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내 종교는 효도교, 어머니 눈물값으로 산다" 임지호 셰프

김지수 문화전문기자 2020. 11. 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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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모의 혈육이라도 만날까, 음식 보시하며 유랑"
"식생활에서 가난 두려워 말라, 결핍 즐겨야"
"고맙게 먹고 있나? 입으로 지은 복만큼 맛 느껴"
"방역보다 면역… 채소 과일, 껍질 버리지 말라"
"요리사는 평정심 유지… 맛은 있다가도 없는 것"

들꽃같은 방랑식객. 영화 ‘밥정'과 MBN 새 예능 ‘더 먹고 가'에서 힐링 밥상을 차려내는 임지호 셰프./사진=고운호 기자

어느 가을, 토요일 아침, 충무로 극장에서 영화 ‘밥정’을 보았다. 들꽃과 사랑으로 버무린 임지호의 진수성찬을 어둠 속에서 홀로 받아 먹자니, 벌어진 입속으로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솟구쳐 올랐다.

참하게 말하면 자연요리 연구가, 직설로 말하면 ‘방랑식객’인 임지호. 그가 바다로 산골짜기로 헤매다 길에서 만난 어머니들과 들풀 뜯어 밥해 먹는 이 이야기는, ‘힐링’이라는 얌전한 말로는 설명이 안 된다.

구부정한 노인을 따라 집으로 들어온 나그네는, 담장 아래 낮은 풀을 뜯어 박박 치대고 지글지글 튀기고 꾹꾹 반죽하고 썩썩 칼질해서, 개다리소반에 근사한 수라상을 차려낸다. 개망초 된장국, 괭이밥 떡, 찔레꽃 국수… 카메라가 거의 아무런 개입 없이 담아내는 그 노동의 풍경은 할 말을 잃게 한다.

산 중턱 평상에서 잣솔방울로 국물 낸 칼국수를 깨끗이 비운 노인이 임지호의 손을 잡고 말한다. "우리가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어 당신이 우리한테 밥을 해주고 가는가?"

"맛있다! 참 맛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할머니들은 틀니를 오물거리며 복스럽게 드셨다. 산안개가 스크린을 자욱하게 덮을 때면, 나는 ‘맛있다' ‘고맙다'를 연발하는 노인의 말이 입가에 고여, 나도 모르게 침을 흘리며 입맛을 다셨다.

생모와 길러준 어머니, 길에서 만난 어머니… 세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가 시골 빈집에서 제사 음식을 만드는 장면에서는 사흘 내내 비가 내렸다. 긴 툇마루에 흰 종이를 깔고, 홀로 새벽까지 음식을 만들던 그는 문지방에 엎드려 까무룩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그는 그리던 어머니를 만났을까?

임지호를 만나러 갔다. 그가 운영하는 한식당 ‘산당'은 강화도 끝에 있었다. 나지막한 산, 바다와 갯벌, 갈대숲과 저수지가 있는 그곳에서 임지호는 축지법 쓰듯 땅 위를 스치고 다녔다. 바람이 그의 몸을 들어 옮기듯 뻘 밭 위로 가뿐히 미끄러져 갔다. 정확한 포즈로 과녁 안에 들어왔다 나가는 그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에, 사진기자는 감탄하며 셔터를 눌렀다.

수련과 숙련이 쌓인 몸, 방랑과 정주를 오가는 기민한 몸이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강호동과 MBN에서 곧 시작할 음식예능 ‘더 먹고 가’를 촬영했다고 했다. 코로나 쇼크로 기운 빠진 사람들을 초대해 산동네 부엌에서 ‘칭찬 밥상’을 차려줄 계획이라고.

생각해보면 빈자도 부자도 아이도 노인도 다 그의 밥을 좋아했다. 재벌 회장도, 여배우도 그의 밥상을 받고 눈물을 쏟았다. 자연의 성품과 인간의 슬픔을 헤아리는 임지호의 밥상은 그의 몸을 도구로 이끼, 풀, 돌, 꽃이 연주하는 화해의 칸타타처럼 보였다.

