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못할 '과세특' 챙기기

정지은 2020. 11. 19.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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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세특 챙기려면 이번 과제는 신경 좀 써야 되지 않을까." 입시에 열 올리는 고등학생이라면 이 알쏭달쏭한 말을 단번에 알아듣는다.

'과세특'이란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의 줄임말이다.

다만 그것이 문학 과목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인지는 의문이다.

'모든 학생은 모든 과목에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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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그림

“과세특 챙기려면 이번 과제는 신경 좀 써야 되지 않을까.” 입시에 열 올리는 고등학생이라면 이 알쏭달쏭한 말을 단번에 알아듣는다. ‘과세특’이란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의 줄임말이다. 문자 그대로 과목별로 세부능력이나 특기할 만한 사항이 있는 경우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문학 과목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발표나 쓰기 과제 등 수행평가에서 특출한 기량을 발휘했을 때 문학 과세특에 그 내용이 기재된다. 과학 과목이라면 탐구보고서나 실험에 참여한 내용을 기록해줄 수 있다.

그동안 과세특은 필수 입력 항목이 아니었다. 교과성적이나 출결,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같은 항목이 필수적인 반면 과세특은 ‘독서 활동 상황’처럼 해당 사항이 있으면 기록하고 없으면 기록하지 않는 항목이었다. 그런데 올해 중1·2 그리고, 고1·2부터 국영수 및 탐구교과의 경우 전교생에게 과세특을 필수적으로 기재하는 것으로 생활기록부 지침이 개정되었다.

그 결과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하고 있다.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뭐 하나 쥐어짜보려 해도 도저히 ‘세부능력’이나 ‘특기사항’을 찾을 수 없는 학생도 꽤 있기 때문이다. 이건 어떤 학생을 모독하는 것도 아니고 학생의 면면을 제대로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교사의 태만을 지적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 원래 그러하듯 학생들 역시 모든 영역을 골고루 특출하게 잘하기는 힘들기에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얘는 그냥 ‘○○○(과목 이름) 수업을 들었음’이라고 쓸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어떤 선생님이 한숨 쉬며 말하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특기할 사항이라고는 매 수업 시간에 빠짐없이 엎드려 잤다는 것뿐인데 생활기록부에 그렇게 쓸 수는 없잖습니까.” 남 일이 아니므로 다들 웃음 섞인 한숨을 공유했다. 물론 그렇게 기재하는 교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활동이나 과제에 전혀 참여하지 않은 학생이라 할지라도 교실에 앉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 그는 모종의 노력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점을 최대한 높이 평가한다면 예를 들어 ‘‘한 학기 한 권 읽기’ 활동에서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를 선택하여 읽으려고 노력하였으며 토론에도 참여했음’ 정도로 기록할 수 있겠다. 다만 그것이 문학 과목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인지는 의문이다.

모든 학생이 모든 과목에 세부능력과 특기사항 있어야 하나

굳이 전교생 기록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을까에 대해선 강한 회의가 든다. 솔직히 말해보자. ‘복붙(복사하기+붙여넣기)’을 지양하라는 지침에 따라 약간의 ‘성형’을 한다 해도 ‘사실상 복붙’이 불가피한 경우가 상당할 것이다. 특기할 만한 사항이나 해당 과목의 세부능력이 있다고 판단하기 곤란한 학생들의 경우다. 이는 생기부를 작성하는 고교 교사 처지에서나 그것을 걸러내는 대학 측 입학사정관 처지에서나 대단히 소모적이다.

그보다 더 나쁜 점은 이것이 비인간적이고 비교육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은 모든 과목에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 말이다. 모든 학생이 주요 과목들에 빠짐없이 특기할 만한 어떤 것을 지녀야 한다는 전제는 숨 막힌다. 언젠가 체육 수업을 참관한 적이 있었다. 내 문학 수업 시간에 생명력 없이 축 늘어져 있던 부진 학생들이 체육관을 날아다니는 모습은 경탄스러웠다. 그들의 체육 과목 과세특과 문학 과목 과세특은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그것이 현실이며 입학 사정에도 효율적이다.

정지은 (서울 신서고등학교 교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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