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예술로 승화시킨 사랑과 영혼, 뮤지컬 '고스트'

박성준 2020. 11. 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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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으로 지상에 남아 사랑하는 연인을 지켜주는 남성의 모험을 첨단 무대와 조명, 마술로 펼치는 뮤지컬 ‘고스트’. 남자 주인공 샘 위트 역을 맡은 김우형과 여자 주인공 몰리 젠슨 역의 박지연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2011년 영국에서 초연된 후 2013년 우리나라에서도 초연됐으며 7년만에 국내 무대가 다시 시작됐다. 신시컴퍼니 제공
 
‘고스트’는 종합무대예술로서 뮤지컬이 가진 가능성의 한 경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자본과 기술이 집약된 이 작품 무대 변화는 경이로운 수준이다. 주인공 커플 집과 직장, 카페, 응급실, 지하철 플랫폼, 할렘 거리, 카페, 월스트리트, 경찰서 등 다채로운 뉴욕 풍경이 쉬지 않고 무대에 등장한다. 제작사에 문의하니 총 22곳이 등장하는데 이를 위해 1막에 22번, 2막에서 17번씩 무려 39번에 걸쳐 무대가 바뀐다. 덕분에 ‘친구 배신으로 죽은 주인공 영혼이 지상에 남아 연인을 지키고 복수한다’는 원작 영화 ‘사랑과 영혼(1990년 작)’ 감성은 고스란히 무대로 옮겨진다.

영화를 무대에 옮기기 위한 ‘고스트’의 응축된 무대·조명 역량은 대단하다. 무대 준비에만 2개월여 걸렸을 정도다. 핵심은 30㎝ 크기 전광판(LED) 7000여개가 장착된 트러스 구조물과 트러스 속 가변형 세트. LED를 통해 자유자재로 배경화면을 만들어내고 여러 구조물이 움직이거나 접히고 이동하면서 또 다른 장면을 만들거나 자연스러운 특수 효과를 연출한다. 무대를 가로지르는 워킹트랙까지 설치돼 마치 스테디캠으로 촬영한 영화속 보행장면을 보는 느낌까지 준다. 

LED활용을 극대화한 작품으로는 올초 선보였던 뮤지컬 ‘영웅본색’도 대작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입체적 무대를 구현한다는 점에선 ‘고스트’가 훨씬 앞선 수준이다. 일부러 입자가 성긴 LED를 투명막처럼 활용해 그 사이로 실제 세트가 비치도록 한다거나 곳곳에 숨겨진 9대의 빔프로젝터가 만들어내는 화려한 영상 등으로 끊임없이 관객을 무대에 집중시키면서 배우를 배경에 묻지 않고 도드라지게 살려낸다. 이번 공연에서 기기 오류로 두차례나 무대가 중단되는 몸살을 겪은 것도 워낙 무대가 정교한 탓일테다.

흥행 성공 영화를 뮤지컬로 만드는 건 쉬운 선택 같지만 위험이 적지 않은 도전이다. 스크린에서 관객이 이미 경험한 감동과 재미를 무대위에서 그저 재현하는 것에 그쳐선 안된다. 영화와 거리를 두면서 새로운 무대만의 매력을 보여줘야한다. 우리나라에선 ‘사랑과 영혼’으로 소개된 동명 원작 영화는 1990년 세계 흥행 1위작. 제작비 2000만달러짜리 소박한 영화가 5억달러 넘는 흥행 수익을 거둔 건 단순하지만 강력한 순애보의 힘, 그리고 영매를 통해 영혼과 소통한다는 특이한 소재 덕분이다.

LED의 화려함 뿐이라면 ‘재승박덕(才勝薄德)의 덫’에 빠졌을 뮤지컬 ‘고스트’ 역시 원작 장점을 충실히 이어받아 무대예술로 승화시켰다. ‘사랑과 영혼’ 흥행 성공으로 아카데미 극본상을 받은 작가 브루스 조엘 루빈과 토니상, 올리비에상을 받은 연출가 매튜 와처스, 그룹 유리드믹스의 데이브 스튜어트 등 화려한 제작진은 정교한 무대에 탄탄한 이야기로 이미 30년이나 된 원작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어넣어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영화만의 강점인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특수효과는 또다른 전통 예술인 마술로 대체됐다. 유령이 된 주인공이 문을 통과하는 장면, 지하철을 타는 장면 등에서 마술 효과로 영혼이 공존하는 무대를 객석에 선보였다.
2011년 영국 초연, 2013년 우리나라 초연 후 7년만에 다시 돌아온 셈인데 당시 호평받은 남자 주인공 샘 위트 역 주원·김우형과 여자 주인공 몰리 젠슨 역 아이비·박지연 연기를 이번 무대에서도 볼 수 있다. 우피 골든버그 이름을 세상에 알린 개성만점 영매 오다 메 브라운 역도 초연 무대에 섰던 최정원과 이번에 새로 합류한 박준면이 맡아 몸을 아끼지 않고 열연한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초연 당시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건 거의 모두 다 보여줬다’고 평가받은 작품이다. 이후로는 연극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가 더 첨단 무대를 선보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최근 무대 예술이 얼마나 영상과 결합했는지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이라며 “연기에선 ‘오다 메 쇼’라고 부를 정도로 등장 장면마다 익살과 기지가 터져나오는 오다 메 역을 맡은 최정원과 박준면이 보여주는 무대 안정감이 흥미롭다. 만원 안팎 내고 본 영화를 10만원 이상씩 내고 뮤지컬로 보자고하려면 원작을 승화시켜 무대만의 매력을 보여줘야하는데 그것에 성공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2021년 3월 14일까지.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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