여섯 살 때 아버지에게 천자문을 배웠다. 12살에 가출 후 밤마다 서양철학과 예술, 전쟁, 사회사를 읽으며 독학했다. 거지에게 기술을 배우라는 말을 듣고 요리에 인생을 걸었다./사진=고운호 기자

"밥은 먹었어요?"로 말문을 연 인터뷰는 "밥 먹고 갈래요?"로 끝이 났다. 인터뷰 내내 입에서 우전차 향이 은은했고, 금방 꺾어온 들꽃의 짙은 향기가 헐거운 공기를 채웠다. 그가 대화 중에 가장 많이 한 말은 ‘온전히 바라본다’였다.

-이젠 완전히 정착한 건가요?

"네. 제가 섬을 좋아합니다. (갑자기 노래를 흥얼거리며)‘나는 술잔에 떠 있는 한 개의 섬이다...' 장사익 선생의 노래 ‘섬'도 참 좋아해요. 겨울 바다에 시리도록 푸르게 떠 있는 게 섬이잖아요."

-섬과 자신을 동일시하는군요.

"여기가 강화도 끝이에요. 바다가 있고 민물이 있고 뻘이 있고, 남쪽과 북쪽의 산이 다 있어요. 섬은 외롭고 순박하고 풍성해요. 어릴 적 집 나와서 헤맬 때, 섬에서 많이 울었어요. 섬이 눈물 쏟는 나를 받아줬어요."

오래 알던 사람처럼, 노래하듯 말하는 게 신기했다. 장사익, 임동창, 정태춘 같은 풍류가객들이 그의 음식에 반하는 이유를 알겠다.

-‘방랑식객'으로 이름을 날릴 때부터 보아왔어요. 주류 세계의 정해진 독법으로는 선생을 설명할 길이 없더군요. 이번 영화 ‘밥정'은 먹이는 자와 먹는 자가 분리되지 않고, 다 하나로 연결돼 보여서 신비로웠어요.

"허허. 사랑이 충만하죠. 나는 산과 바다와 들에서 나오는 걸 다 취해서 먹여요. 특히 땅에서 나는 건 다 축복이에요. 생명을 끊지 않고 담아냈으니 축복의 밥상이죠."

-다큐멘터리 ‘스시 장인 지로'나 ‘엘 불리;요리는 진행 중'의 분자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는, 요리를 성실함과 과학의 세계로 표현합니다. 손님과 요리사의 경계를 분명히 하면서요. 그런데 선생은 선을 넘나들더군요.

"나한테 요리는 자연 그 자체예요. 무얼 먹는가가 그 민족의 철학이잖아요. 한국 음식은 틀이 있어도 자유롭게 넘나들어요. 일본은 시대가 변해도 원형을 보존하죠. 프랑스는 원재료를 해체하고 다시 탑을 쌓기를 반복합니다. 한국 음식은 만든 자의 몫이에요. 그 과정이 다 다르고 나는 그걸 모두 존중해요."

-요즘엔 레시피의 정확성이 강조되는 추세입니다만.

"레시피는 필요 없어요. 요리하는 사람들은 도구일 뿐이거든. 모든 인간은 자궁이라는 기가 막힌 궁전에서 태어난 귀한 황제잖아요. 요리사는 그분들께 밥해주는 온전한 도구예요. 그들이 밥 먹자고 예약하면 그들의 영혼이 나에게로 와서, 만들어 먹는 거예요. 둘이 아니라, 일체예요. 한 몸."

“사람을 따라가면 사랑이 보여요. 안보이면, 그건 생각이라는 장벽 때문이에요. 생각을 걷어내고 보면 모든 생명에는 사랑이 찰랑대죠.”/사진=고운호 기자

내가 매주 시청하는 솔루션 프로그램 ‘골목식당’의 백종원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은 ‘정확한 계량, 정확한 조리’로 유지되는 맛의 일관성이었다. 손님과 요리사의 구분, 돈과 밥의 거래를 생태적 협력으로 치환해버리는 임지호의 말에 나는 당혹감을 느꼈다.

