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특집] 백덕산 르포.. 눈꽃 대신 두툼한 낙엽 밟으며 '악' 소리 났지만 정상에 서니 "와~"

글 손수원 기자 2020. 11. 2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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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원사~신선바위~백덕산~흥원사 약 8.5km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넓은 평상 같은 신선바위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 산행팀.
영월은 강의 고장이자 산의 고장이다. 구봉대산을 비롯해 잣봉, 선바위산, 삼방산, 봉래산 등 깊은 산이 즐비하다. 강원도의 산답게 산세가 험하고 골짜기도 깊다. 그래서일까, 영월에는 과거 유독 화전민이 많았고, 광산도 많았다. 지금에야 모두 옛 이야기가 되었지만 영월의 산만은 오롯이 그 자리에 남아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다. 그 산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산이 백덕산白德山(1,350.1m)이다.
백덕산은 겨울에 인기가 좋은 산이다. 영월군 수주면과 평창군 방림면, 횡성군 안흥면의 경계를 이루며 솟아 오른 백덕산은 해발 1,000m 내외의 주능선을 따라 눈꽃이 절경을 이룬다. 또한 정상에서 보는 강원 내륙 산간의 조망 또한 장관이다. 주변에 높이를 견줄 산이 없어 치악산은 물론, 청옥산, 가리왕산 등도 훤히 보인다.
백덕산 산행은 주로 평창의 문재에서 시작한다. 해발 740m부터 시작하기에 정상까지 비교적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백덕산은 영월 쪽에서 오르는 것이 정석이다. 흥원사(구 관음사)를 기점으로 원점회귀 산행을 하면 신선바위를 지나간다. 문재 쪽에서 올라오면 마주하지 못하는 곳이다. 이 신선바위에서 바라보는 조망 하나 때문에라도 영월 쪽에서 올라야 할 이유가 생긴다.
약 4m 높이의 신선바위는 줄을 잡고 올라가야 한다.
치악산보다 험한 악산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11월 초, 백덕산 산행에 나섰다. 눈꽃을 만나기엔 이른 시기지만 푹신한 낙엽을 밝고 오르는 재미가 있다. 이번 산행에는 윤지승 영월군청 기획혁신실 공보통계팀장과 양희용 종합민원실 차량등록팀장, 백준희 주민복지과 희망복지지원팀장이 함께했다.
“악산입니다. 큰 산岳山이기도 하고, 험한 산惡山이기도 하지요.”
산꾼 포스를 뿜어내는 양희용 팀장이 처음부터 겁을 준다. 자신의 경험상 아마 치악산보다 험한 산일 거라고 말한다. 약 5km 거리 만에 900여 m의 표고차를 극복해야 한다. 제법 까탈스런 바위도 난관이다.
“그래도 총 거리가 9km가 채 되지 않으니 할 만합니다.”
‘병 주고 약 주는’ 양 팀장의 말만 믿고 출발한다. 아니나 다를까, 시작부터 깔딱고개다. 몸이 적응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주변엔 키 큰 소나무가 빼곡한데 그걸 볼 여유조차 없다.
“소나무를 잘 보세요. 곳곳에 껍질이 까진 것이 보이죠? 옛날에 송진을 채취하느라 그런 겁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은 송탄유松炭油를 얻기 위해 한국인을 강제로 동원해 송진을 채취하게 했다. 일제의 점령에서 벗어난 이후 1970년대까지 송진은 산골 농가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송진은 비누, 종이, 광택제, 잉크, 접착제, 방수제 등 공업용품을 만들기 위한 재료였기 때문이다. 배고프던 시절, 소나무 껍질을 벗겨 속살의 물기를 빨아먹으며 허기를 달랬던 것은 우리의 아픈 역사다.
신선바위 위에서 바둑 대신 모델 포즈를 취해 본다.
신선이 바둑 두던 신선바위
가파른 오르막을 계속 오르다 보니 신선바위와 만난다. 밧줄을 잡고 4~5m 정도 기어오르니 평상을 닮은 넓적바위다. 사방으로 펼쳐지는 조망이 장관이다. 서쪽 사자산~구봉대산 능선 뒤로 치악산 비로봉의 모습이 뚜렷하다. 과연 신선이 유유자적 바둑 두면서 세월을 낚을 자리다.
