

최고로 사랑받는 곤충! 벌레와 교감하며 수십 년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반딧불이를 마주할 때마다 신비로운 자연 현상에 빠져든다. 여름밤 산속에서 반딧불이 불빛을 쫓아 다니다가 그 녀석들을 잡아 손바닥에 올려놓고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경이로움을 느끼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스스로 불을 만들어 주위를 밝게 비춰주는 온화하고 사랑스러운 생명체….

늦반딧불이

그러나 이슬만 먹을 것 같던 반딧불이 애벌레가 달팽이를 포악하게 잡아먹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매혹적인 불꽃 뒤에 숨은 뜻하지 않은 잔인함을 발견한다. 반딧불이도 치열한 생존 경쟁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먹어야 하며 다만 효율적인 육식을 택한 것인데, 어째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반딧불이는 달팽이의 말랑말랑한 속살을 지독히 좋아하는 집요한 사냥꾼이다.

달팽이 잡아먹는 늦반딧불이 애벌레.

기호와 문자로 만든 인간의 언어 체계와는 차이가 있지만 다른 모든 생물도 서로 의사를 전달하면서 삶을 영위한다. 특히 곤충들의 언어는 매우 특별해서 독특한 울림인 소리나 주파수로 짝을 찾는 메뚜기 종류의 노랫소리가 있고, 종마다 특이한 화학 물질인 페로몬을 소통 방법으로 사용하는 나방이 있다. 청각과 화학적 신호로 교신하는 종류들과 달리 반딧불이는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빛을 이용한 시각으로 의사소통한다.

메뚜기목의 땅강아지.
페로몬에 이끌려 짝짓기하는 유리산누에나방.

곤충들의 언어는 대부분 짝을 찾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반딧불이도 밝은 불빛을 이용해 잠재적 배우자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사랑을 구한다. 그러나 깜깜한 밤의 불빛이란 주변의 모든 생물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위험한 표현 방법이다. 박쥐, 두꺼비를 비롯한 야행성의 배고픈 식충동물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어찌 그렇게 겁 없이 눈에 확 띄는 불빛으로 자기 위치를 알릴까?

반딧불이의 빛은 짝짓기를 위한 통신 수단인 것은 분명히 알겠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알이나 번데기, 애벌레는 왜 빛을 내는 걸까? 북아메리카 동부의 포투리스(Photuris) 속의 반딧불이는 루시부파긴이라는 독성물질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방어 무기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알에 물려주어 발광을 통해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메커니즘으로 유명하다.

루시부파긴(Lucibufagin)은 ‘빛을 가져오다’라는 뜻의 라틴어 ‘루시퍼(Lucifer)’와 두꺼비 속(屬)의 Bufo를 합쳐 만든 합성어다. 즉 두꺼비 피부에서 분비되는 독성물질인 부포톡신(bufotoxin) 같은 독성을 지닌, 빛이 나는 독성물질을 뜻한다. 반딧불이의 빛이 보내는 화학적 메시지를 무시하고 덥석 삼킨 천적은 바로 죽는다. 미국에서 애완 도마뱀인 비어드 드래곤이 포투리스속 반딧불이를 먹고 죽은 유명한 사례가 있다.

아직까지 한반도 반딧불이의 독성에 관한 보고서나 논문은 없다. 하지만 알, 애벌레, 번데기, 어른 시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빛을 발하고 있으므로 아마도 독성을 내재하고 있지 않을까 예측할 수 있었고, 밤에 어슬렁거리며 움직이는 것은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두꺼비가 좋은 실험 재료였다.

반짝거리며 움직이는 늦반딧불이를 보자마자 두꺼비는 냉큼 삼켰다. 별 탈 없이 잘 먹은 것 같았는데 잠시 후 격렬하게 머리를 흔들기 시작했고 고통스러운지 자꾸만 입을 벌린다. 몸속의 후끈거리는 열을 식히려는 듯 모래 속으로 몸을 파고 들어가 눈만 껌뻑껌뻑한다.

일주일 뒤 4개체의 늦반딧불이를 먹은 2마리의 두꺼비가 피부가 변하며 서서히 죽어갔다. 북아메리카 동부의 반딧불이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한반도의 반딧불이도 짝을 유인하는 불빛이 자신을 방어하는 무기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간단한 실험으로 반딧불이의 독성을 증명했지만 먹자마자 단박에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치명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제한된 결과일 뿐으로 아직 한반도 반딧불이의 독성에 관한 퍼즐 조각은 완전히 맞추지 못했다. 그러나 심층적 연구를 진행하면 이미 밝혀진 ‘루시부파긴’으로 제조하는 심장약처럼 효능 있는 신약 재료를 추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다만 한 가지! 반딧불이에 대한 손녀의 감동이 깨지면 어떻게 하지?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 소장

두꺼비를 통한 반딧불이 독성 실험 동영상(홀로세곤충방송국 힙(H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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