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으로 번진 전세대란.. 매물부족 19년만에 최악

성유진 기자 2020. 11. 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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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전세 중간값 처음으로 5억 돌파

정부가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한 새 임대차법을 시행한 지 3개월 만에 ‘전셋집 품귀 현상’이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역대 최악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 품귀로 인한 전세난이 서울과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대도시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밀집 상가에 붙은 정부정책 반대 포스터. /연합뉴스

1일 KB국민은행 ‘월간 주택시장 동향’에 따르면, 10월 전국 전세수급지수는 191.1을 기록, 2001년 8월(193.7) 이후 19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 지수는 0~200 범위로 전세 수급 상황을 나타내는 것으로, 100보다 클수록 전셋집 공급 부족이 심각한 걸 뜻한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시작한 전세 대란은 지방 주요 도시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수도권 전세수급지수는 지난달 194를 기록해 2013년 9월(195) 이후 7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대구(197.1)는 관련 조사를 시작한 2003년 7월 이래 최고치였고, 광주(196.1)·울산(189.9)·부산(186.4)·대전(191)도 전세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전세 물건 부족으로 전셋값도 치솟고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5단지’(전용면적 65㎡)는 지난달 15일 7억5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돼, 석 달 전과 비교해 2억원 올랐다. 대구 수성구 ‘두산위브더제니스’(129㎡)는 지난달 10억원에 전세 거래돼 석 달 만에 1억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기필코 전세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했지만,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국 전세수급지수 추이

서울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전용면적 60㎡)의 최근 전세 호가는 9억원에 달한다. 지난 7월만 해도 7억원이면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는데, 석 달 만에 2억원이 오른 것이다. 이 단지는 3885가구 대단지이지만, 전용 85㎡는 현재 전세 매물이 하나도 없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셋집 찾는 사람은 줄을 잇는데 매물이 없으니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라고 했다.

◇서울 중위 전셋값, 처음 5억원 돌파

서울에선 7월 말 임대차법 개정 이후 석 달 만에 전셋값이 1억원 이상 오른 아파트 단지가 수두룩하다. 송파구 ‘잠실엘스’(85㎡)는 지난달 12억3000만에 전세 계약돼 지난 6월(9억원)과 비교해 3억원 넘게 올랐다. 중저가 단지도 마찬가지다. 강북구 ‘SK북한산시티’(60㎡)는 지난달 20일 4억15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6월만 해도 최고 전세 거래가가 3억3000만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8500만원 올랐다.

전셋값이 급등하며 서울 아파트 중위 전세가격(전셋집을 가격 순서대로 줄 세웠을 때 가운데 오는 집의 가격)은 지난달 5억804만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5억원을 돌파했다. 9월(4억6833만원)과 비교하면 한 달 새 4000만원 가까이 올라 통계 작성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지방 전세난 확산에 매매가도 들썩

지방 주요 도시에서도 ‘전세 품귀, 가격 급등’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집주인이 실거주하거나, 전세를 반(半)전세로 돌리는 경우가 늘었고, 신혼부부 등 신규 전세 수요는 계속 유입되는 상황이다.

대전 유성구 상대동 ‘트리풀시티’(102㎡)는 지난달 23일 6억5000만원에 최고가 전세 거래가 성사됐다. 8월 실거래가보다 2억원 이상 뛰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원래도 가을 이사철이면 매물이 부족한데 임대차법 이후 전셋집 ‘회전’이 안 되면서 가격이 급등했다”고 했다.

전세난 여파로 잠잠하던 지방 집값도 들썩이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 지방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100.1을 기록하며 2015년 12월 이후 5년 만에 기준선(100)을 넘겼다. 해당 수치가 100을 넘으면 매수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뜻이다. 특히 지난 한 달간 대구 수성구(2.48%), 부산 수영구(2.07%) 등이 가파르게 올랐다.

◇마땅한 해법 없는 정부

정부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여당에서 표준임대료 제도나 전·월세 상한제를 신규 주택에 적용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내놨지만, 반발과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게다가 두 방안 모두 내년 6월 전·월세 신고제가 시행돼 임대료 시세를 파악할 수 있어야 그나마 제대로 시행될 수 있다.

정부가 최근 언급한 ‘중대형 임대주택’이나 ‘지분적립형 분양 주택’ 등은 충분한 물량도 아닌 데다, 최소 3년 이상이 걸려 당장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어렵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민간을 배제하고 공공 주도로는 전·월세 공급을 크게 늘릴 방법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실거주 요건 강화나 보유세 인상, 임대차법 등 전·월세 시장을 불안하게 할 정책이 한꺼번에 쏟아졌다”며 “정부 정책이 만들어낸 전세 대란이기 때문에 무리한 정책을 손보지 않고서는 정부도 방법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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