“옛날 옛적에 백덕산에 흰 수염 신선과 검은 수염 신선이 살았는데, 둘은 이 신선바위에 올라 바둑을 두곤 했답니다. 한 번은 나무하러 온 마을 청년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둑 구경을 하다가 보니 도끼자루가 썩어 있더랍니다. 도끼가 망가졌으니 나무를 할 수 없지요. ‘에이, 저 놈의 바둑판 때문에!’ 라며 법흥사가 있는 곳으로 냅다 던져 버렸답니다. 그 이후로는 신선바위에 신선들이 오지 않았답니다.”
바위에 앉아 양 팀장의 구수한 입담으로 신선바위 전설을 듣고 있자니 하늘에 무언가가 휙휙 날아다닌다.
“에어쇼를 하는 공군 특수비행팀이 이 부근에서 훈련을 합니다. 신선바위에 앉아서 바둑 대신 에어쇼 구경도 하고 좋아요. 하하.”
넓은 바위에서 한껏 여유를 즐기다 다시 정상으로 길을 잇는다.주능선길이지만 여전히 오르막이 이어진다. 그래도 험로 구간엔 철 계단을 설치해 두었다. 영월군이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인 백덕산에 꽤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능선 길에 살얼음이 조금씩 보이더니 이내 눈길로 바뀌어 버렸다. 이틀 전에 비가 내렸다더니 그게 눈이었나보다. 가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눈 구경부터 한다. 과연 강원도의 악산답다.
“백덕산이 눈꽃으로 유명한 이유가 있어요. 이 근방에서 가장 높기도 하거니와 북서풍을 정면으로 맞는 위치에 있거든요. 기온이 낮고 눈이 많으니 눈꽃이 얼마나 예쁘겠어요.”
백준희 팀장도 백덕산 눈꽃 마니아란다. 영월에 사는 사람조차 백덕산 눈꽃을 찬양하니 외지인 눈에는 말할 것도 없겠다.
다행히 눈이 얼어붙지는 않아 아이젠을 찰 정도는 아니었지만 눈 아래 낙엽, 낙엽 아래 숨은 작은 바위가 계속 발목을 괴롭힌다. 한 번이라도 발을 잘 못 디디면 발목을 삐기에 딱 좋다.
정신없이 걷다 보니 촛대바위가 마중 나와 있다. 아까 신선바위에서 바둑판을 버렸던 청년들이 나중에 후회하면서 신선들이 다시 돌아오게 해 달라고 빈 곳이 바로 이 촛대바위란다. 소원을 빌면 한 가지는 들어 준다고 하는데, 이 순간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지 몰라 얼레벌레 ‘로또나 되게 해 주세요’라고 빌었다. 은근슬쩍 가장 큰 소원을 빌어버렸으니 이루어지기는 글렀다.
늦가을,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길을 걷는 영월군청 백준희 희망복지지원팀장과 윤지승 공보통계팀장.
영월 최고의 조망산행지, 겨울엔 화려한 눈꽃 산으로
촛대바위 근처에 등산로가 하나 보인다. 들머리인 흥원사에서 고인돌계곡을 따라 오르면 이쪽으로 닿는다. 계곡길은 평탄하지만 막판 주능선에 오르기 위한 경사가 장난이 아니란다.
“지금 식사를 하면 좋은데 정상 부근에 경사가 급해서 밥 먹고 오르기엔 좀 힘들 거 같아요. 배고프더라도 조금만 힘냅시다.”
윤지승 팀장이 “이제 조금만 가면 정상”이라며 힘을 북돋아 준다. 조금 더 진행하자 백덕산 정상이 눈앞이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 하지만 함정이 있다. 한 번 쭉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야 한다. 힘을 쥐어짠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신선바위의 광활한 공간과 달리 이곳은 좁다. 하지만 조망이 정말 끝내주게 멋있다. 북쪽으로는 청태산, 대미산, 장미산, 승두봉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북서쪽 아래로 작은당재~당재~문재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눈에 조망된다.
©동아지도 제공
동쪽으로는 청옥산 육백마지기의 풍력발전소가 뚜렷하게 보인다. 그 뒤로 솟은 가리왕산의 위용도 일품이다. 남동쪽 멀리 보이는 굵은 산줄기는 구룡산~선달산에서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다.
남서쪽에는 구봉대산과 사자산 아래로 법흥리계곡이 아기자기하게 내려앉아 있다. 서쪽에는 치악산 비로봉이 우뚝 솟아 있다. 사방으로 그려진 산그리메를 넋을 놓고 보고 있다가 번쩍 정신을 차리니 배꼽시계가 세차게 울린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하산한다. 조망은 정상에서 끝났다. 이제는 가파르게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500m 정도 거리에 있는 용바위에서 마지막으로 휴식하고 계곡까지 내리 걸었다. 줄 난간을 잡고 내려서야 하는 등 경사가 꽤 가파른 편이지만 위험하지는 않다. 다만 햇볕이 들지 않는 북사면엔 눈이 제법 쌓여 신경이 곤두선다.