-여하튼 그 도구가 좋아야 할 것 아닙니까?

"도구는 좋다, 나쁘다가 평가할 일이 아닙니다. 얼마만큼 수행이 돼 있느냐죠. 먹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이나 평정심을 유지한 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필요한 건 비장의 레시피가 아니라 5가지 덕목입니다. 첫째, 거짓말하지 않는다. 둘째, 게으름을 버린다. 셋째, 허영심을 버린다. 넷째, 평상심을 유지한다. 다섯째, 매의 눈을 가진다. 재료를 보고 만들 때 매섭게 보고 확인하고 결정하는 데 실수가 없어야 합니다."

-그건 가히 대장금 클래스인데요. 보통 사람에겐 어려운 수행입니다.

"요리사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그걸 원칙으로 삼으면 사는 데 실수가 없을 겁니다. 제가 영화 ‘밥정'에서 제사 음식으로 삼일동안 108플레이트(접시)를 만들잖아요. 음식은 103가지인데, 거기에 5가지 태도가 합쳐져 108가지가 나와요. 제사상이 뭡니까? 우리 몸의 골격과 근육, 피와 살을 이루는 음식으로 상을 차려, 산 자와 죽은 자의 아쉬움을, 못다 한 정을 풀어내는 거예요. 업장소멸이죠."

영화 ‘밥정'의 한장면. 지리산 할머니 김순규와 오손도손.

-밥정은 뭔가요?

"밥을 온전하게 나누는 마음, 어머니가 몸으로 가르쳐준 것이죠. 난 밥정을 이렇게 불러요. ‘나는 당신을 닮으려 합니다.’"

영화 ‘밥정'은 KBS 인간극장과 SBS ‘방랑식객’ 시리즈를 함께 만들며 임지호를 추적해왔던 박혜령 PD가 10년간의 기록에 새로 촬영한 부분을 더해서 만들었다. 배낭을 멘 나그네와 스스럼없이 환대하는 촌로들의 모습은 너무도 자연스러워 내 눈엔 한낮의 꿈처럼 초현실적으로 보였다.

-선생은 계속 누군가를 따라가더군요. 해녀, 지게꾼 할아버지, 나물 캐는 할머니…

"어쩌면 허기가 아니라 그리움을 채우기 위해 사람을 따라가고 밥상을 기다리는 거예요. 어머니가 절기마다 해준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는 거죠. 그리움이 머무는 곳이 음식이에요."

-어떻게 모르는 이를 그렇게 스스럼없이 따라갑니까?

"그분들이 나의 스승이니까요. 저는 길에서 만난 그 한분 한분의 기술을 습득해가요. 나이 많고 적고도 따질 필요도 없어요. 다 나를 비춰보는 거울이니까. 내 어리석음이 줄어들면 그게 행복이잖아요. 그걸 비춰주는 거울이 오래된 사람들이에요."

-마치 자석에 끌려가듯, 그렇게...

"어른을 온전히 바라보면, 자연스레 끌려가요. 몸은 한 치의 오차가 없어요. 입 구(口)자를 봐요. 그게 거대한 문이고 법이에요. 어른 따라가면 "밥은 먹었냐"고 물어봐요. 밥상의 도리엔 빈틈이 없어요."

-과묵한 할아버지가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어서 낯모르는 우리한테 밥상을 차려주고 가는가?"라고 묻는 장면에서, 가슴이 열렸습니다. 먹이는 것이 가장 위대한 보은이구나, 싶었어요.

"하하. 그분이 도인이세요. 지게를 대신 지고 그분을 따라갔죠. 내가 지게를 참 잘 집니다. 7~8살 때부터 내 키에 맞는 지게를 졌어요. 아버지가 맞춰졌죠. 지게를 지면 자연을 익히고 두려움이 덜어져요."

-아버지 생각이 나셨군요!

