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강산에 부귀까지".. 조선 최고의 '꿀보직' 평안감사

강구열 2020. 12. 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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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광정연회도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자기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억지로 시킬 수 없다는 의미의 속담.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

왜 ‘평안감사’였을까. 조선시대 평안도의 군사, 사법, 행정을 총괄한 종2품 관찰사의 자리, 지금으로 치면 도지사인 그 자리는 어째서 ‘좋은 일’의 대명사로 통했을까.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평안平安’에 출품된 ‘평안감사향연도’(平安監司饗宴圖) 세 점(연광정연회도·부벽루연회도·월야선유도)에는 평안감사의 위상과 권위, 당대 사람들의 인식이 담겨 있다. 또 평안감사의 부임을 환영하는 화면 속에 백성들이 주요 요소로 등장한 것에 선한 정치에 대한 깊은 바람이 드러난다.

◆평안감사, “제일강산에 부귀까지 겸하여”

“평안도는 넓은 지역으로 부유함과 화려함이 나라에서 으뜸이다. 예로부터 재상 중에서 내직을 마다하고 외직을 머무르고자 한 사람은 항상 이곳을 거쳐 갔다.”
부벽루연회도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길을 닦은 김조순의 평가다. 당대 최고권력자조차 조선 최고의 ‘꿀보직’으로 평가한 평안감사의 매력은 부유함과 화려함에서 비롯된다.  

무엇보다 평안도는 경제적인 위상이 높았다. 상업, 금융업 등의 발달로 8도 중 가장 번영했다. 나라의 가장 큰 손님이던 중국 사신을 접대하기 위한 향연이 많았고,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한 군사요충지로서의 성격 때문에 세금을 중앙에 보내지 않고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권한도 있었다. 평안감사의 권한 아래 있는 돈의 규모가 다른 지방 감사의 그것을 압도하는 건 당연했다.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평안감사의 한 해 수입이 24만 냥인데 그 절반은 공적인 용도로 쓰였다”고 전했다. 박물관은 “평안감사 개인 몫으로 쓰인 12만 냥은 19세기 초반 상납미 3만석을 구매할 수 있는 거금이었다”며 “조선시대 쌀 한석을 약 90L의 무게로 비정하고 올해 쌀값과 단순비교해보면 평안감사의 연봉은 지금 화폐 가치로 약 64∼65억원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런 자리인지라 선발기준이 엄격했다. 평안감사의 추천은 조선전기에는 인사를 담당하는 이조에서 했으나 후기에는 국정을 총괄한 비변사가 맡았다. 비변사가 삼정승, 6조의 책임자인 판서들, 군문(軍門) 대장 등으로 구성되었던 만큼 평안감사의 정치적 입지가 한층 강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에 평안감사는 각 도의 군사를 지휘하는 도체찰사, 군량의 관리와 운반을 감독하는 관향사까지 겸직해 정치적 권한이 한층 커졌다. 
부벽루연회도 속 기생의 공연 모습. 
평양이 ‘천하제일강산’이라 불린 풍광과 풍류를 가진 곳이라는 점도 평안감사의 큰 매력이었다.      

평안감사향연도 중 월야선유도의 배경이 된 대동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평양팔경은 역대 임금들의 유람지였고, 사대부들도 시 한 수 지어 아름다움을 높였던 곳이다. 연광정연회도의 연광정은 최고의 전망대라는 수식어가 붙은 관서팔경의 하나였고, 부벽루연회도의 부벽루는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더불어 조선 3대 누정으로 꼽혔다.  

평양의 풍류 중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기생이다. 손꼽히는 여행지이자 중국사진의 경유지였던 만큼 연회가 자주 열렸고, 이를 담당했던 기생들의 명성이 높았다. 그들은 단순한 시중, 접대에만 머물지 않고 연회의 격을 높이는 예술가의 역할도 했다. 18세기 후반 한재락이 지은 ‘녹파잡기’는 명성이 자자했던 평양기생들의 이름, 외모에 각자의 뛰어난 재능을 자세히 기술해 평양기생이 자부했던 ‘예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부벽루연회도에는 ‘헌선도’, ‘포구락’, ‘처용무’, ‘검무’, ‘무고’를 공연하는 기생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 눈길을 끈다.  
연광정연회도의 저잣거리
◆함께 잔치를 즐긴 백성, 착한 정치에 대한 기대의 표출
그림의 성격상 평안감사향연도에서 평안감사와 그 주변의 지배층에 눈길이 먼저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연회에 참여하고, 즐기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은 백성들의 존재감도 꽤 크다. ‘당신을 믿을 테니 잘 다스려달라’고 말하는 듯하고, 평양의 번영이 지배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백성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바람을 담고 있는 듯하다. 백성들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그림을 보는 재미를 더하며, “기록화와 풍속화로서의 성격을” 보여주기도 한다.   
술 취한 구경꾼과 싸움하는 아이들
연광정연회도는 평양의 상점가를 묘사하고 있다. 대동문 근처에는 담배가게가 영업 중이고 물지게꾼, 봇짐을 진 나그네, 이야기를 나누는 사령, 할머니 손을 잡고 거리로 나온 아이 등이 거리를 채웠다.
부벽루연회도는 다양한 구경꾼들의 모습이 재밌다. 연회장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 주의를 듣는 사람, 손주을 업은 할머니, 연회를 핑계삼아 술판을 벌인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미 고주망태가 되어 부축을 받는 선비, 싸움을 벌이는 아이들과 뜯어말리는 어른들의 모습은 미소를 짓게 한다.  
월야선유도
월야선유도에서는 횃불을 들고 성벽과 백사장을 따라 길어선 백성들의 모습이 단연 눈에 띈다. 이 그림에 표현된 횃불의 갯수는 371개. 국상 발인 때 쓰이는 횃불이 500개, 야간 군사 훈련에 쓰이는 게 1000개 정도였다고 한다. 신임 감사를 맞기 위해 대동강에서 벌이는 이 행사의 규모가 대단히 크고 성대했음을 알 수 있다. 박물관 양수미 학예연구사는 “전통시대 금기의 시간이었던 밤에 횃불로 펼쳐 보이는 광경은 특별한 시각적 경험이었을 것”이라며 “월야선유도 속 환상적인 밤 풍경은 경제적 번영을 누린 평양이었기에 선사할 수 있었던 모습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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