제단 터를 지나 계곡 삼거리에 닿는다. 이제야 내리막길이 끝난다. 이제부터는 걷기 좋은 숲길이다. 그동안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던 백덕산의 나무들을 마음껏 둘러본다. 도중에 설통바위와 만난다. 예전엔 이 바위 부근에 양봉을 위한 벌통이 많았단다. 그래서 일명 ‘벌통바위’라고도 부른다. 설통바위 부근에 동굴 같은 곳이 있어 무엇인가 했더니 광산 입구다.
백덕산 정상은 뾰족하고 좁은 공간이지만 파노라마 조망이 펼쳐진다. 멀리 청옥산 육백마지기의 풍력발전소가 보인다.
“이 법흥계곡에 광산이 있었어요. 텅스텐이라고 하죠, 중석重石을 캐던 광산이었어요.”
영월의 중석광산은 주로 상동에 몰려 있었는데 이 외진 곳에도 광산이 있었다니 조금은 의외였다.
흥원사를 지나며 산행을 마친다. ‘짧지만 굵은’ 산행이었다. 영월 최고의 조망산행지란 말은 정말이었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 되면 눈꽃이 만발할 것이다. 그때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화려한 산으로 변해 또 다른 산행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올겨울, 영월에 와야 할 분명한 이유다.
산행길잡이
산행들머리는 흥원사(구 관음사) 입구 상류펜션 주차장이다. 등산객에게 하루 4,000원(버스 1만 원)의 주차료를 받는다. 현금 또는 계좌이체만 가능. 들머리는 상류펜션 방향으로 잡는다. 출발점은 두 방향으로 나뉜다. 왼쪽은 고인돌계곡을 지나 촛대바위로 올라가는 코스(2.4km), 오른쪽은 신선바위 방향이다.
신선바위 방향으로 오르기 시작하면 정상까지 줄곧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처음 1.2km 구간은 경사도가 32%에 달한다. 신선바위까지 경사가 만만치 않다. 길은 뚜렷한 편이나 낙엽이 많이 쌓인다. 가끔 바위 구간이 나타나지만 로프를 잡고 오르거나 우회할 수 있다.
신선바위는 4m 정도 높이인데, 로프를 잡고 올라갈 수 있다. 바위 위는 넓고 평평하다. 사방으로 조망이 빼어나 쉬어가기 좋다. 정면으로 또 하나의 바위가 있다. 뛰어넘거나 기어 내려가서 다시 올라갈 수 있을 듯 보이나 매우 위험하니 건너가지 말도록.
신선바위부터 정상까지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위험 구간엔 철계단을 설치해 두었다. 정상은 조망이 매우 좋지만 공간이 좁아 등산객이 많을 때에는 오래 머물기 어렵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주능선을 따르면 문재 방향이다. 흥원사 방향은 급경사 구간이다. 곳곳에 로프와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백덕산은 늦가을부터 봄까지 눈이 있는 곳이기에 아이젠을 꼭 챙길 것.
교통
영월시외버스터미널에서 주천버스터미널까지 오전 10시에 버스가 한 번 다닌다. 주천에서 택시를 타고 흥원사까지 갈 수 있으나 2만 원 이상 요금이 나온다. 사실상 대중교통으로 들머리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내비게이션에 ‘상류펜션’이나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백년계곡길 194-5’를 검색한다.
숙식(지역번호 033)
법흥계곡 입구에 수주섬모텔(372-0026)과 주천 읍내에 토파즈모텔(372-3588), 주천모텔(372-3358)이 있다. 법흥계곡 내에는 캠핑장이 즐비하다. 야외 사이트와 펜션, 민박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 많다. 솔밭캠프장(010-5483-7066), 정든오토캠프장(010-3267-1388), 영월지구별캠프(0507-1353-4498), 산여울캠핑장(375-2268) 등. 동계 시즌 운영을 쉴 수 있으니 미리 문의할 것.
법흥계곡 내 구봉산장휴게소(374-7177)는 순대국과 양선지해장국, 토종한방백숙 등을 낸다. 이외 심야식당(0507-1347-0217), 산골짜장면(374-910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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