"네. 저는 아버지가 참 어려웠어요. 제가 2대 독자였는데, 아버지가 연세가 많으셨어요. 친구 아버지가 자전거 타고 가면 ‘우리 아버지는 자전거 타실 수 있을까?’ 슬퍼졌어요. 그런 아버지가 도포 입고 자전거 타고 오면 말할 수 없이 뿌듯했어요. 정자 위에서 바둑을 두시면 ‘아버지가 바둑을 두시네' 멀리서 보며 기뻐했죠."

28살에 아버지를 장터에 모시고 가서 딱 한 번 개장국을 사드렸다고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드시던 게 잊히지 않는다고.

열두 살 때 경북 안동의 집을 나온 그는 라면집과 중국집·요정 등 전국 각지의 식당을 전전하며 요리를 배웠다./사진=고운호 기자

임지호는 안동에서 태어났다. 후처로 들어왔던 생모는 임신한 줄 모르고 집을 떠났다. 그는 세 살 무렵 아버지 집으로 보내졌다. ‘주워온 아이'라는 풍문 속에서, 그는 끈 떨어진 연 같은 마음으로 자랐다. 그리움이 뭔지도 모른 채 그리움을 살았다. 생모는 그를 보낸 얼마 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그 스산한 마음을 어떻게 했습니까?

"들판에서 강가에서 풀어냈어요. 어스름 녘 까지 강에서 물고기 구경하고 오리 새끼 구경하면서요. 어른들이 찾으러 오면 혼날까 봐 겁나서 집 마루 밑에 들어가 숨었어요. 아침에 거미줄 뒤집어쓰고 나오면 동네 사람들이 ‘주워온 자식이라 함부로 한다'고 수군댔어요. 양어머니가 애를 많이 태우셨어요. 돌아가신 후 그게 너무 슬프고 미안해서 장이 다 꼬였어요."

어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져 8년을 누워 계시다 돌아가셨다. 20대의 임지호는 객지를 떠돌다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양어머니는 전주 이씨로 가난해도 꼿꼿했다. 안동포로 길쌈해서 식구들 먹였고, 가을 서리 후엔 고욤나무를 항아리에 넣어 엿처럼 되면 그걸 팔았다. 10원짜리 동전을 칭칭 감아두었다가 어린 임지호의 학용품 값을 빼주시곤 했다.

"언젠가 셋째 누님이 어머니께 ‘왜 막내 때문에 그렇게 가슴 아파하냐’ 물으니, 어머니가 그러시더래요. "낳지 않아도 내 자식이다. 가슴으로 키워서 더 소중하다"고요. 그 말이 길잡이가 돼서 제가 흉한 꼴 안 당하고 살아요. 그 말이 평생 저를 보호했어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생모와도 기억 한 조각이 남았다. "놀고 있는 제게 누군가 다가와 ‘잘 크고 있네'하고는 스쳐 갔어요. 그분이 생모였어요. 그 장면이 평생 안 잊혀요."

인생에 애 닳지 않은 인연이 어딨겠느냐고. 자신의 삶은 어머니의 눈물값이라고 했다.

-종교가 있으신가요?

"종교가 있다면 효도교예요(웃음). 어머니의 눈물값으로 내가 산다는 믿음이지요. 어릴 때 굶는 걸 밥 먹듯이 할 적에 나 자신을 이렇게 위로했어요. ‘임지호, 너는 특별한 인간이라 한 어머니로는 안 돼. 여러 명의 어머니만 널 키울 수 있었던 거야.’ 12살에 집 나와 떠돌아다니면서 제가 서러움을 좀 겪었겠어요. 울면서 노래를 부르며 다녔어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나의 살던 고향은~’.

그래도 연세 많으신 부모님, 출가한 누이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넉넉지 않은 누이 집에 가면 그 집 애들은 계란후라이 먹는데, 나는 외삼촌이라고 안 줬어요. 고작 13살이었는데... 정비공장에서 일하면서 계란 한 판을 사서 삶아 먹었어요. ...그때도 누나를 이해했어요. 내가 민폐가 되면 안 되죠. 어려운 살림에 아이를 키웠으니, 고마울뿐."

출가외인에게 빌붙지 말라는 아버지 말씀 따라, 잠도 누나 집에서 나와 산에서 자던 시절이었다.

그는 생명체의 파장을 손으로 느낀다. 식재료를 순식간에 스케치하고 음식을 디자인한다. 20년 동안 그린 미술 작품으로 국내외에서 여러 번 개인전도 열었다./사진=고운호 기자

-왜 그렇게 방랑을 했나요? 생모가 돌아가신 걸 이미 알았는데도.

"어머니의 혈육이라도 만나지 않을까… 그 기대감 속에 끝없이 돌아다녔어요. 내가 밥해주는 분이 어머니의 친척일 수도 있다… 한 줌 소식이라도 듣지 않을까, 60년을 돌아다녔어. 허허. 영화 ‘밥정'이 만들어지고 나서야 자유로워졌어요. 세상 모든 생명이 어머니로구나. 어머니가 없는 곳이 없구나."

-지금은 고인이 되신 지리산 김순규 할머니와의 인연이 특별합니다. 툇마루에 앉아 서로 "예쁘다"며 쓰다듬어 주는 모습이 곱더군요.

"그 어머니의 순수함이 좋았어요. 음식 드시면 항상 "고맙다" "맛있다"를 잊지 않았어요. 다들 맛있는 음식 먹어도 돈만 주면 그만이잖아요. 먹고 나서 ‘고마움'을 전달하면 입 구(口)의 법에 따라 반드시 고마운 일이 생겨요."

이끼를 채취하는 모습.

-특별히 이끼를 뜯어 만든 수프가 어떤 맛인지 궁금해졌어요(웃음). ‘돌옷(이끼)’은 못 먹는다던 할머니가 함박웃음 지으며 맛나게 드시더군요.

"이끼는 어려운 환경에도 씩씩하게 자라요. 말라 죽는 것 같아도 생명이 유지되고 있어요. 노인들한테 이끼의 강인함을 심어드리고 싶었어요. 이끼의 에너지를 육체에 불어넣는 거죠."

-나물을 무칠 때 매번 손아귀에서 삭삭 바람 소리가 나는 게 신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맛이 일어나는 건가요?

"시계 방향으로 심장의 리듬을 맞춰 힘차게 돌릴 때 좋은 에너지가 생겨요. 손맛이죠. 심장의 울림을 손의 에너지로 전달하는 게 음식이에요."

벌목꾼처럼 두터운 손. 꽃과 풀은 순식간에 빠르게 뜯는다.

-먹는 풀과 안 먹는 풀은 어떻게 골라냅니까?

"보는 순간 딱 알아요. 일반인이 못 보는 파장을 느낍니다. 그걸 빠르고 용맹스럽게 낚아채는 거죠. 내가 하는 것 같지만 그 밑에 수많은 인연이 돕고 있어요."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노동이 바탕이 됐다.

"젊을 때 어깨너머로 요리하는 걸 배우려고 명동 소공동 일대에서 연탄 배달을 했어요. 3.75kg짜리 구공탄을 집게에 걸어 한 번에 10장씩 들어 하루 5천 장을 날랐어요. 너무 힘들어 중간에 던지고 싶을 때가 많았어요. 시시각각 인간의 한계를 시험받았죠. 그 유혹을 이기면 어느새 1층의 석탄산이 빌딩 옥상으로 옮겨졌어요.

연탄 옮기기 고수로 77년 3월에 ‘묘기대행진'까지 나갔어요(웃음). 연탄뿐이 아니었어요. 얼음, 석유까지 배달하면서 호텔, 맥줏집, 중국집, 오뎅집 각종 식당의 부엌 구조를 다 보고 익혔어요. 쇠를 담그듯 노동에 몸을 담금질하며 견문을 넓혔어요."

레시피 없는 지연 요리책 ‘임지호의 밥 땅으로부터'. 최근 출간한 이 책에서 그는 아내와 두 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요즘 자영업자들의 스승은 백종원입니다. 당신은 어떤 배움을 주고 싶은가요?

"그분은 시대의 표본이 되어 경영적 가르침을 주더군요. 나는, 브랜드라는 걸 만들지 않았어요. 한계도 느꼈고요. 지금 이대로 나는 너무나 평화롭고 부족한 게 없어요. 과욕을 부리지 않으려고 해요. 음식이 필요한 곳에, 생명이 커가는 곳에, 나는 우산처럼 서 있으려고 해요."

-임지호에게 맛이란 무엇입니까?

"맛은 맛이에요. 인간은 태어나서 모유를 먹고 이유식을 먹고 밥을 먹어요. 단맛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아요. 달면 맛있다고 합니다. 억압되면 달고 맵고 짠 것을 찾아요. 평화로울 땐 온유한 맛, 스트레스받으면 자극적이고 강렬한 맛에 반응해요. 내가 속한 사회, 정치, 경제의 빠른 솔루션을 맛에서 찾으려고 해요. 그게 맛의 정체예요."

-맛의 정체는 고정돼 있지 않군요.

"네. 맛은 유동적입니다. 어느 날 맛이 있었다가 없어지기도 해요."

-레시피의 문제가 아니고요?

"완전히 부정할 순 없지요. 그러나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최고의 맛도 됐다가, 최악의 맛도 됩니다. 칭찬과 비난이 한 몸이죠."

-그럴 때 요리사는 어떻게 하나요?

"요리사는 평가에 연연하면 안 돼요. 자기가 올곧게 가고 있는가만 중요하죠. 일희일비 말고 평정심을 유지하면 됩니다."

자연의 일부처럼 되어가는 임지호./사진=고운호 기자

-산당의 음식은 뭐라고들 하지요?

"비난도 하고 좋아도 합니다. 먹다가 울기도 하고 먹다가 웃기도 해요. 저는, 그러거나 말거나 지요(웃음)."

-그럼 뭐가 중요한가요?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나? 고맙게 먹고 있나? 내가 이 음식을 받을 복을 지었나? 지은 복만큼 맛을 느낍니다. 최고의 셰프가 만들었다고 맛있을까요? 아니에요. 시골 노인이 나그네 불러서 차려준 밥상이 최고지요. 고급 식재료가 따로 있나요? 아닙니다. 재료는 사람들이 많이 먹고 빨리 소진되면 비싸지는 것뿐이에요."

-그럼 견습 요리사에게는 무엇을 가르칩니까?

"가르치지 않고 함께 배우려고 해요. 진정한 교육은 열린 교육이죠. 요리 대회 나가서 우승한다고 최고가 아니에요. 사물의 섭생과 진화, 질서와 조화, 진실을 공부해야지요. (침묵하다)진실은 때론 나무껍질 같아요. 나무껍질은 묘목일 때부터 죽을 때까지 거기 있잖아요. 수액과 햇빛을 머금은 껍질은 나무를 성장시켜요. 에너지를 뿌리로 보내서 꽃과 열매도 맺죠. 사람의 몸도 나무껍질처럼 속일 수가 없어요."

우리 몸은 희로애락이 기록된 메모리 판이라고 했다.

"옷과 화장으로 속여도 걸음걸이에서 비굴함과 서글픔과 고귀함이 다 나와요. 배의 모습인 복상, 등의 모습인 등상에도 데이터가 있어요."

2006년 미국 요리 잡지 ‘푸드 아트’의 표지 모델로 선정된 임지호.

-그걸 다 방랑으로 배웠습니까?

"네. 그런데 방랑에서 가장 크게 익힌 건 성실함입니다. 내 몸의 기운을 다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 가령 저는 음식을 완성하는 속도도 굉장히 빨라요. 3일간 준비해도 만드는 건 30분, 1시간이에요. 신선도가 중요하거든요. 그 속도를 익히느라 16kg짜리 납덩이와 모래를 팔과 다리에 차고 수련을 했어요."

-기인인 동시에 장인이로군요. 스스로는 어떤 사람이라고 느끼나요?

"지극히 평범하고 정말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나를 감추지 않고 오롯이 보여줄 뿐입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풀이 없듯, 쓸모없는 사람도 없다는 걸 보여줄 뿐이죠. 그러니 나를 돌보고 용맹스럽게 나아가라고요."

-어떤 냄새를 사랑합니까?

"흙냄새요. 흙은 사람보다 넓고 깊고 아름다워요."

-좀전엔 갯벌에서 아이처럼 겅중겅중 뛰어다니시던데요.

"흙에서 후드득 나물을 뜯어낼 때도 머릿속에 다 그림과 질서가 있습니다. 질서를 알면, 푹푹 빠지는 뻘에서도 나는 다람쥐처럼 뛰어다녀요."

강화도 외포리 바다./사진=고운호 기자

-요리할 땐 어떤 양념을 귀하게 여깁니까?

"소금, 간장, 된장, 고추장, 식초, 참기름, 들기름. 하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길들여지지 마세요. 전기에 익숙해지면 전기 끊어지면 죽는 줄 아는데, 아닙니다. 스스로 길을 만들면, 나아가기 바빠요."

-선생의 소울 푸드는 무엇이죠?

"된장에 찍어 먹는 풋고추. 아삭함과 된장의 잔잔함이 어우러지는 맛이 조화롭죠. 젓갈도 좋아요. 젓갈엔 예술의 향기가 있어요. 뭉텅이로 뭉그러져 오래된 것은 밑으로, 덜 오래된 것은 위로 떠요. 서열이 생기죠. 젓갈은 귀한 음식인데 다들 머슴처럼 사용해요. 와인처럼 귀한 공주인데 말입니다(웃음). 음식에도 서열이 있어요. 젓갈은 영혼을 치유해요. 장아찌는 달라요. 가난할 때 먹는 음식이죠."

-어머니의 음식 중 유독 기억나는 것이 있나요?

"호박범벅이요. 늙은 호박 속을 빼서 찹쌀 풀고 양대콩 넣어 버무리를 만들어주셨어요. "막내야, 별식이다. 먹어라" 하실 때 그 푸근하던 목소리가 생생해요. 어머니는 비린 건 못 드셨는데 북어는 유일하게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명태를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나요. 무더기 무더기 피는 벼룩나물은 흙냄새가 그윽해요. 그걸 뜯어 된장에 싸 먹는 것도 좋아하셨어요."

-인간은 자연의 일부고 생명 있는 것은 모두 애달프다고 하셨어요. 우리는 어떻게 먹고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날 것과 익힌 것, 오래된 것과 새것. 조화롭게 온전하게 써야 면역이 생겨요. 가정에서는 모든 껍질을 버리지 마세요. 양파, 마늘, 파 뿌리는 깨끗이 씻어서 잘 뒀다가 고기 삶을 때 쓰세요. 향과 영양이 어우러집니다. 감자, 고구마, 사과 껍질도 버릴 것이 없어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어요. 재료를 흥청망청 쓰면 가치가 떨어집니다.

식생활에서 가난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결핍을 즐기세요. 가난한 대로 살아갈 방법이 있어요. 안 팔리는 것, 못생긴 것에 주목하세요. 지혜로운 사람은 주워온 것으로도 소중한 먹거리를 만들어내요. 인기 없고 버려진 식재료로 식당을 차리면 어떻습니까. 시작은 보잘것없어도 끝은 창대합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의 하모니, 그 쓰임을 내 몸에, 밥상에, 온전하게 되돌려주세요."

숙련과 수련으로 단련된 어른, 임지호./사진=고운호 기자

-마지막으로 밥이란 무엇입니까?

"밥은 춤추고 난 흔적입니다. 밥이 되기 위해 쌀은 춤을 춰요. 보글보글 끓다가 춤을 멈추면 밥이 되어 있죠. 우리는 흥겨운 춤의 결과를 먹는 거예요. 밥이 춤을 췄다는 걸 잊지 마세요. 낱알에 우주의 빛을 담고 춤을 추다 내 허기진 배로 왔다는 걸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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